한국은 건국 60년을 넘으면서 이제는 경제사와 경제체계론 혹은 거시경제학에서의 역사적인 분석 대상이 된 셈입니다. 이 기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해서 학계에서는 아직 합의된 바가 없고, 체계(system)와 체제(regime) 혹은 그 중간의 의미 같은 것들이 간혹 제기되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적합한 번역어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일종의 '양식(mode)'이라고 본다면, 국가가 조금 더 개입하는 방식 혹은 파시즘적 양식을 보이는 방식, 아니면 시장이 전면적으로 등장해 이런 것들을 조절하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양상(modality)'과 같은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성장률이라는 눈으로 한국 사회를 본다면, 1980년에 한 번, 그리고 1998년에 한 번 0퍼센트 이하의 성장률을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이런 논의를 지금 넓게 펼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유신체계'로 알려진 하나의 경제 시스템과 지금 'FTA 체계'로 이름 붙일 수도 있을 노무현 시대에 새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양상 사이에는 유사점도 많고, 그와 함께 차이점도 동시에 존재합니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만약 박정희가 독재자였다면, 노무현도 독재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국민경제라는, 조세 혹은 재정정책이나 금융정책 아니면 수출/수입의 분화된 장치 등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의 의사결정 방식에서 지금의 대통령이 박정희보다 더 민주주의적인 절차를 따르고 국민들과 합의하면서 주요 정책들을 추진한다는 어떠한 결정적 증거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를 독재의 깊은 터널로 밀어 넣었던 박정희의 73년 체계와 지금의 한미 FTA 추진 체계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2. 국민투표에 대한 저의 이해
'레퍼렌덤(referendum)'이라고 불리는 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국민투표를 규정하는 헌법 자체를 개정하는 개헌에 관한 국민투표, 또 다른 하나는 특별한 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실시하는 정책 국민투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책 국민투표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만약 이같은 분류를 우리나라에 적용해 본다면 그나마 가장 유사했던 것이 유신체계를 출범시킨 국민투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민투표라는 극좌부터 극우까지 모두 사용하는 제도라서, 그 자체로 '개혁인가 보수인가'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제도입니다. 박정희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극우파 제도가 되었습니다. 최근의 예로는, 비록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보수주의자들 일각에서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군사작전권 환수에 관해서도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극우파가 국민투표를 요구해서 성공한 국제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스위스 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추진했을 때, 스위스 중앙민주연합이라는 극우파 정당이 국민투표를 추진해 파병을 막고, 그 결과 규모로는 스위스 제1당이 됐습니다. 녹색당과 좌파연합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유전자조작(GM) 식품에 대한 한시적 금지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한시적 금지를 연장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투표가 바로 미-스위스 FTA를 정지시킨 불신임 투표가 됐습니다.
많은 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EU) 경제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어떤 나라들은 화폐통합 여부를 놓고 무려 3번이나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잘 알려진 사례가 없습니다.
국민투표가 좋은 제도인가? 물론 모든 제도가 그렇듯, 그 제도를 활용하는 방식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국민투표를 잘 사용하는 나라들에서는, 신자유주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소수자에 대한 보호나 저소득 계층의 주거지역에 대한 국가적 지원체계 등과 같은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흐름이 관찰됩니다.
소득수준 향상과 사회의 맥락으로 본다면, 한국 사회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향으로 가는 추세였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3. 주민투표와 국민투표
현 정부의 집권기간에 새로 시행된 법 중에서는 '주민투표법'이 우리의 상황을 알려줄 지표일 수 있습니다. 경주의 방사능 폐기장 유치 과정이 주민투표를 거쳤고, 제주도의 행정자치법이 그랬습니다. 또 서울시의 소각장 문제와 관련돼 현재 주민투표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주민투표들이 소위 민주주의의 발전과 지역민들의 통합에 긍정적 기여를 했는지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일정수 이상의 주민들의 발의에 의해서 지역의 크고 작은 일들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제도가 도달한 지점입니다.
다만 현재의 헌법(9차 개정헌법)은 1987년 개정된 후 아직까지 개정된 적이 없기 때문에, 국민들이 직접 요구해 중대 사안에 대해 국민투표 발의를 할 수가 없다는 것, 즉 시대정신과 제도 사이의 시간 격차가 발생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방폐장 유치 같은 사안도 주민투표를 거치는데, 국민들의 경제적 삶에 대한 '광범위한 영향'이 그보다 클 것이 당연한 '한미 FTA'와 같은 사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시대정신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국민투표가 우리나라 헌법에 들어간 것은 1987년 처음으로 있었던 일입니다. 제 이해로는, 당시에는 민주주의 정부를 반대하는 국민들이 지나치게 국민투표를 남발해 국정 자체를 흔드는 일이 벌어지면 곤란하기 때문에 소위 '국민투표 부의권'을 대통령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했습니다. 9차 개정헌법은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주요 정책'이라는 72조 조항을 통해 정채 국민투표의 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핵심은 다른 선진국들에서처럼 국민들의 국민투표 발의권이 인정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부의권을 남용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국민들이 발의권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이를 받아주는 운용의 묘미를 살릴 것인가'에 대한 헌법적 해석은 "부칠 수 있다"는 이 다섯 글자의 의미와 그 행간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할 수 있다"는 조항은 우리나라 법률 체계에서는 '권고조항'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미 10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서명 등의 방식을 통해 한미 FTA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대통령에게 일종의 권고를 한 상태인데, 대통령은 "이건 내 권한이다"라며 국민들의 권고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객관적인 상황입니다.
참고로 지금까지 1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하나의 사안에 대해 서명한 경우는 바로 노무현 대통령을 현재의 대통령 자리에 앉혔던 결정적 사건 중의 하나인 미군 장갑차 사건 관련 촛불시위 때의 소파(SOFA, 한미행정협정) 개정에 대한 소명 정도입니다.
4. 미래를 위한 진화, 국민투표가 열쇠이다
현 시점에서 국민들이 한미 FTA의 재협상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한미 FTA의 체결을 재고하게 만드는 것 △국회의 비준동의 절차에 개입하는 방법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들의 의사를 보이는 것 등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현재의 법률체계가 평화적으로 보장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1987년 6월에 그랬던 것처럼 시민들 혹은 민중들이 대거 길거리로 나와서 '국민직접행동'에 의한 경제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국민들은 교통흐름을 저해했다거나 집회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행정 잡범'으로 몰리겠지요.)
대통령이 지금처럼 '구국의 결단'의 함정에 빠져있는 상태에서는 이런 선택지로 대통령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남는 것은 다시 위 세 가지 방법, 즉 합법적인 2개의 대안과 불법으로 간주되는 하나의 대안입니다. 저는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도 다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대한민국 국회가 국민들의 의견을 합리적으로 대변하는 국회라면 지금까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상관료들에 의한 '통상독재' 국면이 펼쳐지지는 않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국회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지금 국회는 국민을 대변하거나, 그들이 선호하는 용어대로라면 '국익'을 적절하게 계산하고 대화하는 그런 기구로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의 국회 시스템은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서 움직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국회라는 헌법기관은 국회의원 개개인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독자적인 길을 가는 그런 아름다운 '자기 구성적 조직'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할지 앞길이 너무 뻔히 보이는 '결탁의 오류에 빠진 조직'으로 보입니다.
지금 상황을 제가 보는 대로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독재자인가? 독재자 맞습니다. 다만 유신 시절처럼 비밀경찰에 의한 독재 체계가 아니라, 통상관료를 제1선에, 경제관료를 제2선에, 그리고 초국적 기업으로의 도약을 원하는 삼성 혹은 삼성 친화적 집단을 후방 제3선에 배치한 독재체계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움직인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주장했던 시장경쟁, 즉 '시장의 일반균형'의 미덕은 온데간데없고 독과점을 칭송하는 독과점 독재 체계가 형성됐습니다. 이 체계가 드러나는 양상이 바로 통상독재입니다.
이것을 독재라고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 시스템이 대통령 1인의 "구국의 결단"으로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합리적 논의와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의사결정 과정, 즉 민주 사회의 본질적인 절차는 완전히 배제됩니다.
따져보면, 우리들 스스로도 '국가의 경제적 번영이 개인의 경제적 삶의 개선과 연결된다'는 자본주의의 최소한의 미덕도 잃어버린 채 이미 "이 길 아니면 죽는다"는 유신독재의 경제 이데올로기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는 셈입니다.
이미 80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종사자들, 10% 미만의 "딴딴한" 직장을 제외하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게 될 대다수의 20대 청년들, 그리고 이들의 뒤를 이을 10대들은 아무런 희망 없는 '한미 FTA 체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합리적 체계를 만들 수 있는 동력은 바로 국민들에게 있습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이런 동력은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돌아보고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선진국형 국민'들에게 있다는 것이 제 평소의 소신입니다.
스위스나 독일 같은 나라들은 FTA 체계와 같은 큰 일이 아니더라도, 식품안전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나 농업직불제 개선과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일들을 국민투표에 부칩니다. 그리고 국민투표를 통해 도출된 합의에 근거해 미래를 위한 정책들을 바꾸는 중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히 한미 FTA라는 국제조약 하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뛰어넘어, 미래를 위한 진화의 열쇠가 바로 국민투표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개헌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원 포인트 개헌'이라는 수사학에 갇힌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그 어느 집단도 국민투표의 발의권이 새로운 개정헌법에 들어가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5. 분명히 국민투표만이 답은 아니다
한미 FTA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 것이 당연한 것처럼, 국민투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또 저는 민주주의는 결국 민중들의 요구 속에서만 생겨난다는 고전적인 정식을 믿는 편입니다.
국회를 통해서든 국민투표를 통해서든, 민중들 스스로가 실제로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현재의 경제적 삶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큰 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그런 외침들이 있을 때에만 통상독재에서 궁극적으로는 초국적 기업의 독과점 독재로 나아가는 현재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등은 모두 국민소득 4만 달러를 훌쩍 넘어선 나라들입니다. 이 나라들은 모두 각각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점은 이들 국가가 이 정도 수준의 국민소득을 올리게 된 방식은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전면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들은 성장률은 다소 높아지는 한편 분배, 공공복지, 아동복지, 국민건강권 관련 지수들이 하나같이 급강하하는 공통적인 흐름을 보입니다. 특히,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멕시코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가입 선진국으로서는 유일하게 농민반란군이 무장봉기를 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한미 FTA를 맺어도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그 미미한 성장률 증가도 없을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우리가 '독재자'라고 손가락질했던 멕시코 대통령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100회 이상 직접 FTA 설명회를 개최했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지금 이게 뭡니까?
"내가 어려운 고뇌를 딛고 결심했다."
이게 경제적 의미의 박정희 유신체계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유신체계이겠습니까? 다음 대통령은 이미 구축된 이 독재 체계를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물려받게 됩니다. 이러니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뒤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 국회비준 거부, 국민직접행동 혹은 그 어떤 것이라도 저는 다 환영하고 반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국민투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국민투표가 제도에 대한 합법적 절차와 국민들의 직접적인 의사표시를 가장 부드럽고 평화적으로 조화시키는 동시에 미래에 발생할 또 다른 독재적 요소에 대해 국민들이 합리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매번 독재가 등장할 때마다 시민들이 직접 '정권타도'를 외치고 길거리에 나올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1987년의 9차 개정헌법은 거리에 나선 시민들이 '다시는 우리가 직접 길거리에 나오게 하지 말라'는 정신 위에 서 있는 헌법입니다.
그 헌법이 지닌 작은 약점인 국민투표의 '권고조항'에 노무현이라는 현 독재의 지휘자가 서 있는 것입니다.
국회가 정상적으로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대변하는 길이 아직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이 닫히면, 국민투표 혹은 국민직접행동, 이렇게 두 가지 길만이 남게 되겠지요. 국회라는 가냘픈 국민 의사전달의 통로가 막히기 전에, 대통령이 국민투표라는 이 87년 체계의 마지막 의사결정 방식인 '권고'를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에게 안전하면서도 가장 평화적인 해법입니다.
국민투표인가 국민직접행동인가? 이것도 사실은 정치인, 전문가 혹은 학자들이 결정할 일은 아닙니다. 다양한 언로가 되었든, 국회의원을 통한 대리 의사표현이 되었든, 아니면 1987년 6월처럼 국민들이 직접 아스팔트길에 나서는 방식이 되었든, 결국은 국민경제를 구성하고 운용하는 주인인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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