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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의 양'에서 '잔혹한 사자'로…비알릭의 시와 네타냐휴의 체포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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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의 양'에서 '잔혹한 사자'로…비알릭의 시와 네타냐휴의 체포영장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1903년 봄, 러시아령 베사라비아의 도시 키시뇨프에서 사흘간 유대인 학살이 벌어졌다. 부활절을 맞은 정교회 군중은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을 응징하자"는 광기 어린 구호 아래 거리에 쏟아져 나왔고, 차르 정부는 이를 방관했다. 49명이 살해되고, 수백 명이 부상했으며, 수많은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다.

오데사 유대인 역사위원회는 서른 살의 젊은 시인 하임 나흐만 비알릭을 현장에 보냈다. 그는 피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은 도시에서 5주간 머물며 생존자들의 증언을 채록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300행에 이르는 장시 '학살의 도시에서'다. 그것은 단순한 애도의 시가 아니었다. 유대 민족을 향한 절규였고, 동시에 인간 문명을 향한 고발장이었다. 이 시는 현대 히브리 문학의 가장 강렬한 텍스트이자, 강한 국가를 스스로 건설해야 한다는 시오니즘 운동의 정신적 횃불이 되었다.

그로부터 120여년이 흐른 지금, 비알릭이 묘사한 "깨진 도자기 조각처럼 아무렇게나 버려진 인간의 파편"은 가자 지구의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다. 시인이 목격했던 유대인 어머니들의 통곡은, 아이의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팔레스타인 어머니들의 절규로 되살아났다. 무너진 병원과 학교, 굶주림 속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끝없이 이어지는 난민 행렬은, 한때의 피해자가 얼마나 야만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는지를 웅변한다.

비알릭의 시가 당시 유대 사회를 뒤흔든 이유는 단지 학살자들에 대한 분노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저항하지 못한 유대인 남성들의 무기력을 더욱 통렬하게 질타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더 이상 도살장의 양처럼 끌려가지 말라" "사자가 되어라"고 외쳤다. 그의 염원처럼 비알릭의 후예들은 사자가 됐다. 그러나 무고한 양들을 스스럼없이 살육하는 흉포하고 잔혹한 사자다.

▲하임 나흐만 비알릭의 시집 <학살의 도시에서> 영문판 표지
▲하임 나흐만 비알릭의 히브리어 장시 <학살의 도시에서> 표지

굶주림을 전쟁 무기로 사용한 죄

2024년 11월 2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둔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에 대해 전쟁범죄 및 반인도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특히 '굶주림을 전쟁 무기로 사용한 죄'가 영장 사유에 포함된 것은 국제형사법 역사에서 중대한 이정표다. 식량과 물, 의약품과 연료를 끊어 민간인을 고사시키는 행위를 가장 잔혹한 전쟁범죄로 규정한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ICC의 체포영장은 단순히 한 정치인에 대한 사법적 단죄를 넘어선다. 국가 안보와 생존권이라는 명분이 국제법과 인류 보편의 양심보다 우위에 설 수 없음을 천명한 '보편적 정의'의 선언이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2023년 10월 이스라엘 기습공격은 매우 잔혹했다. 남부 레임 지역에서 열리고 있던 뮤직 페스티벌 현장을 습격해 음악을 즐기던 청년 400여명을 죽이는 등 당일에만 1천200여명을 살해했다. ICC는 하마스 군사조직 지도자 무함마드 데이프에 대해서도 동시에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이어진 이스라엘의 군사작전 결과는 더 끔찍했다. 가자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2026년 4월 기준으로 7만2천여명이 사망했다. 사망자의 56%가 여성과 어린이, 노인이다. 이스라엘 각료들의 입에서는 "가자를 지워버리겠다" "그들은 인간 동물이다" "아말렉(신이 진멸을 명한 성서 속의 적)을 기억하라"는 따위의 혐오 발언과 선동이 쏟아져 나왔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 본부 전경

어느 국가든 자국민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자기방어권이 무제한의 폭력을 허가하는 면허증은 아니다. 공포와 복수심이 압도하는 순간에도,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 국제인도법의 정신이다. ICC의 체포영장은 이를 명백히 선언한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ICC의 체포영장을 '반유대주의'라며 반발한다. 그러나 전쟁범죄 혐의를 법적으로 심판하겠다는 국제기구 절차를 반유대주의로 치환하는 순간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인간 보편의 윤리가 아니라 정치적 방패로 전락한다. 그것은 유대인의 비극적 역사를 오히려 훼손하는 일이다.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ICC의 체포영장은 유죄 확정이 아니라 본안 심리를 위해 ICC에 출두할 것을 요구하는 절차적 명령이다. 네타냐후는 헤이그에 자진 출석하여 자신을 변호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202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56차 세계경제포럼에 불참했다. 다보스 행사를 앞두고 스위스 정부가 ICC 체포영장 대상자가 입국하면 체포 및 인도 절차를 개시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체포 위험을 우려해 영장 집행 가능성이 낮은 우호국 중심으로만 방문지를 제한하고 있다. 이 속에서 이스라엘의 외교적 고립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네타냐후 총리를 사실상 '전범'으로 지칭하며 "체포영장 집행 여부를 우리도 판단해 보자"고 말했다. 우리 국민이 탑승한 국제구호선단이 가자 해안에서 수백km 떨어진 공해상에서 이스라엘군에 강제 나포된 사건에 대한 국가적 분노와 책임 의식을 담은 말이었다.

국제구호선단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민간인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전달하는 인류애의 통로다. 이를 무력으로 차단하고 민간 활동가들을 납치·구금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국제인도법 위반이자 문명 사회에 대한 도전이다. 이스라엘은 ICC가 네타냐후 체포영장 사유로 적시한 '굶주림을 전쟁 무기로 사용한 죄'를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 이스라엘군에 강제 나포된 국제구호선단 활동가들이 손이 뒤로 묶인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이 자신의 엑스(X) 계정에 올린 구금 시설 영상 中

'권력의 광기'를 자축하며 희열을 느끼는 야만

파문이 커지자 이스라엘은 나포했던 한국인 두 명을 즉각 석방한 데 이어 국제구호선단 활동가 430여명을 강제 추방했다. 그러나 문제는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이 자신의 엑스(X) 계정에 올린 구금 시설 영상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영상 속 활동가들은 손이 뒤로 묶인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는 굴욕적인 자세를 강요받고 있었다. 벤그비르 장관은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며 "이스라엘에 온 것을 환영한다. 우리가 바로 이 땅의 주인"이라고 조롱했다.

그것은 법 집행의 영상이 아니라, 전리품을 앞에 두고 권력의 광기를 자축하는 영상이었다. 국제사회가 금기시해 온 '인간 존엄의 파괴'를 공개적으로 전시하며 희열을 느끼는 야만적 행태였다. 이 장면은, 힘이 곧 정의라는 오만함이 이스라엘 국가 기구의 핵심부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는지를 방증한다.

ICC 회원국은 모두 체포영장 집행 의무

엄밀히 말하면, 한국은 이미 네타냐후 총리 체포영장 집행 의무를 지고 있다. ICC 로마 규정에 따라 125개 회원국은 영장이 발부된 자가 자국 영토에 들어오면 체포할 의무가 있다. 한국 역시 로마 규정 비준국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한국을 방문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국제법 질서는 선택적 정의 위에서 유지될 수 없다. 우방에게는 눈감고 적대국에게만 법을 들이대는 순간, 법은 원칙이 아니라 도구로 전락한다.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페인, 벨기에,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등은 이미 네타냐후가 자국 영토에 들어오면 체포하겠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한때 헝가리가 매우 예외적으로 영장 집행 거부 의사를 천명한 적이 있다. 네타냐후와 정치적으로 긴밀했던 오르반 빅토르 전 총리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2026년 4월 총선에서 페테르 마자르가 이끄는 야당 '티사'가 승리해 정권을 잡으면서, 헝가리 역시 영장 집행 쪽으로 선회했다. 국제사회는 서서히 네타냐후를 정상 외교의 질서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이재명 대통령의 강경 발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외교부는 감정적 반발이나 공개적 비난 대신 "이번 사안으로 한-이스라엘 관계가 영향을 받지 않고 더욱 발전하길 희망한다"는 유화적 입장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이는 지금의 이스라엘이 처한 국제적 고립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준다. 국제사회의 시선이 날이 갈수록 싸늘해지는 상황에서 국제규범과 보편적 인권의 중요성에 강한 방점을 찍고 있는 한국의 새 정부와 정면대결을 해봐야 득 될 게 없다는 계산이 묻어난다. 국제사회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한 국가는 그럴수록 더 '힘'에 집착하게 되지만, 동시에 외교적 균열에는 매우 예민해진다. 네타냐후 정권의 반응에는 바로 그런 이중성이 배어 있다.

▲하임 나흐만 비알릭

비알릭의 시는 이스라엘의 오만을 찌르는 가시가 돼야

문명은 기억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기억 위에 성찰이 쌓여야 하고, 성찰 위에 절제가 놓여야 한다. 과거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은 결국 양심과 법치에 근거한 철저한 자기 성찰이다. 네타냐후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는 그 성찰을 강제하는 국제사회의 마지막 이성적 제동 장치다.

비알릭 시인은 "태양은 여느 때처럼 빛나고 있겠지만, 너는 그 빛 속에서 썩어가는 육신의 냄새를 맡으리라"고 경고했다. 시인의 경고는 이제 국제사회의 여론을 등진 채 파괴와 살육의 심연에 빠진 이스라엘의 권력을 향하고 있다. 비알릭의 시는 박해받는 자의 슬픈 노래로만 남아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압도적 힘을 손에 쥔 자들의 오만과 무감각을 찌르는 사법적 가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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