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종료됐다. 이걸 '타결'이라고 부른다. 이제 정부가 공식적으로 서명하게 될 '체결' 절차가 필요하고, 국회에서 협약조인에 대한 동의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게 '비준'이다. 현행 대한민국의 조약 체결 체계가 이렇게 돼 있다.
그리고 '87년 체계'가 만들어낸 9차 개정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 헌법은 외국에서 '레퍼렌덤(Referendum)'이라고 부르는 국민투표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체육관에서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간선제를 없애고 생긴 이 87년 체계 아래서 우리나라는 20년 동안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다. 그리고 이제 2만 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다. 단순 비교로만 하면 '73년 체계'로 불리는 유신체계 20년에 비해서 훨씬 민중적이었던 87년 체계의 성과가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세계은행(World Bank) 같은 곳은 87년 체계의 초반 10년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73년 유신체계의 특징은 대통령의 구국의 결단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점이고, 87년 체계의 특징은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손을 잡고 시스템을 움직이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학과 사회학에서는 이걸 '절차적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제학의 시각에서 보면 '호리병 경제'라고 부를 수 있다. 위와 아래는 가는 대신 허리가 불룩한 일종의 '비만형 체형'을 만들자는 것이 이 호리병 경제의 핵심이다. 너무 부자인 것도 싫고 너무 가난한 것도 싫다는, 노태우 대통령의 "보통 사람들의 시대"는 적어도 이데올로기적으로 이 호리병형 경제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87년 체계의 본질은 대통령, 즉 호민관의 '구국의 결단'에 의해 시스템이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87년 체계는 제9차 개정헌법에 강하게 들어가 있는 의회주의 요소들, 나중에 논란이 됐던 헌법재판소, 그리고 경제민주주의 규정 등 '구국의 결단'에 대한 강한 견제장치들을 가지고 있다. 87년의 정신 자체가 독재를 종료시키고,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고, 다양한 계층의 경제적 이익을 조화시켜 하나의 균형을 만들고자 하는 것에 있었다.
이제 20년 만에 이 87년 체계에 '구국의 결단'이 왔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국민경제의 시스템에 관한 근본적인 상황으로는 72년 12월 27일 국민투표를 통과해 확정된 유신헌법만큼이나 국민경제의 기본성격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결정의 순간'이 온 셈이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 민주주의의 토착화, 실질적인 경제적 평등의 달성"이 당시 유신헌법의 정신이었다.
크게 보면 1973년으로부터 35년 만에 국민경제 기본 시스템이 변화하는 셈이고, 작게 보면 1987년으로부터 20년 만에 87년 체계가 붕괴하는 셈이다.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경제의 장파동(long wave)을 놓고 분석할 때, 이 73년 체계와 87년 체계의 기본 시스템, 그리고 80년 공황과 98년 공황이라는 두 번의 위기가 분석의 기본 틀이 된다(이 두 번째 공황을 IMF 경제위기 혹은 환란이라고 부른다).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 FTA는 '2007년 체계' 혹은 'FTA 체계'라고 나중에 불리게 될 또 다른 커다란 시스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73년 체계도 통일을 위해서 경제운용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맨 앞에 내세웠다. 일본과 중국 사이의 '샌드위치 경제'를 극복하고 '세계화된 경제'에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외부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국내 체계의 전환'을 얘기하는 지금의 FTA 체계도, 방향은 비록 다를지 모르지만 경제적 의사결정론의 관점에서는 동일하다.
73년 체계의 성과는 무엇에 기인했나?
한미 FTA로 인해 전환될 새로운 국민경제 체계가 거시경제 전체에 미치는 효과, 국민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효과, 그리고 산업구조 조정을 통한 새로운 단계로의 전환 모색에 이르기까지 현재 대통령이 구상하는 FTA 체계가 가져올 충격의 크기는 73년 체계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FTA 체계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근본적인 효과는 87년 체계보다 크고, 단위 충격만으로 놓고 보자면 73년 체계보다도 훨씬 클 것이다. 한미 FTA는 한-EU FTA, 한중 FTA 등과 함께 '동시다발적 FTA'의 핵심 축으로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전혀 다른 경제적 세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따라서 한미 FTA가 긍적적 기여를 하든 부정적 폐해를 입히든 이것이 대한민국에 미칠 영향은 질과 양 모두의 측면에서 결코 작지 않다.
냉정하게 73년 체계와 FTA 체계의 차이를 살펴보면, 시스템 이론의 관점에서 하나의 큰 차이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박정희는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으로 시스템 전환의 문제를 국민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유신체계가 박정희 독재 혹은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로 오랫동안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72년 12월 17일 91.5%의 국민이 유신헌법에 대해 찬성했다. 그것이 박정희가 우리에게 남겨준 최소한의 민주주의의 토양이다. 뒤에서는 정보부를 동원하거나 어용교수들을 동원해서 어떤 공작을 했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박정희는 유선체계를 출범시키면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생각해보자. 헌법개정 없이 유신체계의 출범이 불가능했을까? 법으로도 가능하고, 대통령령으로도 가능하고, 하다못해 '대통령 지시사항'만으로도 73년 체계를 만들어 중화학공업 육성을 할 수 있었다. '저개발 국가의 함정'에 더 깊숙이 빠진 후 '빈곤의 악순환'으로 완전히 무너질 수 있었던 그 순간에 박정희가 선택했던 '국민투표'가 대한민국 경제와 사회정치 시스템에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절차의 근거를 만든 셈이다.
이 체계는 전두환의 광주학살과 87년 민주항쟁을 만나 새로운 체계로 전환되기 전까지 13년 간 한국 경제를 이끌어 나갔다. 유신체계에 대한 온갖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로의 성공적인 전환과 경제적 발전을 이룩한 셈이다.
박정희가 독재적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기에 우리가 산업화에 성공한 것인가, 아니면 유신체계라는 가혹한 독재 체계를 출범시키면서도 국민투표를 했기 때문에 생겨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의 힘에 의해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인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73년 체계와 2007년 체계,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국민경제와 민주주의라는 다소 큰 틀에서 볼 때, 우리의 호민관, 즉 87년 체계의 마지막 대통령이 될 노무현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노무현은 아직도 '살인마'라는 별호가 떨어지지 않는 전두환에 비하면 인간적이긴 하다. (물론 그만큼 효율적인가에 대해서는 후대에 경제사 전공자들이 분석하고 평가할 일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큰 눈으로 박정희와 비교하면, 노무현은 민주주의, 특히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박정희의 유신체계와 노무현의 FTA 체계를 비교해보자. 그 당시 경제기획원의 관료들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문가들, 그리고 박정희가 새로운 유신체계를 만들면서 법도 지키지 않고, 구체계의 몇 가지 규정들을 활용해 유신체계를 밀어붙였던 사실은 현재의 상황과 절묘하게 일치한다.
그 때의 경제기획원이 지금의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로 바뀌었을 뿐이고, 그 날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유신전집'을 만들었던 과거 학자들의 역할과 '공업 입국' 대신 'FTA 입국'을 외치는 현재 학자들의 역할도 같다. '유신만이 살 길'이라고 외쳤던 언론은 글자만 몇 개 바꿔 'FTA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고 있다. 독자 여러분도 기회가 있으면 유신헌법이 공포되던 72년 10월부터 국민투표가 진행되던 12월까지의 신문을 찾아보시길 바란다. 토씨를 제외한 대부분의 글자가 한문인 것과 영어 약자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빼면, 그 당시의 기사가 FTA 환영 기사인지 유신체계 환영기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언론의 논조가 동일하다.
우리의 대통령은 지금 박정희의 유신체계로의 전환과 같은 정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상독재 체계와 일부 언론 그리고 자신의 측근 정치인들을 동원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단 하나의 형식적인 차이라면, 어쨌든 박정희도 실시했던 국민투표를 "이건 자신의 권한"이라며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한미 FTA가 체결되느냐, 체결되지 않고 더 연기되느냐, 혹은 섬유산업이나 자동차 산업에서 수백 억 원 혹은 수천 억 원의 상대이익을 발생시키느냐 아니냐 등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경제의 질적 전환에서 오히려 이것은 소소한 사건일 수도 있다. 체계의 근본적인 전환에 비하면, 농업 개방이나 쇠고기 시장의 전면 개방은 오히려 더 작은 사건일 수 있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는 국제 변호사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경제학자들은 "악마는 거시경제에 숨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방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문제다
개인의 입장에서, 특히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민주주의는 불편하다. 87년 체계의 호민관인 대통령의 눈으로 볼 때도 민주주의는 불편하다. 효율적인 방안이 눈에 뻔히 보이는 데에도 국민들 모두를 설득해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 중 특히 뻔히 드러나 보이는 '도덕적 해이'나 '기회주의'를 방지할 수 없는 민주주의는 때로는 부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국민경제가 작동하기 위해서, 그것도 어떤 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그 세금의 수혜를 받는, 기계적인 시장주의자들이 불편해하고 폄하하는 이 국민경제가 작동하기 위해서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장치는 바로 민주주의다. 불편해도 상호 간 합의하고, 때로는 정답이 아니라도 같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국민경제는 굳이 이렇게 어렵게 운용할 필요가 없다.
가장 신자유주의적이고 가장 공격적인 시장주의자를 대표하는 현재의 세계경제 체계, 즉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us)'의 주역들도 국민경제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민주주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대통령, 우리의 호민관은 지금 국민경제를 끌고 최소한 박정희의 유신체계 그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1차적으로는 통상독재이겠지만, 2차적으로는 관료독재,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초국적 기업과 독점 기업이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끌고 나가는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 물론 모든 시장경제는 독점의 방향으로 흐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걸 '완전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효율성의 방향으로 운용하고자 하는 것이 현대 경제학 이론의 흐름이다.
물론 모든 국민이 뭔가를 원한다고 하면 그 쪽으로 가는 것이 옳다. 박정희의 유신헌법, 87년 6월의 9차 개정헌법, 이런 것들이 모두 다수의 국민들이 원했던 방향으로 가게 된 결과다.
그러나 박정희나 전두환도 다 했던 이런 최소한의 민주주의 장치와 의무를 하지 않는 87년 체계의 첫 번째 호민관, 그가 바로 우리의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이시다.
민주주의는 정답을 찾는 장치는 아니다. 서로 이해관계도 다르고, 계층도 다르고, 성별도 다른 사람들이 '국가'라는 틀에서 최소한의 합의를 통해 많이 불편하더라도 세금도 내고, 해고도 감수하고, 또 더 큰 경제적 폐해도 감수하면서 살아가게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가, 내가 이해하는 '경제학적 관점에서의 민주주의'다(매우 협소한 의미의 기능론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인 셈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개국 이래로 가장 고결하며 가장 궁극의 위치에서 이 시스템을 수호하고 있었던 것이 헌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굴욕의 역사라고 하지만, 제헌 헌법이 도입된 이래 1945년 막 해방되었을 뿐인, 현재의 아프리카 수준도 안 됐던 신생 독립국을 세계경제 10대 대국으로 만든 그 근본적인 힘은 국민의 힘이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준 마지막 장치가 헌법이다.
이제 한미 FTA를 통해서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라는 제도가 이 헌법에 도전을 한다. 건국 이래의 정신이 최대의 도전을 받는 셈인데, 미국으로서는 독립선언이, 프랑스로서는 혁명에 의한 인권선언 같은 체계의 보호자가 도전을 받는 셈이다. 건국 헌법을 승계한 우리의 헌법이 지금 최대의 도전을 받는 셈이다. 그것도 세계 최대의 정부를 등에 업은 세계 유수의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서 말이다.
물론 국민들이 원하면 헌법이 개정될 수도 있다. 이건 별개의 문제다. 만약 그렇게 되면 또 다른 방식의 진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호민관은 이 점을 국민들에게 물어보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설명하겠다"고 한다. 박정희의 유신체계에 빗대 설명하자면, '유신특별법' 같은 것을 국회에서 대충 통과시키고, 그 다음에야 국민들에게 유신체계의 당위성을 설명하겠다는 것과 똑같은 사건이다.
그러나 87년 체계는 대통령에게 "이래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지 않았다. 87년 9차 개정헌법을 만들면서 아무도 87년 7월 항쟁에 의해서 생겨난 호민관이 이렇게 다시 헌법의 위기 앞에서 "구국의 결단"이라고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87년 체계에는 큰 구멍이 생겼다.
한미 FTA로 인해 생겨날, 섬유와 자동차 혹은 의약품 부문의 크고 작은 변화들은 대한민국이 당면하고 있는 이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장파동' 위기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세계 최대의 미국 자동차업체나 디즈니 혹은 제약회사들로 인해서 위기가 오는 것이 아니다. 진짜 위기는 헌법의 근본적 작동기반이 무너지는 데에서 올 것이다.
통상독재가 있었느냐 관료독재가 있었느냐 아니면 협상 중간에 적절한 정보 공개가 있었느냐, 밀실협상이냐 아니냐, 국회에 제대로 보고를 했느냐 아니냐…. 이런 것들은 이 근본적인 위기 앞에서는 다 부차적인 일들이다.
국민투표만이 이 위기에서 우리를 구할 것이다
한미 FTA는 수만 개의 얼굴을 가질 수 있고, 또 최종 협정문은 하나라도 운용 과정에서 수많은 양상을 띨 수 있다. 어떤 협상을 할 것이냐 혹은 어떻게 운용을 할 것이냐, 이런 것들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문제는 우리가 '국민경제의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할 때 어떻게 이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것인가' 하는 것이다.
독재자는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고, 심지어 대통령제가 의원내각제로 바뀌더라도 어떤 수상과 집권여당이 등장해서 또 어떤 기기묘묘한 방식의 독재를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잘 만든 규정과 헌법이라도 이 모든 것을 사전에 모두 차단할 수는 없다.
'정신'으로 표현하자면, 지금 우리의 대통령은 제헌헌법의 건국정신과 87년 체계의 정신을 모두 부정하고 "구국의 결단"에 의해서 시스템을 운용하는 방식으로, 즉 최소한 73년 이전의 역사로 돌아가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한나라당이 집권하든 열린우리당이 기적적으로 회생하든, 아니면 또 다른 정치세력이 등장하든 상황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지금 대통령이 죽이려고 하는 것은 서민경제나 민생 혹은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아니다. 농업, 영화, 혹은 공공적 제도를 대통령이 죽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 모든 것을 운용하는 제헌의회의 정신, 즉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모두가 동의하고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점인 헌법의 건국정신을 죽이는 것이다. 대통령은 헌법의 조항은 잘 해석할지 모르지만, 그 사이를 흐르는 헌법의 근본정신을 지금 스스로 죽이고 있다는 점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박정희도 유신헌법을 만들면서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였다. 그도 지금의 대통령처럼 한다고 하면 절차법과 '로드맵', 그리고 장차관 워크숍 같은 것들로 유신체계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는 국민들에게 물어봤다. 독재자라서 더 국민의 힘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국민의 합의와 동의는 언제나 필요하다. 그리고 그 변화가 근본적이라면 더더욱 필요하다.
'외로운 구국의 결단'을 '국민의 결단'으로 바꾸는 게 우리가 살 길
한미 FTA는 헌법과 국민들 개개인의 삶에 모두 영향을 끼친다. 물론 모든 조약이 그렇지만, 이 정도면 '통일'을 제외하고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중대 변화(major change)'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며칠 동안 방송들이 생방송하면서 매일 1면을 채우는 일이 국민투표를 해야 할 "기타 중대사유"가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중대사유란 말인가?
한미 FTA를 하는 것도, 더 큰 규모의 개방을 하는 것도, 혹은 양떼들 사이에 늑대 한 마리를 풀어놓는 것도 그 어떤 일이 진행돼도 좋다. 적절한 국민적 합의가 존재한다면 말이다.
EU 경제통합 과정에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2~3번의 국민투표를 거쳤다. 정부가 신자유주의의 핵심 대처주의라고 부르는 그런 영국도 국민투표를 했고, 그 결과 화폐통합을 거부했다. 다보스 포럼 등을 통해 유럽 내에서 가장 개방 수준이 높고 가장 신자유주의 체제에 가까운 나라라고 홍보하는 스위스도 국민투표의 결과에 따라 EU 가입을 거부했다.
현 상태에서의 한미 FTA에 대한 최적의 해법은 국회에서 재협상을 의결하고, 통상 시스템과 지원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정비해서 2~3년 간 '한미 FTA 협상 2기'로 들어가는 것이다. 대통령이 얘기하는 것처럼 현재의 제도와 틀을 그대로 존중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국회가 박정희 유신헌법을 91.9%로 통과시켰던 그 날의 대한민국 국회와 많이 다른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 힘이든 헌법의 힘이든, 대한민국에서 궁극의 힘과 궁극적 의사결정자는 국민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개국의 정신이자 헌법의 정신이다.
우리의 대통령이 최소한 박정희 수준의 민주주의 호민관이 되기를 바란다. "현 상태에서의 한미 FTA는 아니다"라는 국민들은 버리고 갈 것인가? 투표 놀음으로 헌법정신이 지켜지지는 않는다.
한미 FTA를 '국민의 결단'으로 만드는 것이 감히 내가 생각하는 헌법의 지혜다. 수정보완이든, 재협상이든 혹은 강행이든, 이것이 국민투표라는 절차를 통과하는 것이 그 이후에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경제를 지키는 동시에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이런 일들을 미리 막지 못해서 대통령의 "고뇌에 찬 구국의 결단"에 온 국민의 운명을 맡겼던 87년 체계, 그리고 그 87년 체계의 정신은 이미 죽었다. 87년 헌법의 권위도, 87년 헌법의 시대정신도, 대통령의 구국의 결단과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이걸로 건국의 정신까지,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의 권위까지 같이 무덤에 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대통령의 결단을 지지하는 언론이 아마도 90%를 넘을 것이고, 이런 방향을 지지하는 공무원도 50%를 훌쩍 넘어설 것 같고, 현재의 협상안을 지지하는 국민도 50%를 넘어설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의 중대결정을 여론조사로 하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나머지 국민들에게도 "이게 전체의 합리적 결정"이라고 따르고 수긍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과 이유를 만드는 것만이 현재의 위기에서 이 시스템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박정희도 그건 했다. 한미 FTA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경제를 위해서 지금은 국민투표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국회에 통상절차를 규정하는 법이 없어, 현재의 한미 FTA 협상은 대통령령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구조적 문제라서 나중에 보완할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령으로 '위헌적 요소들을 담고 있는 국제조약'을 체결하는 현재의 이 상황은, "구국의 결단"이라고 표현되고 있지만, 이런 일은 유신헌법 아래서도 벌어지지 않았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설명과 설득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최소한 선택권은 주고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헌법은 이를 보장하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정략결혼 시킬 때에나 벌어지는, 이런 식의 '다 결정해놓고 설명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오해와 혼란, 그것을 딛고 다음 단계로 진화하는 분기점에서 '외로운 대통령의 결단'을 "국민의 결단"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을 헌법이 보장하고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이 헌법 정신에 의해 움직이는 민주공화국이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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