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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후엔 청문회장, 10년 후엔 돌팔매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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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후엔 청문회장, 10년 후엔 돌팔매질"

[한미FTA 뜯어보기 302 : 기고]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따져볼 일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기어이 밀어붙일 태세다. 20일 노 대통령은 "한미 FTA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FTA를 반대하는 정치인은 거짓말하지 말라"고 특유의 독설을 섞어가며 한미 FTA 추진의 정당성을 다시 한 번 설파했다.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녹색평론사 펴냄) 등의 책을 통해 한미 FTA의 문제점을 앞장서 지적해 온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경제학)는 21일 <프레시안>에 이런 대통령의 언급에 대한 논평을 보내왔다. 우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로 자신이 얼마나 큰 책임을 져야 할지를 따져볼 때"라고 지적했다. <편집자>

대통령과 통상 관료의 결탁이 빚은 '폭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마지막 종착역을 불과 2주 남짓 남겨놓고 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종착역일 수가 없다. 정상적인 FTA 협상은 4~5년 정도 걸린다. 2주 내에 협상이 끝나지 않더라도, 약 1년에 걸친 '협상 1기'에 대해 평가를 하고 양국이 '협상 2기'로 넘어가면 그만이다.

미국도 정부가 직접 협상 주체로 나섰던 특별한 기간이 끝나고 통상적인 과정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일부에서는 어떻게 미국 의회와 협상을 하느냐고 주장하지만, 원래 미국은 의회가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나라다. 게다가 지금 미국 의회를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은 '호혜적 무역'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Fair Trade'를 전면에 내걸고 지금 주류가 되어 있다.

정말로 한미 FTA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절체절명의 과제라면 협상의 두 번째 국면을 통해 지난 1년 동안의 협상 결과를 재평가하고, 양국이 모두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하는 또 다른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남은 2주 동안 지난 1년간 내줬던 것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주는 밀실 협상을 통한 '정치적 타결'은 곤란하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지난 1년간 한국 정부가 보인 비정상적인 협상 태도를 보면 이뤄지기 힘들 듯하다. 지난 1년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바로 대통령과 협상 관료의 결탁이 빚은 '폭주 현상'이다. 단적인 예는 정부가 '비공개'라고 주장하는 문서 한 건이 복사돼 국민에게 알려졌다고 국가정보원까지 나서서 "발본색원"을 외친 일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적 행위'를 한 장본인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은 협상 기간 내내 이런저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개입이야말로 양자 협상에서는 가장 큰 이적 행위다. 왜냐고? 협상단이 협상을 끝내고 난 다음에 수반에게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거부권 자체가 가장 중요한 협상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정부의 수반은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세부적인 내용을 보고 받고서도 '아는 척' 하지 않는다. 언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한미 FTA에 대해 이것저것 따지는 것 봤는가? "열심히 해보자"는 외교적 수사 외에는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다 안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으니 이것이야말로 바로 이적 행위였다.

'협상의 기본'을 어기면서까지 노 대통령이 호들갑을 떠는 데는 사정이 있다. 한미 FTA는 노 대통령과 통상 관료, 그들만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아, 한국무역협회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 기관의 회장은 '경주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과 같은 노 대통령의 '업적'을 만들어낸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다. 지금 "한미 FTA를 꼭 해야 한다"고 나서는 CEO가 누가 있는가?

대통령은 이미 책임질 만큼 진 셈?

한미 FTA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에서 청와대에 건의를 해, 그 건의를 노무현 대통령이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그 이후 한미 FTA에 대한 모든 정보는 "미국 정부의 요청"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내치를 담당하고 있는 행정자치부 장관만 죽을 맛이다. 사고는 청와대, 외교부가 쳤는데, 뒷수습은 행자부 장관과 경찰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1년 만에 이 나라는 완전히 '경찰국가(Polizeistaat)'로 돌변했다. 과격 시위가 문제라고? 그렇다면 미국 경찰 앞에서는 집회의 자유를 보장받던 시위대가 한국 경찰 앞에만 가면 '폭력 집단'으로 돌변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1987년 이후에 계속 확대돼 왔던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집회ㆍ결사의 자유'는 20년 만에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퇴보하면서 정작 가장 큰 피해를 본 정치인이 노무현 대통령 본인이다. 노 대통령은 한미 FTA를 추진하기 불과 1년 전만 해도 그를 믿고 지지하던 우군이 있었다. 그러나 1년 만에 이 세력의 대다수는 사라지거나 그에게 등을 돌렸다. '정치인 노무현'의 지지기반은 이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다 사라졌다.

만약 한국이 일본, 영국과 같은 내각제를 택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벌써 대통령 직을 내놓아야 했을 테다. 큰 추문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대통령이 여당 당적을 내놓아야 했던 사정이 그 증거다. 노 대통령은 '87년 헌법'을 문제 삼으며 개헌을 주장하지만 정작 이 헌법이야말로 그의 든든한 보호막이다.

바로 이런 붕괴의 출발점이 바로 한미 FTA다. 오죽하면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후보 세 사람이 쌍수를 들고 한미 FTA를 환영하겠는가? 노 대통령은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한미 FTA 빼고는 다 바꾸겠다"고 했던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에게 표를 줬던 사람 중 한미 FTA를 찬성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진짜 책임 추궁은 임기 후에…

그러나 이런 지지자의 이탈로 노 대통령의 책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사실 노 대통령에 대한 책임 추궁은 임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최소한 '투자자 국가 제소제', '비위반 제소제'와 같은 독소 조항을 그대로 두고 협상을 종료할 경우, 노 대통령은 청문회장에 서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청와대, 외교부를 제외한 모든 정부 부처는 이 두 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향후 진행될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약 청문회가 열린다면 노 대통령은 과연 이런 반대 의견에 대해 보고를 제대로 받았는지, 또 그런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지시를 내렸는지 등에 대해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일단 체결되면 FTA의 경우 보통 10년 후에 재협상을 하게 된다. '대통령 노무현'이 2주 동안의 조급증으로 야기된 결과를 수정할 사람은 차기 대통령도 아니고, 차차기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지금 한미 FTA를 강행하겠다고? 10년 후 노무현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 생각했다"고 머리를 조아려도 국민의 돌팔매질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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