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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워도 너무 쉬운 한미FTA 비판, 그 함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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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워도 너무 쉬운 한미FTA 비판, 그 함정은?

[한미FTA 뜯어보기 237 : 기자의 눈]'한미FTA=국익 싸움'이라는 위험한 공식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판하기란 너무 쉽다. 협상장 안팎에 지뢰들이 널려 있어 한 발 내딛기만 하면 그냥 '뻥' 터진다.

국내적으로는 한미 FTA 추진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드러낸 '비민주성'이 가장 큰 지뢰다. 이번 7차 협상처럼 미국에서 협상이 열리면 이런 점이 더욱 부각된다. 협상 첫날인 11일 반(反)FTA 시위대는 협상장 바로 앞에서 북과 꽹과리를 치며 시위를 벌였지만, 워싱턴 경찰은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보도 시위를 합법으로 인정하는 워싱턴의 '상식적인' 법 때문이었다.

내주는 것만 많고 도무지 받아오는 게 없는 우리 측 협상단의 '무능'도 좋은 씹을 거리다. 한미 FTA가 3월말까지 체결되지 않을까 봐 조바심이 난 보수언론들도 이 비판법을 애용한다. 하지만 우리 측 협상단도 "투자자-국가 간 소송에서는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할 정도의 실력은 있다.

한미 FTA 협상의 지휘권을 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의 독주도 지뢰 중 하나다. 협상이 7차까지 진행된 최근, 기자는 협상장 주변에서 재경부, 산자부 등 다른 부처 관계자들의 볼멘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한미 FTA를 위해서라면 백번이라도 양보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기본자세지만, 그래도 'FTA 체결 자체'에만 목을 매는 통상교섭본부의 독주는 도가 지나치다는 평가다.

'철저히 언론을 기피하라'는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하지만 여성 월간지에서는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이야기하는 센스를 지닌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숨겨진 지뢰 중 하나다. 기자를 포함해 FTA 취재단은 지난 1년 동안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그저 '위'에서 시킨 협상 대표라는 직책을 수행하고 있을 뿐인 김종훈 대표가 김 본부장의 '총알받이'로서 온갖 욕이란 욕을 혼자 다 먹는 걸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우리 정부만 씹기 좋은 대상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고(高)자세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쉽다. 한국 측 협상단을 물 먹이기로 작정이라도 했는지 1차 협상 때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 "우리는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미국에 대한 기자들의 반감은, 한미 FTA 찬반 여부를 떠나 상당히 커진 상태다. 한미 FTA 협상 몇 번만 더 하면 기자들 모두 '반미주의자'가 될 판이다.

'한국과 미국의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허구에 빠지지 말자
▲ 1차 워싱턴협상, 3차 시애틀협상, 5차 빅스카이협상에 이어 7차 워싱턴협상 때에도 한국에서 온 원정시위대에 합류해 한미 FTA 반대 목소리를 전하고 있는 미국 시민단체 회원.ⓒ연합뉴스

이밖에도 비판을 하려면 끝이 없다. 그런데 '쉽지 않은' 미묘한 비판이 하나 있다. 바로 한미 FTA를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나라의 '총성 없는 싸움'으로 보고, 이 싸움에서 한국이 밀리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기존 정치외교학이나 국제통상학에서 통상협상을 판단하는 고전적인 시각으로서, 분명 이런 시각에서 협상을 비판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한미 양국 간 힘의 불균형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런 비판은 우리나라가 미국에 얼마나 휘둘리고 있는지를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판은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미 FTA 협상을 한국과 미국의 국익 다툼의 장으로 보는 순간, 비판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전환되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의 기저에는, 한미 FTA 협상이란 한국은 하나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미국을 붙들고 늘어지고, 미국은 한국에서 하나라도 더 뜯어내야 하는 협상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은연중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하나라도 더 얻어내야 성공한 협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런데, 한국이 원하는 것을 미국이 들어주면 정말 성공한 협상인가? 또는 미국이 원하는 것을 한국이 들어주면 실패한 협상인가?

한국 측이 "강하게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는 미국의 반덤핑 제도를 보자. 한국 측은 한국에서도 국내산업 보호를 위해 실시하고 있고, 세계무역기구(WTO)도 합법이라고 인정한 '산업피해 합산'을 미국에는 하지 말라고 요구해 왔다. 이런 요구를 관철시켜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미국 정책당국의 손발을 묶어놓고, 우리는 환호성이라고 질러야 할까? (미국의 악명 높은 반덤핑 제도에 찬성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다른 예로 미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한 영향을 받아 최근 거세지고 있는 노동 관련 미국 측 요구를 들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최근 노사정 합의로 전 세계 선진국 대부분이 허용하는 복수노조 설립을 3년이나 연기한 '노동 후진국'이다. 미국 측은 한국의 노동 관련 기준을 국제노동기구(ILO) 수준으로 높이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미국 측 요구가 관철될 경우 우리는 잃은 것인가, 아니면 얻은 것인가?

미국 측이 협정문에 넣자고 주장하는, 그러나 우리 측이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재벌 관련 각주'도 그렇다. 재벌도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하자는 취지의 조항이 한미 FTA에 포함되면, '삼성 공화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경제 질서가 일말이나마 더 나아질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이처럼 '미국 대 한국의 협상성과 대차대조표'를 그리기 시작하는 순간, 한미 FTA 협상 내용에 대한 평가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투자자-국가 소송제(ISD)'가 상대적으로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덜 받았던 이유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이 제도는 '자본의 미시권력 강화'라는 FTA의 본질을 적확히 드러내고 있지만, 한미 양국 간 국익 다툼의 구도에서는 명확한 대결구도를 그리지 못한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3월말 전화통화로 한미 FTA 협상을 타결한다는 구상이 현실화되는 등 협상이 정말 막바지에 다다른 분위기다. 앞으로 약 45일 동안 수많은 민감 쟁점들에 대한 협상 결과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 때마다 우리는 한국이 뭘 얻었고,미국이 뭘 양보했는지 한미 대차대조표를 만들려는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승패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미FTA의 '진짜 모습'이 보이고, 나아가 'FTA 이후'의 국면에 제대로 대응하는 길도 열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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