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만 달렸다. 가난한 사람에게 의료비 부담을 지우는 새로운 의료급여 제도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12일 유시민 복지부 장관을 면담했으나 결국 인식 차만 확인하고 성과 없이 끝났다.
특히 면담이 끝난 직후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를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찰이 '수배 중인 인물'이라며 연행하는 일이 발생해 양측 사이의 갈등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유시민 "반대 있어도 내 철학대로 간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장애인이동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는 이날 오후 유시민 장관을 만나 복지부의 새로운 의료급여 제도에 대한 재고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유 장관은 "한정된 재원을 절약해 더 필요한 데 쓰는 것은 장관으로서 할 일"이라며 "시민·사회단체가 반대하더라도 그것은 철학의 차이일 뿐"이라고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를 일축했다.
유 장관은 또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선택 병·의원제도 역시 주치의제의 전 단계이므로 문제될 게 없다"며 "의료급여 수급권자에 대한 플라스틱 카드 제도 역시 전 국민 카드 제도의 도입이 예정될 게 없다"고 그간 시민·사회단체가 문제점을 지적해 온 내용에 대한 반박으로 일관했다.
이런 유시민 장관의 답변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면담이 끝난 직후 바로 논평을 내 "유 장관은 복지부 장관으로서 가져야 할 철학을 제대로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의료급여 제도의 현황에 대한 업무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게 됐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업무 파악도 못하고 있는 유시민"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유시민 장관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현재 의료급여, 국민건강보험 재정 누수의 가장 큰 원인은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병·의원 등 공급자의 과잉 진료"라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의료기관의 과잉 의료 서비스를 차단하는 '질병군 별 포괄 수가제'를 5년간 시범 운용하고도 대한병원협회 등의 반발로 도입하지 못했다.
이 단체는 "유 장관이 선택 병·의원제에 이어 도입한다는 주치의제는 훨씬 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한 제도"라며 "전 국민 주치의제 도입 계획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치의제 운운하는 것은 의료 이용이 많은 환자의 병·의원 이용을 제한하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단체는 이어 "유 장관이 의료급여 수급권자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플라스틱 카드를 도입하려고 한다면 이는 더 큰 문제"라며 "전 국민의 의료 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될 우려가 있는 사업은 결코 추진돼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 단체는 "굳이 국민건강보험증을 카드로 대치하는 것이라면 주민등록증이 있는데 왜 또 돈을 들이냐"고 덧붙였다.
"근거 없는 자신감만 넘치는 유시민"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면담을 해보니 유시민 장관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때 내세운 공약 중에 복지부가 지키지 않은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근거 없는 자신감만 넘치는 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잘못된 인식을 바탕에 두고 가난한 사람에게 국민 세금을 축낸다는 오명을 씌우고 이들의 치료권을 박탈하며 사회적 차별의 낙인을 찍는 유시민 장관은 복지부 장관 직에서 즉시 물러나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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