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장관이 직접 작성해 배포한 '의료급여제도에 대한 국민보고서'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 총 15쪽으로 된 이 보고서에서 유 장관은 주로 의료급여제도의 여러 가지 문제, 특히 수급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자극적인 사례를 곁들여 거론했다. 의료급여제도 재정위기의 책임을 수급권자에게 돌린 것이다.
본인 스스로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로 1종 의료급여 환자였던 건강세상네트워크 강주성 대표가 이런 유 장관의 글을 읽은 감상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강 대표는 과거 출판사 푸른나무에서 유 장관을 '스타'로 만든 <거꾸로 읽는 세계사>,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을 편집한 사람이다. <편집자>
최근 유시민 장관이 추석 연휴에 썼다는 '의료급여제도에 대한 국민보고서'가 화제다. 유 장관은 의료급여제도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이야기하면서 '반성' 운운했다. 목표 설정의 오류, 정보 시스템의 부재, 도덕적 해이에 대한 통제 부재, 엄정하지 못한 공급자 관리 등 수많은 문제점이 거론됐다.
유 장관의 새삼스러운 호들갑을 보면서 환자로서 좀 열을 받아서 한마디 할까 한다. 예전에 백혈병이 걸린 후 의료급여 1종 혜택을 받았던 나로서는 그 글을 보고 여러 생각들이 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의료급여제도 재정누수의 주범을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돌린 것이다.
"무슨 말이냐? 나는 수급권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함께 공급자들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로 지적했다"고 할지 모르겠다. 실제 글에서 유 장관은 의료급여 공급자의 문제점과 그 대책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와 관련한 근본적인 대안들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런 언급은 면피 용에 불과하다.
본인부담금을 내지 않는 의료급여가 무상의료인가?
유 장관은 의료급여를 "제한적인 무상의료의 첫 출발"이라고 하면서 "2005년도에 본인부담금을 전혀 내지 않는 1종 수급권자는 99만6000명"이라고 말했다. 이런 언급은 의료급여제도를 그야말로 '돈 한푼 안 내고 이용하는 무상의료제도'로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유 장관이 글에 집어넣은, 1년에 혼자 14억 원을 쓰는 혈우병 환자 이야기는 이런 인식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급여 1종 환자라고 해서 실질적으로 본인부담금이 없는 것이 아니다. 현재에도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내고 있는 수급권자들은 졸지에 돈 한푼 안 내는 무상 의료이용자가 됐다. 나같은 백혈병 환자에게 의료급여 1종은 건강보험의 암 환자가 내는 입원 본인부담금을 10% 덜 내는 의료비 할인제도일 뿐이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비용이 전체 의료비 중 거의 30%를 넘나드는 의료현실에서는 여전히 중병이 걸리면 아무리 의료급여 수급권자라 해도 패가망신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한국의 현실과 동떨어진 유 장관의 글은 의료급여 환자들을 그야말로 열 받게 하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라고? 공급자들 관리나 잘 하라
유 장관이 예로 든, 일년에 2287회나 의료서비스를 이용한 모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감싸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나보고 문제의 핵심에 방점을 찍으라 하면 나는 가차 없이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가 훨씬 더 심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예로 들어보자.
암에 걸린 모 환자. 그는 물론 의료급여 1종 환자다. 이 환자는 최근까지 총 5077만2352원의 진료비를 냈다. 우리는 이 환자의 진료비 영수증을 가지고 올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진료비 확인심사 요청을 했다. 부당하게 환자에게 청구한 금액이 그 중 얼마나 되었을까? 무려 2468만9772원이었다. 전체 진료비의 48.63%가 부당청구 금액으로서 환수받아야 할 돈이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총 3414만1210원의 진료비 중 58.3%인 1990만4647원이 부당청구 금액으로 나온 환자도 있다. 총 1500여만 원 중 580만 원을 부당청구 금액으로 환수받은 내 경우는 '새 발의 피'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치료비가 많이 나온 몇몇 환자에게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의료급여 환자뿐만 아니라 전체 건강보험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일일 정도로 도덕적 해이가 아주 일반화되어 있다. 물론 의료계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기준을 욕할 것이다.
하지만 부당청구의 자세한 내용을 뜯어보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부당청구 중 약 60% 이상은 보험 적용이 됨에도 불구하고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로 속여서 직접 환자들에게 받아낸 돈이다. 환자들은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가산을 탕진하고 빚을 내기도 했을 것이다.
홍길동 씨의 병원 방문기
유 장관이 글 중간에 홍길동 씨의 하루 일과를 소개했는데, 난 홍길동 씨의 병원 방문기를 소개해 볼까 한다.
홍길동 씨가 병원에 갔다. 병원 창구에서 환자에게 몇 가지 묻고는 선택진료(특진) 신청서를 내민다. 환자는 선택진료가 뭔지도 모르고 신청서를 써 낸다. 이 신청서는 복지부의 양식을 병원에서 자기 입맛대로 바꾼 것이다. 환자는 해당 과에 가서 의사가 하라는 대로 각종 검사와 치료를 받는다.
의사가 종양이 의심된다고 CT를 찍었는데, 그 비용도 비급여로 환자에게 다 받아낸다. 환자가 항의하면 이건 보험이 안 된다고 우기고, 나중에 진료비 심사를 해서 다른 결과가 나오면 기준이 잘못됐다고 투덜거린다. 물론 항의도 못 하고 심사청구도 안 한 환자라면 이런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병원에서는 두 번 쓴 약을 세 번 썼다고 청구한다. 보험 적용이 되는 것은 비급여로 직접 환자에게서 돈을 받아낸다. 몇 백만 원을 치료비로 내고 달랑 영수증 한 장 받아 든 환자들 가운데 자기 진료비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영수증은 복지부에서 내려보낸 양식이 교묘히 변형된 것이어서, 환자는 선택진료비를 냈음에도 자기가 어디에 얼마를 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진료비의 자세한 내역을 알기 위해서는 따로 진료비 세부내역서를 떼어야 한다. 믿고 돈을 내고 믿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병원 문턱만 넘으면 뭔가 가슴이 답답해진다는 나의 부모님 같은 어른들은 그냥 '코 베이고 왔다'라고 말하시곤 한다. 건강보험 환자의 경우든 의료급여 1종 환자의 경우든 마찬가지다.
돈이 없으면 주는 대로 먹어라?
유 장관은 의료급여 환자의 80%가 급여일 365일 미만이고, 731일 이상 급여를 받은 사람은 전체의 3.2%에 불과함에도 마치 의료급여 환자가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묘사했다. 더 화가 난 것은 유 장관의 글 중에서 의료급여 환자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듯한 다음의 구절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부당한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시대를 사는 다른 국민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는 사람으로서 이런 정도는 감수할 수 있고, 또 감수해야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귀중한 그 무엇이 공짜로 제공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유 장관이 의료급여 환자들이 당하는 차별을 알고나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 현재 의료급여 환자들은 각종 불법과 차별의 관행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의료기관을 이용할 경우 보증금이나 보증인을 요구받고, 진료 거부나 조제 거부를 당하며, 의료급여비 지급이 연체되고 있다는 이유로 소극적인 진료만 받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얼마 전에는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서 뇌종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수술을 해야 하는데 단지 보증인을 세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름 이상 입원을 하지 못하다가 서러움에 복받쳐 우리 단체에 전화를 걸어 왔다. 결국 입원을 하긴 했지만, 그 환자는 정말 서러웠을 것이다. 그는 IMF 때 사업에 실패했고, 부인은 가족을 버리고 떠났고, 그 후 병에 걸린 상태에서 아이 둘을 키워 온 사람이다. 그만해야겠다. 더 이야기하자니, 우리네 삶이 너무 서럽기에.
당신의 기회주의가 슬프다
유 장관의 글에 들어 있는 도전적인 질문들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겠다. 그의 입장에서는 도전적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별로 도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의 사항들에 대해 장관이 재임기간 중 별다른 대책들을 내오지 않으면 도전적이고 뭐고 떠나서 굳이 더 이상의 언급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첫째. 앞으로 어떻게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늘리고 차상위 계층에 대한 대책을 세울 것인지에 대해서나 도전적인 질문을 하길 바란다. 현재 우리나라 수급권자가 약 3%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을 테고, 정치인들이 좋아하는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속된 말로'쪽 팔리는 수준'이라는 것은 유 장관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둘째,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건강불평등에 대한 대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우리네 백혈병 걸린 환자들 가운데 허위이혼을 해서 의료급여 환자가 되는 분들이 간간히 있다. 병에 걸린 후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패가망신이라는 답이 딱 나오기 때문이다. 병원비와 생활비 등을 계산할 때 감당이 안 되는 게 뻔하기 때문에 생계형도 아닌 생존형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다. 물론 그 자체로서는 나쁜 행위다.
그러나 그것은 법을 들이밀어서 소위 이 잡듯이 뒤지고 닥달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건강이 안 좋은 것은 각자가 자신의 몸 관리를 잘못해서 그런 것이니 죽든 살든 당신들 맘대로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정부는 건강불평등을 줄이고 어떻게 건강형평성을 이뤄나갈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셋째, 저소득층의 건강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 달라. 이미 이야기한 대로 저소득층은 각종의 차별을 받는 것과 함께 자신의 건강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빚어지는 결과가 저소득층의 건강상태 악화이고 사회적 비용의 증가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돈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는 일을 막고,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에 "돈 없어서 치료 못 받는 그런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라고 한 말을 증명할 정책을 내놓으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미 누누이 이야기했던 공급자에 대한 관리다. 공급자에 대한 관리의 대안도 없이 수급자들의 도덕성 문제를 논하는 것은 강자를 등에 업고 약자에 대해 칼을 겨누는 것이다. 이건 비겁한 거다. 그런데 지금까지 모든 정권들이 다 그랬다. 정작 문제는 돈 가진 자, 권력을 가진 자로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두들겨 맞는 것은 국민들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기회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던 데 있다.
아주 소수의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들은 문제 삼으면서도 광범위하게 일반화된 공급자들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서는 별로 도전적인 질문들을 하지 않는 유시민 장관의 글과 그 글에서 드러난 그의 생각, 그것도 기회주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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