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는 극동문제연구소의 교수진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문제 관련 정책소식지입니다. 이번 8호는 '임기 중반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대북정책: 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4편의 글이 실렸습니다. 7월 첫째 주 동안 매일 1편씩 소개됩니다.
1972년 설립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북한·통일 문제에 관한 연구와 정책 제안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최고의 민간 연구기관입니다. <편집자>
과도한 의욕, 성과의 빈곤
2년 반의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은 한 마디로 과도한 의욕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의 버릇을 고치고 북을 길들이겠다는 의욕만 앞선 나머지 결과적으로는 최악의 남북관계 파탄만 가져왔고 정작 북을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의욕의 과잉은 지난 2년 반 동안 일관되게 나타났다. 북이 먼저 고개 숙이고 나와야 한다는 단호한 의욕은 결국 북이 굴복하고 나올 것이라는 과도한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임기 중반인 지금 성과의 빈곤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과도한 의욕은 출범 초기 전임 정부와의 지나친 차별성 확보로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실패한 정책으로 간주하고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 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부의 정책과 성과 및 합의 사항 모두를 백지로 돌려 버렸다.
당선자 시절에 이미 통일부를 해체하려고 시도했고 대통령의 통일부 첫 업무보고에서 6.15 선언과 10.4 선언은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금기어가 되었다. 북측이 지속적으로 10.4 선언 이행을 요구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ABR(Anything But Roh)을 내세워 전임정부와의 단절을 강조했다.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규정성에 의해 전임 정부 시절 북한과의 합의사항을 하루아침에 부인한 것이다.
결국 임기 초반 과도한 차별성 강조로 10.4 선언 이행을 거부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기 시작했다. 전임정부와의 차별화를 통해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지나친 의욕이 북한의 거센 반발을 가져왔고 남북관계의 악화를 초래한 것이다.
첫 단추부터 실패한 ABR 대북정책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개성공단 확대불가 발언과 김태영 합참의장의 선제공격 시사 발언에 대해 북은 경협 협의사무소 폐쇄와 직원 추방 등 실제 행동으로 대응했다. 남과 북 사이에 정면 갈등의 상황이 생기자 이명박 정부는 북이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굴복해야 한다는 단호한 의지를 고수했다. '끌려 다니기'만 했던 과거 정부와 달리 북을 반드시 굴복시키겠다는 과도한 의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북은 굴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돌발 사안에 대해 단호한 강경 대응과 맞대응으로 일관하던 남북은 급기야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격사건을 계기로 결정적인 위기 상황을 맞게 된다.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삐라 발송이 시작되고 북의 군부가 정면 반발하면서 군사분계선 통행조치를 제한하는 12.1 조치가 취해지고 이제는 남북의 마지막 끈인 개성공단마저 위협받게 되었다.
해가 바뀐 2009년 1월, 북은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직접 군복을 입고 나와 남한과의 전면 대결 태세를 선언하고 조평통은 정치군사 차원의 모든 남북한 합의를 파기한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남과 북은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상대방의 굴복만을 요구하며 정면충돌마저 불사하는 양상이 된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임기 초반부터 상대를 굴복시키겠다는 과도한 의욕이 앞선 나머지 돌발적인 이슈가 생길 때마다 북과의 협상이나 상황관리보다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함께 북의 굴복만을 일관되게 요구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다.
이름만 바뀐 선핵폐기론
북을 대하는 행태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대북정책의 내용에서도 북한의 선굴복을 요구하는 과도한 의욕은 일관되었다. 후보시절 공약이었던 비핵·개방 ·3000 구상은 본질적으로 북한의 선핵폐기와 개혁개방이 전제되어야만 이행이 가능한 논리 구조이다.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에 포함된 비핵개방 3000은 결국 이명박 정부의 공식적 대북정책의 핵심이 되었고 그 본질은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해야 남북관계 진전이 가능하다는 선 북한변화론이었다. 불과 몇 년 전 부시 행정부가 고수했던 북한의 선핵포기론의 한국판 재연인 셈이었다.
반드시 북이 핵을 포기하고 전면적인 개혁개방에 나서도록 만들고야 말겠다는 과도한 의욕이 바로 비핵·개방·3000이었고 북은 당연히 정면 거부와 거센 비난으로 대응하면서 남북관계 악화를 촉진하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의 북핵 정책이라 할 수 있는 그랜드 바겐 역시 본질은 북한의 선핵폐기를 골자로 하는 단호한 협상 방식이다. 북이 핵무기와 핵물질을 내놓거나 포기하는 결심을 하지 않는 한 협상의 시작조차 불가하다는 과도한 의욕과 자신감이 바로 그랜드 바겐이었고 그 결과 북미 양자 협상마저 발목이 잡혀 진전되지 못했고 당연히 6자회담은 지금까지 교착되고 있다. 북을 반드시 굴복시키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단호한 의지와 지나친 의욕이 북핵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며 북의 핵무장만을 증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내민 손도 뿌리친다
북의 선굴복을 고수하는 이명박 정부의 과도한 의욕은 급기야 남북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의연한 기다림의 전략을 견지하고 북이 내민 대화의 손마저도 단호히 뿌리치는 지나친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2009년 상반기 강 대 강의 충돌을 지속하던 남북관계는 그 해 8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과 현정은 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그나마 개선될 수 있는 환경을 맞이했다. 북은 개성공단 직원을 석방하고 군사분계선 통행제한을 풀고 이산가족 상봉까지 수용하면서 이명박 정부와의 마지막 관계 개선 노력을 시도했다. 체면을 구겨가면서까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에 매달렸고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관광객의 신변보장을 담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북의 완전 굴복을 요구하며 무모한 기다림의 전략으로 일관했다. 북의 양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양보는 고작 옥수수 1만 톤 지원이었고 북이 그렇게 원했던 금강산 관광 재개는 애초부터 할 생각이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특사조문단이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전달하면서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이 시도되었으나 이명박 정부는 정상회담마저도 북의 굴복과 선양보를 성사의 조건으로 내걸었고 북으로서는 더 이상 남쪽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포기하고 말았다.
기다림의 전략과 북한 손 뿌리치기에도 역시 이명박 정부의 과도한 의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북한의 완전 굴복 이전에는 결코 북한이 내민 대화의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단호함과 이것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그것이다. 북한의 유연한 조치가 지금까지 고수해 온 대북정책의 성과라는 자의적 판단과 함께 북이 주도하는 협상국면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이 동전의 양면처럼 작동했던 것이다.
북이 유연한 입장을 보이는 것도 강경한 원칙적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한, 여기서 북이 내민 손을 잡는 것은 또 다시 북한의 페이스에 말려들 위험이 있고 따라서 북이 확실히 굴복하고 기어 나올 수 있도록 더 강력하고 강경한 대북 압박을 지속해야 한다는 심산이었다. 이제 남북관계는 회복 불능의 상황에 이르렀다.
北 급변사태에 대한 희망적 사고
북의 先굴복을 요구하며 결국 북이 굴복하고 말 것이라는 과도한 의욕에 사로잡혀 있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는 사실 그 바탕에 북한의 급변사태가 도둑처럼 조만간 임박할 것이라는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정세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과도한 의욕과 자신감의 저변엔 북이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가 토대하고 있던 것이다.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 이후 이명박 정부는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과 후계체제 동향에 부쩍 관심을 표명하면서 포스트 김정일 체제와 급변사태 가능성을 실제 염두에 두고 있다. 국정원과 국책연구기관이 나서서 북한체제 안정성 여부를 분석하고 급변사태 이후 대응방안을 분주하게 고민하고 있음은 마치 1990년 독일의 흡수통일 이후 북한 급변사태만을 허황되게 기대하며 남북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던 김영삼 정부 시기의 상황과 너무도 유사하다.
급변사태 대망론은 2009년 11월 북한의 화폐개혁에 대해서도 마치 북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호들갑으로 이어졌다. 급변사태가 항시 임박해 있다는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정세인식은 북한을 상대로 회담하거나 협상하는 것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이명박 정부 내에 6자회담 무용론이나 남북회담 소모론이 적잖이 포진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전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부인하고 북이 굴복하고 양보하기만을 끈질기게 요구하며 곧 망할 북한과는 협상조차 필요 없다는 식의 정세인식은 결국 남북관계 확대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북한 변화를 촉진한다는 기존의 대북포용정책(engagement)을 철회하고 오히려 남북관계 중단을 통해 북한의 버릇을 고치고 근본 변화를 강제하겠다는 대북강경정책으로 회귀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더하여 천안함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 중단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해주고 말았다. 천안함과 함께 침몰한 남북관계는 1988년 7.7 선언 이전으로 회귀하고 말았고 결과적으로 남북관계는 총체적인 파탄국면을 맞고 있다.
▲ 지난 5월 20일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와 함께 범인으로 북한을 지목하자 북한 조평통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현 사태를 전쟁국면으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연합뉴스 |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임기 중반까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에 대해 굴복을 요구하고 이를 수용할 때까지 남북관계 중단을 지속하며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그 과정에서 북핵 문제는 관리되지 못한 채 상황이 악화되고 있고 남북관계는 탈냉전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북을 확실히 버릇 고치겠다는 의지는 높이 살만 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 결과는 북의 버릇을 고치고 굴복시키기는 커녕 핵문제 악화와 남북관계 파탄으로 한반도 정세에서 우리의 주도권과 개입력만 상실하고 말았다. 천안함이 북의 소행이라고 분노하는 이명박 정부가 정작 북을 아프게 하고 북의 사과를 이끌어 낼 만한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대북 제재의 지렛대조차 없다는 지금의 현실이 역으로 이를 증명한다.
남은 임기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그러나 임기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이제라도 이명박 정부는 무모한 의욕과 비현실적인 북한 굴복론에 사로잡히지 말고 남북관계 정상화를 통해 포용정책의 기조로 전환해야 한다.
포용정책의 폐기는 북한의 굴복이나 변화를 얻어내지도 못한 채 그동안 쌓아왔던 남북관계의 성과만을 무위로 돌리는 최악의 선택이다. 북을 변화시킬 아무런 효과적 수단과 지렛대를 갖지 못한 채 그저 퍼주지 않고 끌려가지 않겠다는 고집만을 내세워 남북관계의 문만 닫는 결과일 뿐이다.
퍼주기의 반대는 잘 주기여야 하고 끌려 다니기의 반대 역시 잘 이끌기여야 한다. 퍼주기를 안하려면 실제로 '주면서' 퍼주지 않아야 하고, 끌려가지 않고 버릇을 고치려면 이 역시 '만나서' 대화하면서 고쳐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 중단을 통해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무대책의 감성적 강경론에서 벗어나 남북관계의 지속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고 잘못된 버릇을 고쳐야 한다. 무조건 문을 닫고 남북관계를 중단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가 희망하는 북한변화를 저절로 보장하지 못한다. 북을 굴복시키고 말겠다는 말만 앞세운 과도한 의욕과 이를 확신하며 정당화시키는 북한붕괴론의 주관적 기대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6.2 지방선거에서 보인 민심은 극단적인 남북갈등을 중단하고 남북관계 정상화를 통한 북한 관리와 변화 유도임이 명백하다. 민심을 따라 이제라도 이명박 정부는 대북 강경의 대결정책을 포기하고 화해협력의 포용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북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욕이 실현될 수 있는 첩경이자 해법이다.
* 원제 : 어긋난 대북정책: 의욕의 과잉과 성과의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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