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이미 4차 본협상 단계에 이르렀음에도 정부는 이 협상에서 미국 측이 요구하는 것들이 국내 법과 상충하는지 여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협상이 타결되기 전에는 이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채로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3일 정부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의 장영달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협정문 초안 중 현재 국내 법률과 상충되는 사항과 관련한 조사연구 자료를 제시하라'는 장 의원의 요구에 "한미 FTA에서의 미국 측 요구사항과 국내 법령 사항 간 상충 여부는 협상이 타결돼 최종 합의문이 확정돼야 정확한 파악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미국은 협상타결 180일 전까지 파악하게 돼 있다
이와 달리 미국 정부는 FTA 협정문에 삽입된 조항이 미국 국내 법과 상충하는지 여부를 협상이 타결되기 180일 전까지 파악해 의회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미국 행정부에게 주어진 무역촉진권한(TPA)이 만료되는 시한이 내년 6월 말인데도 한미 양국 정부가 FTA 협상의 시한을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잡고 있는 것도 이런 미국 측의 사정을 고려한 결과다.
정부는 '협정문 초안 중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와 상충되는 사항'을 묻는 장영달 의원의 질문에는 "우리 측 협정문 초안의 내용은 국내 법률 및 지방자치단체 조례와 상충되지 않도록 작성됐다"면서 "우리 법체계 하에서는 지자체들이 '법률' 또는 헌법상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가지는 'FTA 등 국제조약'에 상치되지 않는 내용으로 조례를 제정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무효가 된다"고 답했다.
정부가 한미 FTA 협상문이 국내 법과 상충하는지 여부를 협상 타결 전에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 이상, 국내 법의 구속을 받는 지자체의 조례가 FTA 협상문과 상충하는지의 여부에 대한 파악도 협상 타결 전에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정부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법체계가 미국의 법체계와 다르다는 점이 깔려 있다.
우리나라 법체계에서는 FTA와 같은 국제조약이 헌법에 의해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인정받지만, 미국 법체계에서는 FTA가 헌법이나 의회에서 제정된 법률보다 하위에 있는 행정법으로서의 효력만 갖는다. 미국 측 협상단이 '한미 FTA의 효력은 연방정부에만 미칠 수 있을 뿐 주정부에까지는 미치기는 힘들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협상결렬 시 파급효과에 대한 연구?…그런 건 없다
한편 정부는 '협상의 결렬 또는 중단을 가정해 그로 인한 정치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내용을 연구한 보고서 또는 문서를 제시하라'는 장영달 의원의 요구에 "현재 협상의 결렬 또는 중단을 가정해 별도로 작성한 보고서 또는 문서는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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