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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미 FTA가 '최악'이 안 되도록 하려면…

[화제의 책] 송기호의 <한미 FTA의 마지노선>

지난해 1월 1일 '미-호주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다. 미국과 호주 양국 정부는 2003년 초 협상을 시작해 2004년 중순에 협상을 마쳤는데, 이 기간 동안 호주의 시민사회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미국식 FTA'에 반대하며 '미국과 FTA를 맺어야 한다면 어떤 FTA가 돼야 하는지'를 놓고 격렬한 토론을 펼쳤다.

이런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대응해 야당인 호주노동당(ALP)은 2004년 2월 "미-호주 FTA의 최종 협정문이 호주노동당이 시민사회단체들과의 협의 하에 마련한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기준들(National Interest Criteria)'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 협정을 비준해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기준에는 가령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배제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미-호주 FTA 협정문이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기준들'을 다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 상원 청문회에서 밝혀지자, 호주노동당은 이 기준을 완화·수정해 미-호주 FTA를 비준해 주는 쪽으로 '정치적' 타협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결코 적지 않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호주 국민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무엇이 성공적인 FTA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이런 논쟁을 정치권에서 흡수해 '성공적인 FTA'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시했다는 것이다. 호주정부는 이 가이드라인을 협상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참고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이것을 지렛대로 삼아 투자자-국가 소송제 등 일부 독소조항을 협정문에서 빼는 데 성공했다.

우리에게는 한미 FTA의 '성공 기준'이 있기나 한가?
▲ <한미 FTA의 마지노선>(송기호 지음, 개마고원 펴냄, 2006). ⓒ프레시안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미 양국 정부의 일정대로라면 이미 후반부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는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의 협상목표는 누가, 어떤 권한으로, 어떤 기준에 입각해, 어떤 방식으로 세웠는지 묘연하기만 하다. '쌀시장만은 지킨다'와 같은 몇 가지 협상목표들이 정부 협상단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지만, 이는 국민들에게 한미 FTA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차원의 수사에 불과할 뿐 정부는 단 한 번도 일련의 체계적인 협상목표와 협상전략을 공개한 바 없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최근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제시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정부가 세운 한미 FTA 협상목표는 외교통상부를 포함해 관계부처 간 협의를 통해 결정됐다"면서 "관계부처 간 협의는 대외경제장관회의, 주간 점검회의, 실무연락 등 다양한 경로로 진행됐으며, 그 내용은 협상전략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따라서 국민 개개인은 고사하고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조차 한미 FTA의 협상목표 수립, 협상 도중 목표의 수정, 협상 완료 후 평가 등의 과정에 참여할 수 없게 돼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 대한 1차적인 책임은 아직까지 '통상절차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한 국회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FTA의 협상목표는 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정부의 왜곡된 인식에도 적잖은 책임이 있다.

현재 정부는 어떤 한미 FTA가 성공적인 FTA인지에 대한 토론의 장을 제공하기는커녕 국민들에게 한미 FTA를 원하는지 여부조차 묻지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경제통상관료들이 협정체결 자체를 협상의 성공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가 우리의 입장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아니면 실패로 치닫고 있는지를 판단해볼 수 있도록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해 주는 책이 나와 주목된다. 바로 <한미 FTA 의 마지노선>(송기호 지음, 개마고원 펴냄, 2006)이다. 국제통상법과 세계무역기구(WTO)에 정통한 송기호 변호사는 이 책에서 변호사들이 국제계약을 체결할 때 꼭 염두에 둔다는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는 격언을 인용하며 "한미 FTA 협상을 진행해야 하느냐, 중단해야 하느냐는 종래의 총론 중심적 관점을 넘어서서, 그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각론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자"고 말한다.



쌀, 개성공단?…정부의 '빗나간' 협상목표들

송기호 변호사는 <한미 FTA의 마지노선>에서 우리 정부가 △쌀시장의 개방 불가 △배기량을 기준으로 한 자동차 세제의 유지 △건강보험 약값 적정화 방안의 실시 △개성공단산 상품의 한국산 인정 등을 '한미 FTA 협상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가장 먼저 비판의 화살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쌀시장만은 지킨다'는 논리다. 이미 여러 차례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 '쌀을 지킨다는 것은 한미 FTA 협상의 전략도 목표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국제통상법의 논리로 설명한 바 있는 송 변호사는 이 책에서 어차피 2015년이면 개방될 한국 쌀시장을 미국이 지금 당장 한미 FTA를 통해 개방시킬 유인이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미국이 FTA 차원에서 쌀에 대한 추가 개방을 요구할 카드는 매우 초라하고도 군색하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비합리적이다. 더욱이 이런 법적 논리 이전에, 미국으로서는 한국 쌀시장을 지금 개방시켜 미국이 향후 10년간 확보한 340만 석의 쿼터에 손실을 입을 까닭이 없다. (…) 이 특정국 쿼터는 미국이 포기할 수 없는 전리품이다. 미국은 이미 행복하다."

또 송 변호사는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상품을 꼭 한국산으로 인정받는다'는 것도 우리 측 협상전략이나 협상목표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현재 시범단계에 있는 개성공단 사업은 적어도 1단계까지는 한국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굳이 한미 FTA에서 개성공단산 상품의 대미수출을 늘리기 위한 장치를 도입하는 데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산 상품의 대미수출 확대는 한미 FTA보다는 '북미관계의 개선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이 송 변호사의 시각이다.

"그러므로 지금 단계에서는 1단계 사업목표인 100만 평이라도 어떻게든 성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이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은 한국의 독자적 내수시장이지 한미 FTA라고 보지 않는다. (…) 매우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누가 언제 어떠한 사실판단에 기초하여, 한미 FTA에서 개성공단 조항을 한국의 대표적 요구사항으로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 언제부터인지, 개성공단 조항이 들어가면 한미 FTA는 성공한 것이라는 듯한 감정적 호소가 출몰하고 있다.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만일 미국이 개성공단 조항을 한미 FTA에서 수용한다면, 반드시 그에 대한 단단한 안전장치를 심어 놓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래 놓고 별도의 대가는 꼬박 챙겨갈 것이다."

BIT의 투자자-국가 소송제와 FTA의 투자자-소송제가 다른 이유

송기호 변호사는 <한미 FTA의 마지노선>에서 4가지의 한미 FTA 성공조건을 제시한다. 송 변호사는 단지 '한미 FTA에서 이런 조건만은 꼭 충족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이런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지', '이런 조건이 관철될 수 있는 논리적, 법적 근거는 무엇인지, '미국이 우리가 제시한 조건을 거부할 경우 차선책으로 어떤 협상카드를 제시해야 하는지' 등을 한국과 미국은 물론 세계의 통상환경이라는 큰 틀에서 세세히 설명해준다.

송 변호사가 지적하는 첫 번째 성공조건은 한미 FTA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빼는 것이다. 투자자는 정부의 조치 외에 국회나 사법부의 행위를 이유로 해서도 국가를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고, 국제중재에 회부당하는 법적 주체도 정부가 아니라 국가다. 투자자는 세 명의 민간인들로 구성된 중재인단의 중재절차에 국가를 회부하는 것이고, 국가는 일단 투자자가 원하기만 하면 무조건 중재인단 앞으로 끌려 나가야 한다.

송 변호사에 따르면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위협은 익히 알려진 대로 "미국인 투자자와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한국은 투자자에 의해 국제중재에 회부당할 위험에 놓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제도의 더 무서운 점은 "미국으로부터 FTA 위반으로 인한 특혜관세 중단이란 보복조치를 당하게 될 위험에 함께 놓인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종래 양자 간 투자협정(BIT)에서 빈번히 도입된 국제표준 제도'라는 정부의 주장은 옳지 않다. 투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협정인 BIT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국가가 투자자의 제소 대상이 되는 수준에서 그치지만 (물론 이 점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무역과 투자를 포괄하는 협정인 FTA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투자자가 하나의 돌을 던져 '국가 공공정책의 무력화'와 '특혜관세의 중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게 한다.

투자자-정부 소송제에 대한 정부의 '변명'은 끝이 없다. △한국인 투자자도 미국정부를 중재에 회부할 수 있으니 상호 대칭적인 제도다 △한국이 WTO 통상분쟁에서 높은 승률을 올리고 있으므로 한국이 국제중재에 회부되더라도 안심할 수 있다 △미국인 투자자를 차별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조항을 많이 두면 되는 것 아닌가 등 다양하기도 하다. 송 변호사는 이 각각의 주장이 왜 변명에 지나지 않는지를 세계의 다양한 중재 사례들을 들어 꼼꼼히 설명해준다.

"하지만 도저히 미국의 요구가 너무 거세어 투자자-국가 제소 조항을 뺄 수 없다면, 한국정부가 개별 사건에 대해 국제중재 회부에 동의할 것인지를 선택할 권리는 최소한 가져야 한다. (…) 이 경우에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한국법이 국제중재 절차에서 준거법으로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 만일 이마저 지킬 수 없다면, 정말 최후의 방어선으로 중재회부의 요건 자체를 엄격히 제안해야 한다. 투자자가 차별당한 정책에 대해서만 국가를 국제 중재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한정해야 한다. 미국인 투자자가 수용을 당했다는 이유만으로는 국가를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없게 해야 한다."

食과 藥을 매개로 '한미 FTA 체결'과 '국민건강' 흥정하면 안 돼

송기호 변호사가 <한미 FTA의 마지노선>에서 꼽은 두 번째 성공적 협상 조건은 한미 FTA가 '식(食)과 약(藥)'을 매개로 우리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미 FTA가 한국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한다'는 주장이 거짓이나 과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우리 국민들에게는 그런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미 미국은 한미 FTA 협상의 개시에 합의해주는 대가로 '한국에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는 유일한 광우병 발생국'이라는 영광스러운 지위를 획득하지 않았던가.

송 변호사는 먼저 미국 제약산업이 한미 FTA를 통해 특허권의 연장, 건강보험 약값 결정에서의 발언권 강화 등 기존의 요구를 관철하고, 이로 인해 한국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당하는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한국은 공공의 건강권과 미국 제약산업의 이익 사이에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 미국 제약산업의 특허독점권을 과도하게 연장해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 또한 미국 제약회사들이 국민건강보험의 약값 책정에 과도하게 개입할 제도적 통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또 송 변호사는 앞으로 재개될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라운드 협상의 농업 분야에서 한국이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한미 FTA에서는 농업시장의 개방 수위를 최대한 낮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한국이 농업 최강국인 미국에게는 FTA를 통해 농업시장을 큰 폭으로 개방하면서, WTO 도하 협상장에서는 한국은 여전히 농업 분야 개발도상국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 한국 농업의 뼈대가 되는 품목을 FTA에서 제외하는 길밖에는 없다. 그리고 이것은 국제적 흐름이다. 미국은 캐나다와의 FTA에서 우유와 크림, 치즈, 버터 등 80여 개의 낙농제품을 관세 철폐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 또 하나의 대안은 FTA에 포함된 품목에 대하여, 장기간의 적응기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은 호주와의 FTA에서 쇠고기에 대해 부과하는 관세에 대해서는 17년간이라는 철폐 이행기간을 두었다. (…) 이처럼 많은 예외와 배려가 포함된 한미 FTA가 되어야. 한국은 WTO 도하 협상에서 다른 WTO 협상국들을 설득하여 농업 분야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송 변호사는 아직 우리나라에 믿을 만한 위생검역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 FTA가 미국식 위생검역 기준이 들어오는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매우 낮은 식료자급률 국가인 한국이 세계 푸드 시스템을 통해 침입할 위해요소를 감시하고 차단하는 것은 한국인의 건강에 필수적인 이해관계이다. 따라서 당연히 한국은 자신을 위한 독자적인 위생검역 기준을 설정하고 관리할 과학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이 이 능력을 채 갖추기도 전에, 한미 FTA가 미국식 위생검역 기준을 한국에 특송하는 우체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에게 한국의 독자적인 위생검역 체계에 개입할 제도적 통로를 열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반덤핑 장벽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나 있나?

송기호 변호사는 <한미 FTA의 마지노선>에서 '관세장벽의 철폐로 인한 대미수출 증가'가 한미 FTA로 인해 우리가 얻게 될 이득 가운데 하나라는 관점을 '신화'라고 비판한다. 관세장벽이 철폐된다 할지라도 미국이 악명 높은 반덤핑 장벽을 낮추지 않는 한 대미수출이 늘어날 길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미국이 한국산 상품에 대해서는 반덤핑을 아예 발동시키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가는 것이 한미 FTA의 세 번째 성공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1980년부터 2005년까지 총 1148건이나 되는 반덤핑 조사를 실시했다. 이중 한국산 상품에 대한 조사가 총 조사건수의 6%(68건)였는데, 이는 1992년부터 2005년 사이에 한국산 상품의 미국 시장점유율이 평균 2.97%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반덤핑 장벽은 3가지 '악명 높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덤핑마진을 계산할 때 수출가격이 정상가격보다 높게 거래된 경우 마이너스(-)로 기록돼야 할 덤핑 마진도 제로(0)로 처리하는 '제로잉(zeroing)' 방식을 사용해 덤핑이 아닌 상품에도 덤핑 판정을 내린다. 게다가 이미 발동된 반덤핑관세의 종료 여부를 결정하는 '종료 재심'의 행정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어 사실상 반덤핑관세 부과 기간을 연장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거둬들인 반덤핑관세를 자국 기업들에게 배분하기까지 한다. 이 모든 특징이 미국 반덤핑 제도의 고유한 특징으로 한결같이 WTO 협정을 위반하는 것들이다.

"한국은 'WTO 플러스'라는 FTA의 본질에 알맞게,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반덤핑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한미 FTA에서 관철시켜야 한다. (…) 만일 미국이 도저히 이 요구를 수용 못하겠다면, 적어도 한미 FTA에는 미국의 WTO 반덤핑협정에 위반되는 제로잉, 자의적 종료 재심, 관세 보조금 배분 조치 등의 중단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WTO 플러스'라는 FTA의 본질에 맞게, 앞에서 본 '더 낮은 반덤핑관세' 규칙이 규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의 반덤핑 장벽을 다룰 상설위원회 설치 조항도 두어야 한다."

한미 FTA, 미국에 한국 몫 취업비자를 당당히 요구할 기회

송기호 변호사가 <한미 FTA의 마지노선>에서 꼽은 마지막 성공 조건은 한미 FTA 협상에서 '노동시장의 장벽'을 조금이나마 낮추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생산의 3요소인 자원, 자본, 노동 중 상품과 금융자본의 이동만 자유롭게 해주고 노동의 발은 묶어버리는 통상협정은 필연적으로 노동자에게 해로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식 FTA가 노동의 이동을 최대한 제한하는 것과는 반대로 유럽연합(EU)은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권을 제한하는 장벽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확대하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2004년 5월 향후 7년 동안 3단계에 거쳐 노동시장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점진적 이행 협정'을 체결했다. EU는 올해를 '노동자 이동성의 해'로 지정하기도 했다.

"첫째, 한국은 전문직 취업 비자만을 놓고 본다면, 앞에서 보았듯이 미국이 호주에게 FTA를 통해 제공한 1만500명의 전문직 취업 비자를 고려할 때, 미국이 한국에게는 그 3배 정도인 3만 명 이상을 제공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 둘째, 전문직 취업 비자 외에도 한국의 풍부한 인적 자원이 진출할 수 있는 그 밖의 일반직 취업 비자를 요구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셋째, 취업비자는 아니지만, 한국의 사업가나 자영업 종사자들이 일시 입국할 자유를 요구해야 한다."

사실 WTO의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은 취업 비자와 같은 고용 정책에 대해서는 협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WTO 차원에서는 한국이 미국에 취업비자의 확대를 요구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한미 FTA는 한국이 미국에게 한국 몫 취업 비자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지적한다.

사실상 성공 기준이 아닌 최악을 면할 기준

송기호 변호사가 <한미 FTA의 마지노선>에서 꼽은 4가지의 마지노선은 사실 '한미 FTA가 성공한 FTA임을 검증해주는 기준'이라기보다는 '한미 FTA가 최악의 통상협정은 아님을 확인해주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동 이동성의 확대' 기준을 제외하고 나머지 3가지 기준들은 한미 FTA를 무리하게 체결하려고만 하지 않으면 최소한 현 상황에서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들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통상협정의 협상목표는 '우리는 협상에서 A를 성취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진술로 시작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측이 생각할 수 있는 한미 FTA 협상목표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는 현재 가지고 있는 B만은 결코 내줄 수 없다'는 부정적인 진술로 시작되고 있다. 이는 한미 FTA 협상에 있어 한미 양국 간 힘의 비대칭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그래서 <한미 FTA의 마지노선>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한미 FTA가 미국식 FTA 모형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극복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나오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한미 FTA 협상이 미국정부와 한국정부가 실체가 모호한 '국익'을 놓고 대결하는 장이 아니라 한미 양국의 서민들이 어떻게 하면 이 협정을 통해 (혹은 협상의 중단을 통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될지를 고민하는 장이 되도록 이끌어주는 가이드라인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희망사항은 홀로 이 방대한 작업을 해낸 송 변호사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당연한 책무를 방기하고 있는 국회와 정치권을 향한 것이다.

송 변호사는 책 말미에서 "반덤핑 장벽 철폐와 취업 비자라는 한국의 본질적 이익이 확보된다면 한미 FTA를 타결하는 것이 좋다"면서 "그러나 지금 한국은 불행히도 협상의 타결 자체를 한국의 성공과 동일시하는 막다른 골목으로 초대받고 있다"고 말한다. 한미 FTA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첫걸음은 '협정 체결=협상 성공'이라는 우리 정부의 해괴한 시각을 타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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