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과거에 다자간 통상협정인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관한 협상에 안일하게 대처한 결과로 양자간 통상협정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협상에서 은행 임원에 대한 규제와 관련해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됐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나왔다.
은행 이사의 국적 제한의 한미 간 비대칭성
국회 한미FTA특위 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열린우리당)은 17일 "미국 측은 (한미 FTA 협상에서) 외국계 은행의 임원에 대한 국적 제한을 금지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데 우리 측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는 (재경부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때 안일하게 대처해 (은행 임원의 국적 제한과 관련된 조항을) 유보안에 포함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이 은행 임원의 국적 제한 문제와 관련해 부당한 압력을 가해 와도 우리 정부는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는 처지이며, 이로 인해 협상 결과도 미국 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질 것이라고 송영길 의원은 주장했다.
송 의원에 따르면, 1995년에 발효된 UR 협정과 뒤이은 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서 미국정부는 은행 이사에 대한 국적 및 거주자 요건을 규정한 자국법을 유보안에 포함시킨 반면 우리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미국 은행법은 은행 이사는 임기 중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사로 선임되기 1년 전부터 국내(은행 소재지로부터 100마일 이내)에 거주해야 한다는 규정을 유지하고 있으나,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송 의원은 "한국정부는 외국계 은행의 국내은행 인수합병(M&A)을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고 꼬집었다. 즉 우리 정부가 WTO의 협상에 임할 때에 외국인투자자가 국내은행을 인수해서 그 은행의 이사에 외국인을 앉히게 될 가능성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송 의원은 "현재 한미 FTA 금융서비스 분과의 우리 측 유보안에는 상업적으로 주재하는 금융회사의 최고책임자는 국내에 거주해야 한다는 규정이 들어가 있다"면서 "그러나 미국은 WTO 협정을 근거로 (이 규정을 철회하라고) 우리 측을 압박하는 한편, 미국 국내법은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송 의원은 이어 한미 FTA 통합협정문 중 투자분과 해당 부분에 '협정 체결국은 상대국 투자자의 투자대상이 되는 국내기업의 이사회 구성원 전원 또는 다수가 특정 국적을 소지해야 한다거나 자국 영토 안에 거주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삽입돼 있다고 밝히고 "WTO 협정과 한미 FTA 금융 유보안에 비춰볼 때 이 조항 역시 미국에만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 의원은 "이 제도를 굳이 우리나라에 적용되도록 할 경우에는 우리나라가 (미국을 제외한) 다른 WTO 국가의 제소 대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가 WTO 협정에서 금융기관 임원의 국적과 거주지를 제한하는 국내법을 유보시키지 못한 만큼 우리나라가 그런 제도를 시행하면 WTO 협정의 핵심원칙인 '최혜국 대우'를 위반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