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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 화합?'···팔레스타인의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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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 화합?'···팔레스타인의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진단] 팔레스타인 독립 목표 아래 '따로 또 같이' 행보

최근 팔레스타인 라말라 소재 '근동 컨설팅(Near East Consulting)'이 발표한 팔레스타인 정당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옛 여당이자 현재 제1야당인 파타에 대한 지지도가 지난 6월 38%에서 8월에는 29%로 떨어진 반면, 집권당 하마스에 대한 지지도는 두 번 모두 30%로 변함이 없었다.

이 조사 결과는 올해 6월 이후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기간 동안 현재 정부를 구성한 이슬람주의자 단체인 하마스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지지도는 안정적인 반면, 세속주의 단체이며 1994년 자치정부 수립 이후 2005년까지 정부를 구성했던 파타에 대한 지지도는 급속히 추락한 것을 보여준다.

강력한 정치세력 하마스로 거듭난 무슬림 형제단

현재 팔레스타인의 주요한 정치 단체들은 크게 두 부류로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소속의 13개 단체와 하마스로 분류된다. 팔레스타인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세운 PLO 내부에서는 자유주의자가 주류인 파타가 최대 정파이며, 그 밖에 팔레스타인 민중해방전선(PFLP)을 비롯한 사회주의자 그룹들, 이슬람주의자인 이슬람 지하드 등으로 구성돼 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 그리고 가자지구를 점령한 이후, 1987년 1차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가 발발할 때까지 팔레스타인 무장 투쟁의 선봉은 PLO 내의 사회주의 무장단체가 주도했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성립 이후 이집트에 본부를 둔 대표적 이슬람주의자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은 주민교육과 사회봉사 등에 주력하면서 1967년까지 가자지구에서 사회 조직들에 대한 거의 독점적인 지배권을 갖고 있었다.

1987년까지 무슬림 형제단은 공식적으로는 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무장 투쟁에는 주도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으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등 점령지 내부에서 사회주의자 무장단체들과 때때로 제휴하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 점령지에서는 다수의 연구소, 신문, 정보 통신, 노동조합, 전문가단체, 학생단체, 청년운동단체, 여성단체 등 사회단체들과 자선기구들이 조직되었다. 이 조직들은 모두 PLO 내의 각 단체들과 연결되었고, 이러한 각종 조직 활동을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은 거의 전면적으로 정치화되었다.

또 1970년대 말 경에 고등교육기관들이 대거 창설되면서 팔레스타인 정치사회 발전의 중심이 되었다. 이 기관들은 이전에 고등교육제도에 접근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사회적 유동성의 기회를 제공했다.

하마스가 창설되기 전까지 무슬림 형제단의 주요 활동 영역은 정치 영역을 제외한 모스크와 대학이었다. 특히, 이슬람 대학 학생들의 대다수는 난민촌들, 농촌 마을들 또는 하층민 출신이었다. 모스크 등을 중심으로 종교 교육, 사회봉사 등에 전념하던 무슬림 형제단은 팔레스타인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걸고 하마스를 창설하면서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탈바꿈하였다.

하마스가 단기간 내에 PLO와 쌍벽을 이루는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활발한 교육사업과 사회봉사활동이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에 저항하는 제1차 팔레스타인 민중봉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1988년 창설됐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점령 정책이 사회세력을 정치 세력으로 바꾸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말해준다.

그 이후 팔레스타인의 저항운동은 크게 PLO와 하마스 두 축으로 진행됐다. 1988년 PLO는 동예루살렘, 서안지구, 그리고 가자지구에서 독립국가 수립을 선언했다.

결국 이 선언을 통해 PLO는 이스라엘 영역을 포함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전역에 팔레스타인 민족국가를 수립하겠다는 목표를 포기하고, 이스라엘 국가를 합법적으로 인정했다.

하마스는 1988년 창설 당시 PLO 선언에 반대하면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표방하기는 했지만, 2003년 하마스의 창설자 아흐마드 야신은 독트린을 통해 동예루살렘, 서안 및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표방했고, 2006년 총선 이후 야신의 후계자이며 하마스 최고 지도자인 칼리드 마샬 역시 이 세 지역에 국가 건설 목표를 밝혔다.

이는 현재 PLO와 하마스가 점령지 전역에서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와 국가 건설 영역에 동의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PLO와 하마스 지지자들 '이념적 분열선' 확고하지 않아

PLO와 하마스가 내세운 목표가 일치하듯이 현재 PLO 지지자들과 하마스 지지자들 사이에는 확고한 이념적인 분열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 PLO 내부에서도 사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사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이는 2005년 수반 선거나 2006년 의회 선거에서 증명된다. 특히 수반 선거에 출마했던 무스타파 바르구티는 사회주의 단체 활동 경력을 가진 지도자였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자유주의 성향을 지닌 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20% 이상의 득표를 획득했다.

또 의회 선거에서는 파타 소속의 활동가들이 일부 하마스 후보로 출마하기도 하고 하마스 지지자로 돌아섰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정치 사회의 이념적인 유연성을 증명한다.

현재 팔레스타인에는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이슬람주의자들이 공존하고 있다. 세속주의자들이 주류인 서안지구의 비르제이트 대학, 알 나자 대학 등이 있는가 하면, 이슬람주의자들이 주류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대학, 기독교인들이 주류인 베들레헴 대학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각 대학에는 정치 이념이 다르고 종교가 다른 학생들 역시 다수 재학하고 있다. 이번 근동 컨설팅 여론 조사에 따르면, 8월 현재 기독교인들은 자유주의자가 주류인 파타에게 29%, 사회주의자 단체인 PFLP에게 17%, 하마스에게 7%의 지지를 보냈다.

이번 하마스 정부 내각의 장관들 가운데 관광장관은 기독교인이며, 하마스는 파타와 연립 정부 구성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러한 상황은 팔레스타인 주민들 사이에서 일정한 정치 이념이나 종교가 확고하고도 불변하는 경계로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가 어떻게 공존을 모색하고 있는지는 팔레스타인국제문제 연구소장 마흐디 압둘 하디의 언급 속에 잘 나타난다(그의 기고문이 곧 <프레시안>에 게재될 예정이다).

압둘 하디 자신은 세속적인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이지만,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팔레스타인 사회 문화의 일부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슬람의 단식월인 라마단에 금식하며, 기독교의 성탄절에는 기독교인 가정처럼 집안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팔레스타인인의 대변자로 각종 세미나, 학술대회 등을 조직하고 책을 출판하면서 활발한 국내외 활동을 한다. 그가 운영하는 팔레스타인 국제문제연구소(PASSIA)는 팔레스타인의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이슬람주의자, 기독교인들이 공동으로 참가하는 각종 학술대회와 세미나 등을 통해 의사소통의 기회를 마련한다.

또 외국인 학자들, 정치가들, 외교관들, 세계 각국의 NGO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인들조차도 이곳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 각종 학술대회와 모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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