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국민은행이 본계약 체결을 위해 27일부터 4주 간의 일정으로 정밀실사에 돌입했다.
국민은행은 정밀실사 후 추가적인 가격협상을 거쳐 4월 말이나 5월 중에 최종 계약이 이뤄지고 45일 이내에 대금지급을 완료하면 '돌발변수'가 없는 한 6월 말까지는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게 돼 모든 절차가 완료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돌발변수'가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그 위력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 매각 완료 시점이 7월 이후로 늦춰지거나 중단될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국민은행, 외은 노조 반대에 부닥쳐 정밀실사 개시부터 차질**
우선 정밀실사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27일 외환은행 직원들은 론스타와 국민은행 간 합의에 따른 현장실사를 전면 거부하고 나섰다. 이날 국민은행은 현장실사의 첫 단계로 27~28일 양일 간 해당 직원들의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외환은행 직원들의 실사 거부는 노조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외환은행 노동조합은 이날 1차 인터뷰 및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이후 어떤 형태의 현장실사에도 불응하겠다는 등 투쟁지침을 밝혔다.
외환은행 노동조합은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합병 시도는 심각한 독과점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며 "공정위의 승인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서둘러 경쟁은행에 기밀정보를 유출하도록 하는 것은 대주주의 횡포"라고 주장했다.
노동조합은 "공정위 판단이 있기 전까지 국민은행은 어떠한 실사도 해서는 안 되며, 경영진은 물론 직원들도 어떠한 형태로든 실사나 합병 시도에 협조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노조는 이어 "국민은행이 공정위 판단 이전에 외환은행 합병을 기정사실화하려 할 경우 노동조합은 독자적으로 공정위에 국민은행의 시장독점 시도를 고발하고 시정조치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 "법적 최장 심사기간 4개월도 모자랄 판"**
외은 노조가 실사를 저지하는 최대 명분으로 내세운 '공정위의 승인' 과정도 상당히 까다로울 전망이다.
지철호 공정위 기업결합팀장은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정도의 사안은 법적으로 정해진 심사기간인 최장 120일 안에 끝낼 수 있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이같은 심사를 법원에서 하기 때문에 심사기간 규정 자체가 없다"면서 "법적으로 주어진 기한을 최대한 활용해 신중하게 심사할 것이며, 공정위의 심사 과정에 서둘러 끝내 달라는 외부의 압력이 있더라도 결코 흔들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되느냐 여부의 판단 기준이 해당 업종에서 점유율 50%가 넘느냐를 따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지배적 사업자 여부는 외환업무 등 개별 시장별로 심사해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은행들의 자료까지 검토해야 하는 등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는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외은 노조는 지난해 12월 말 현재 외환은행의 외환업무 점유율은 46.4%, 국민은행은 10.5%를 각각 기록하고 있어 두 은행이 합병할 경우 56.9%가 된다는 점에서 이 시장에 대해 공정위가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판단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철호 팀장은 "외환업무 시장점유율을 50% 이하로 대폭 낮추도록 하면서 기업결합을 허용할 것인지, 이같은 조치가 금융산업 전체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는 등 부작용이 커서 승인을 해줄 수 없는 것인지 등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이 바로 공정위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국세청, '고정사업장 간주' 방식의 과세 가능성 적극 검토**
국세청의 과세 가능성도 매각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로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외환은행 매각으로 4조5000억 원에 달하는 매각차익을 거두게 되는 론스타에 대한 과세는 법적 근거 미비로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국세청이 현재 가능한 법 규정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해석해 과세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공식적으로는 이 사안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모든 보도에 대해 '출처 불명의 관계자'를 인용한,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은 어디까지나 세무조사나 과세와 관련된 사항을 법적으로 누설할 수 없는 규정에 따른 것일 뿐 최소한 '적극적인 과세 의지'는 복수의 관계자들로부터 확인된 사항이다.
특히 국세청은 지난 1월 외환은행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이후 엘리트 쇼트 론스타 펀드 부회장이 2002년 10월 당시 외환은행장에게 보낸 서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서한은 쇼트 부회장이 "서울에 있는 스티븐 리(론스타 한국법인 대표)가 외환은행 투자와 관련한 협상을 대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론스타의 국내 법인이 단순한 연락사무소 역할을 넘어 본사의 대리인 역할을 한 것이 인정되면 국내 고정사업장으로 간주돼 과세가 가능해진다.
국제조세 협약상 고정사업장의 사업소득에 대한 과세권은 사업장 소재국에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 법인세법(94조3조항)에 의거, 외환은행 매각차익 4조5000억 원에 법인세율 25%를 적용할 경우 1조1000억 원 가량의 세금을 물릴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02년 국제거래에서 조세회피를 막기 위한 특별팀을 구성해 2003년 론스타에 대해 140억 엔의 세금을 징수했다. 당시 론스타 측은 "론스타재팬은 실제 영업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일본 정부는 론스타재팬을 실제 투자업무에 참여한 고정사업장으로 간주해 과세한 것이다.
***민노당 "금감위는 론스타 대변인, 재경부는 론스타 자산관리인"**
정치권에서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에 대해 제동을 걸기 위해 금융감독당국을 압박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24일 논평을 내고 "외환은행의 최종인수자가 결정되고 대주주 자격승인 신청이 접수되면 금감위는 관련법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을 거친 후 승인하도록 되어 있다"면서 "그런데 금감위는 우선협상대상자가 발표되기도 전에 담당 국장이 국민은행을 지지하고 나서 사전정지 작업을 하면서 론스타의 '먹튀'를 돕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노당은 "불법매각에 관하여 검찰과 감사원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론스타의 금융기관 대주주 적격성 유지에 문제가 있었던 상황에서 매각작업을 중단시킬 수 있었음에도 국민의 뜻에 반하여 4조5000억 원에 달하는 국부유출을 방조 내지 조력하는 것은 금감위의 국가에 대한 배임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또한 민노당은 "론스타펀드는 벨기에를 소재지로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것은 벨기에가 주식의 매각차익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는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하기 위한 유령회사(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다"고 정부가 과세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일 것을 촉구했다.
민노당은 "론스타는 서울에 주사업장을 두고 국내에서 인수한 여러 회사들을 사실상 지배, 관리해 왔으므로 당연히 국내법에 따라 과세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재경부는 과세징수 당사자(국세청)도 아니면서 매각이 완료되기도 전에 과세하기 힘들 것 같다는 발언을 하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재경부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민노당은 이같은 이유로 금감위를 '론스타의 대변인', 재경부를 '론스타의 자산관리인'으로 규정한 뒤 공정위의 역할에 기대를 표명했다.
***국민은행 "매각작업 언제 끝날지 예측 못해"**
민노당은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에 따른 실질적인 경쟁제한 여부에 대한 판단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유권한"이라면서 "공정위는 사안이 중차대한 만큼 단순히 시장점유율만을 잣대로 판단해서는 아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노당은 "미국은 특정 은행이 10% 이상의 점유율만 가져도 독점규제 대상이 된다"면서 "인수 후 합병이 이루어질 경우 자산 300조 원대의 초대형 은행이 금융시장의 자유경쟁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한 이치이고, 그 초대형 은행이 부실화될 경우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은행은 정밀실사 작업 초입부터 각 방면의 견제가 예상 외로 간단치 않다는 점에 상당히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는 "매각작업이 완료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면서 "몇 개월 정도 매각이 지역된다면 모르지만 여러가지 상황이 변한다면 매각 성사 여부도 단정할 수 없는 단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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