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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아이와 황우석, 누구를 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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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아이와 황우석, 누구를 구해야 할까?"

[기고] 오늘날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2005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 때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여성 한 명이 진술인으로 나왔다. 신생아 때부터 아토피를 앓아 온 6살짜리 아들을 둔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단병호 의원실이 '아토피·천식 등의 환경성 질환'을 국정감사의 집중 과제로 설정하면서 선정한 진술인이었다. 소수당의 한계로 단 1명밖에 선정할 수 없는 국감 진술인을 환경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한 어머니를 택한 것은 그만큼 아토피 문제의 심각성을 생생하게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아토피로 온 몸에 피가 나고 진물이 흐르도록 몸을 긁어대는 아이를 돌보느라 몇 년째 제대로 잠 한번 자본 적이 없다는 이 어머니의 호소는 절절했다. 민주노동당에 탄원서를 보낸 다른 '아토피 아이의 어머니'는 '목욕하고 난 후 진물과 피범벅인 채 몸을 긁어대는 아이의 손을 제 손과 발로도 힘이 달려 온몸으로 막으면서' "차라리 죽게 해달라고 절규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떤 치료방법도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토피 아이와 그 부모들에 대한 어떤 배려도 없는 한국사회에 질려서 결국은 '공기 좋은' 나라로 이민 가기로 결심했다는 진술인 앞에서 '어떻게 태어난 나라를 버리느냐'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차라리 죽게 해달라" 절규하는 아토피 아이의 어머니**

그렇다면 대체 아토피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 민주노동당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4세 이하의 아이들이 5명 중 1명 꼴로 아토피 피부염(2004년 현재)을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공단의 통계자료가 엄밀성이 부족하고 과장된 것이라는 비판을 고려한다 해도, 최근 들어 아토피 아이들이 대단히 증가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다른 조사통계를 보더라도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많이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0년 전인 1995년 조사에 의하면 초등학생들 가운데 알레르기 피부염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비중이 15.3%였다. 반면 민주노동당이 작년에 인하대병원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조사대상 중 35.2%가 알레르기 피부염을 앓고 있었다. 10년 사이에 두 배 이상으로 높아진 비율이다.

아토피는 그 원인도 치료방법도 밝혀져 있지 않은 난치병이다. 아토피 아이를 둔 어머니들이 하나같이 증언하는 것처럼 아토피 치료를 잘 한다는 병원들을 찾아다니는 '병원순례'를 아무리 해도 도대체 왜 아토피를 앓게 된 것이고, 어떻게 그 아토피를 고칠 수 있는지 속시원히 말해주는 곳이 거의 없다. 그래서 스스로 아토피 공부에 나서는 아토피 어머니들이 많다. '환경정의' 산하의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다지사)'도 그러한 아토피 어머니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환경오염, 즉 대기 및 실내공기의 오염, 서구화된 식생활과 식품오염, 각종 화학물질 등이 아토피 소인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아토피를 유발하고 심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아토피와 관련하여 면역학의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독학으로, 또 몇몇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공부하고 있다.

***단 2억 원이 없어서 못하는 '식품첨가물 데이터베이스 구축'**

최근 '다지사'는 아토피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조미료나 식품첨가물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패스트푸드를 비롯해 많은 식품에 화학조미료가 사용되고 수많은 식품첨가물이 식품 가공과정에서 사용되는데, 다지사는 이것들이 아이들에게 아토피를 유발하거나 심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아토피 아이의 어머니'들의 일상적인 경험은 이런 연관성을 분명히 보여주며, 대다수의 전문가들도 식품첨가물과 아토피의 연관성을 수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산업진흥원의 조모 박사는 오래 전부터 식품첨가물에 대해 연구를 해 오고 있다. 조 박사는 오래 전부터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일이 있었지만 예산 문제로 시행에 들어가지 못한 일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한국에서 생산, 유통, 판매되는 식품들에 들어 있는 식품첨가물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일이다.

이는 식품첨가물에 의한 여러 가지 안전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아토피 아이의 어머니'들에게도 관심사가 될 만한 일이다. 또한 아토피에 대해 연구하거나 치료하는 의사들도 이것은 중요한 일이다. 어떤 식품에 어떤 식품첨가물이 들어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피해야 할 음식에 대해 처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국회 예결산위원회에서 민주노동당은 '식품첨가물 데이터베이스 구축사업'과 '학교 어린이 아토피 및 실내 공기질 조사사업'에 신규예산을 반영하자고 했다. 이는 아토피 대책과 관련한 요구였다. 식품첨가물 데이터베이스의 총 사업비는 6억 원이며, 1차년도인 2006년 예산으로 2억 원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회에서 결국 통과된 2006년도 예산 144조8000억 원에는 이 2억 원의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다. 2004년 정부의 연구개발 총투자비 7조800억에 비해 단 0.0028%에 불과한 금액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반영되지 않았다. 다만 학교 어린이 아토피 및 실내 공기질 사업비로 요구한 200억여 원은 대폭 축소된 3억 원으로 배정된 것이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산자-과기-국방-정통부가 연구개발비의 60% 가져가**

한국의 전체 연구개발비(민간과 공공 분야 모두 포함)는 17조 원으로 세계 7위에 해당하며,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은 2.53%로 세계 10위에 해당한다. 이는 미국의 2.72%와 일본 3.07%에 비해서는 낮지만 프랑스의 2.18%와 영국의 1.89%에 비해서는 높은 비중이다(2002년도 현재). 이 규모는 더욱 증가해서, 2005년도에는 22조1000여억 원으로 GDP 대비 2.85%까지 증가했다. 그리고 정부가 부담하는 연구개발 총투자비는 2004년도에 7조800억 원이며, 이는 정부 일반회계 예산 120조의 5.9%에 해당할 정도로 막대한 예산 투자다.

그런데 7조 원 이상이나 되는 2006년도 국가 연구개발비에서 단 2억 원의 식품첨가물 데이터베이스 구축사업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이것은 한국의 국가 연구개발 투자가 국민들의 삶의 질, 안전, 환경 등과 같은 공익적인 사회적 수요를 반영하는 데 대단히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3년의 OECD 국가별로 비교할 수 있는 통계(OECD 경제사회목적별 연구개발투자 현황)에 따르면,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28.3%가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산업개발 진흥 목적으로 투자되어 다른 OECD 국가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와 있다. 반면에 국민들의 삶의 질·건강`·안전·환경 등과 관련된 보건, 환경보전, 지구 및 대기, 사회개발 서비스, 에너지 5개 분야는 다 합쳐야 비로소 27.6%가 될 뿐이다.

이런 기업 및 산업 편향성은 정부 부처별 연구개발 투자 현황을 살펴보면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산업, 국방, 응용 지향성이 높은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국방부, 정통부 4개 부처가 투자하는 연구개발 예산은 총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59.9%에 해당하는 4조6000억여 원이다.

이에 반해 국민들의 삶의 질, 건강, 환경, 안전 분야 등의 공익적 분야에 대한 투자 성격이 강한 보건복지부, 환경부, 기상청, 소방방재청, 식품의약품안전청의 6개 부·청의 연구개발 예산은 정부 연구개발 예산 중 단 4.94%에 불과한 3800여억 원일 따름이다. 이쯤 되면 왜 식품 첨가물 데이터베이스 구축사업의 예산이 반영되지 못한 것인지 구조적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토피 관련 예산은 없다면서 황 교수 관련 연구에는 543억 배정**

2005년 한 해에 정부가 황우석 교수와 관련해 투자한 예산도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 및 이종간 장기이식 연구와 관련하여 배정된 예산이 총 543억 원이었다. 이 중에서 2005년도에 배정된 직접투자 성격의 연구비만 뽑아도 30억 원에 달한다. 이는 향후 5년 간 매년 30억 원씩 총 150억 원 투자계획에 따른 1차년도 투자액이었다.

그런데 이런 막대한 투자에 대한 명분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희귀난치병 환자나 중증 장애인들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어느 국책 연구기관에서 발표했다는,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향후 10년 간 '33조 원'의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는 주장과 관련된 것이었다. 황우석 교수나 지지자들이 아직도 배아복제 배반포 기술은 독창적인 것이라며 소위 '원천기술'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특허를 둘러싼 미국 혹은 섀튼 박사의 음모론이 활개 치는 것도 모두 이런 '경제적 가치론'과 강력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많은 전문가들은 황우석 교수의 '원천기술'이라는 것이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대단히 과장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1990년대 각광을 받던 유전자 치료 연구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한 쪽으로 밀려났듯이 줄기세포 연구 분야 역시 기대한 성과를 못 내거나, 연구에 진척이 있다 하더라도 임상적용 되기까지는 수많은 고비를 남겨 두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 경제적 가치를 언급하는 것은 너무 성급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과장된 것이기도 하다. 당장이라도 돈이 될 것처럼 부풀리는 한국 정부와 사회의 조급한 성과주의에 사로잡힌 '황우석 인질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난치병 환자 위한다면서 난치병 환자 기초통계도 없어**

그런데 나는 소위 '황우석 인질'들이 모두 하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즉 모두가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기대하는 조급한 성과주의에 매몰된 것은 아니다. 희귀난치병 환자나 중증장애인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경우 정부와 사회가 외면하고 어떤 희망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설사 거짓에 기반을 뒀다 하더라도 그나마 '희망'이라고 믿어 왔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지지와 열망을 버리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장애인들의 이동권 확보를 주장하고 눈물나게 싸워 온 박경석 대표는 소위 '황우석 담론'을 불편해 한다고 들었다. 황우석 교수가 강원래 씨에게 일으켜 세워주겠다고 장담을 하면서, 장애인들에게 조만간 벌떡 일으켜 세울 수 있으며 또 모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장애인들이 소위 정상인으로 되돌아갈 잠재적인 존재들이라면, 장애인들이 한 사회의 일상적인 시스템 안으로 아무런 제약없이 들어가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대체 무슨 필요란 말인가? 박경석 대표의 불편함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정부가 황우석 교수를 통해서 희귀난치성 환자들을 치료할 기술을 연구개발하려고 했다면, 우선 납득되지 않는 한 가지 문제부터 해명해야 한다. 여러 차례 지적된 것처럼, 한국 정부는 5000여 종에 달한다는 희귀질환에 대해 관리하고 지원하기 위한 공식적인 목록을 작성하지 않고 있다. 또한 그에 필요한 규정도 없는 실정이다. 당연히 희귀 난치성 질환자에 대한 지원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기초통계도 부실하고. 치료법을 개발하고자 한다면 대체 희귀 난치성 질환이 무엇인지 또 얼마나 되는지부터 파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기본적인 관심과 지원책이 없는 속에서 이루어진 희귀난치성 환자 치료기술 연구라는 것은 말 그대로 사상누각일 뿐이다. 또한 희귀난치성 질병 자체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 없이 치료를 주장하는 것 또한 진정성을 의심받기 십상이다.

황우석 사태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가 얻어야 할 여러 가지 교훈이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국가 연구개발 투자가 얼마나 사회적 수요를 반영하고 있는지, 그에 따른 투자 우선순위 결정이 이루어지는지를 점검하는 일이다. 밤이고 낮이고 몸을 긁어대는 아토피 아이들, 몸이 굳어지고 몇 년이고 누워만 있어야 할 희귀난치병 환자와 장애인들에게 대체 과학기술은 무엇이며, 정부는 과학기술에 어떤 임무를 부여하고 있는가? 한 쪽은 철저한 외면으로, 또 다른 한 쪽은 경제적 가치를 과장하면서 헛된 희망만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대답했을 뿐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과학기술인가**

우리 사회의 곳곳에는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기를, 정부가 예산을 투자해서 과학기술에 임무를 부여해주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과 문제들이 있다. 각종 산업재해에 노출된 노동자, 산업단지나 대도시의 환경오염에 노출된 시민들, 아토피 등의 환경성 질환에 심각하게 노출된 어린이들, 제약 없이 노동할 기회를 제공받고 일상적 생활에 편입할 수 있기를 바라는 장애인들, 건강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여성들 등.

이런 문제에 답을 주기 위해서는 국가는 이런저런 기관을 두고 있기는 하다. 산업안전기술을 개발하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환경오염에 따른 환경성 질환을 감시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환경보건센터,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재활공학서비스연구센터, 각종 자연재해나 화재 등에 대한 기술을 연구개발하기 위한 방재연구소 등. 하지만 이 분야에 투자되는 국가연구개발비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내게 이유를 찾으라면 한마디로 '돈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가 황우석 사태를 통해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새로운 과제로 부각시켜야 할 것은 이런 점이다. 언제까지 황우석 교수의 '원천 기술' 존재 여부나 재연기회 허용 여부만을 두고 승강이를 벌이며 허송세월 할 것인가? 그런 것은 내버려두자. 이제는 과학기술은 시민들에게 무엇이며, 국가는 과학기술에 어떤 임무를 부여해 시민들에게 봉사하게 할 것인지를 토론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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