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10만명의 아이가 태어나는 서울이 앞으로 적어도 5년간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도, 건강하게 기를 수도 없는 지옥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이 제기됐다.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은 신간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힌 한국의 미래>(뿌리와이파리 펴냄)를 통해 임신부와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 서울을 '긴급 탈출'할 것을 제안한다. 스스로도 아이를 낳기 위해 올해 서울을 떠난다.
프랑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귀국해 10년간 환경운동의 일선에서 일해온 우석훈 실장은 최근 '한국형 뉴딜', '골프장 경기 부양론'에 대한 반박을 주도해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건설족'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암울한 보고서이다. 결론은 생각보다 훨씬 더 끔찍하다. '한국형 뉴딜'은 '한국형 대공황'을 부르는 전주곡이며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낳을 것이라는 것이다.
***지옥으로 변한 서울,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낳는다**
서울을 아이를 낳을 수도, 건강하게 기를 수도 없는 지옥으로 만드는 주범은 미세먼지라고 불리는 PM10(Particulate Matter 10)으로, 10㎛ 미만의 미세입자들이다. 주로 자동차 배기가스에 섞여 있고, 공사장 주변에서 날아오기도 한다.
PM10은 일정한 수준이 돼야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오염물질과 달리 아무리 미량이라도 발생하는 순간부터 보건상의 피해를 낳는다. PM10은 인체에 축적돼 평생 얼마만큼의 PM10이 몸 안에 들어왔는지 즉 얼마나 많은 PM10이 호흡기에 누적되었는가에 의해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법적 허용치에 미달하는 적은 날은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계속해서 인체에 피해를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이 특히 심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흔히 PM10은 경유차의 매연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서울의 경우에는 각종 재개발 공사장을 포함하는 곳곳의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PM10이 심각한 수준이다. 흙먼지를 막기 위해 차단막을 치고, 물을 뿌리면서 공사를 하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조치들은 일부 눈에 보이는 정도의 먼지들을 잠깐 줄일 수 있을 뿐이다. 현재까지 공사장에서 근본적으로 PM10이나 그보다 더 작은 미세먼지 PM2.5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더구나 법적으로 3백평 이하의 공사는 관리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PM10의 위험을 살펴보면 서울 특히 종로를 비롯한 4대문 안은 적어도 향후 10년 동안은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는 지역이다. 그 중요한 이유는 청계천 복원이다. 상류에 대한 복원 없이 도심을 흐르게 되는 '인공' 하천 청계천에 흐르는 물은 말 그대로 각종 미세 오염 물질의 종합 선물 세트이다. 이 청계천 물과 함께 향후 10년간 본격화될 청계천과 왕십리 지역 등에서 추진될 각종 고밀도 개발은 앞에서 살펴본 PM10을 다량으로 쏟아낼 것이다.
다른 지역은 안전할까? 당장 북한산 지역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앞으로 10년 동안 1백5만평의 공영개발을 서울시가 직접 주관하는 은평 뉴타운 사업이 예정돼 있고, 고양시 삼송 지구 역시 신도시로 선정돼 대규모 개발 사업이 불가피하다. 이런 식으로 서울 전역을 살펴보면 서울시 각 구청마다 하나씩 할당된 25개의 뉴타운 개발사업과 8개의 강남북 '균형발전 촉진지구'가 거의 동시에 착공된다. 25개의 구청들이 추진할 개별적인 개발 사업 역시 만만치 않다. 이렇게 되면 서울에 반경 10㎞ 안에 대규모 건설 사업장이 없고, 2㎞ 안에 건물 건설 현장이 없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향후 10년간 거대한 공사장으로 변한 서울에서 PM10 지수가 얼마나 높아질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PM10과 같은 미세먼지는 비가 와도 사라지지 않고 대기 중에 더 안정화될 뿐이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보건학자들은 1년 내내, 24시간 내내 발생하는 '서울형 스모그'라는 개념을 사용해도 될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지금도 PM10 오염도만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도시 중 단연 1위인 서울을 이제 떠나야 한다. 특히 아이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더욱더 그렇다.
***'건설족'의 저주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하지만 서울을 떠난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 '건설족'들은 온 국토를 헤집어놓아 이미 안전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총 38개의 골프장이 공사판을 벌이게 될 제주도를 제외해야 한다. 자유지역으로 분류된 제주도는 개발사업을 주도하는 제주지사가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협의를 한다. 사업과 환경영향평가를 동시에 하는 제주도에서 무분별한 개발이 진행될 것은 뻔한 일이다. 제주도는 지금 PM10보다 더 심각한 골프장으로 인한 지하수 오염 문제에 직면해 있다.
현재 1백여개의 골프장에 더해 앞으로 2백50개가 넘는 골프장이 지어지는 것도 큰 문제다. 우리나라의 3백30개 시ㆍ군에 사실상 하나씩 골프장이 지어지는 셈이다. 농약과 제초제가 주변으로 끊임없이 흘러들어가는 골프장 옆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는 없을 것이다.
울산, 광양 등 대표적인 오염 도시에 더해 앞으로 추진될 서남해안의 기업도시,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전 국토에서 진행될 대규모 개발 정책을 염두에 두면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을 만한 곳은 전국에 대여섯 군데에 불과하다.
우석훈 실장이 참여정부가 역사상 유례없는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살고 있는 것은 안전한가? 주변을 둘러보면 반드시 PM10을 쏟아내는 공사 현장이 존재할 것이다.
***'건설족' 말대로 해서는 절대 선진국 못 된다**
이렇게 전국을 '죽음의 도시' 서울로 만드는 아유는 딱 하나다. 바로 건설 경기를 통한 경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경제 성장도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 역설적으로 그 경제 성장이 우리 다음 세대를 짓누르는 위험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건설 경기를 통한 경제 성장은 가능한가? 이런 경제 성장의 열렬한 지지자들인 '건설족'들은 '부수고 짓는 행위'를 통해 "경제 성장률을 끌어 올리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석훈 실장은 인상적인 통계를 인용해 이런 주장을 반복한다. 역사적으로 국내총생산에서 건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13% 이상이면서 선진국이 된 나라는 '토건국가'로 유명한 일본(15%)이 유일하다. 대부분 선진국들은 8~13% 정도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24% 정도로 같은 수준의 요르단(30%), 베트남(27%), 우즈베키스탄(25%) 등은 국민소득 2천 달러 수준의 이제 막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해 건국 과정을 시작하는 특수한 나라들이다.
우석훈 실장은 지난 30여년간 한국 경제의 운동 방식을 살펴볼 때, 건설업의 비중이 처음으로 20%를 넘어간 1980년에 최초의 경제위기가 발생했고, 다시 건설업의 비중이 20%를 넘어 26.4%에 올라간 김영삼 정권 때 IMF 사태가 발생한 것을 지적한다. 즉 건설업이 국내총생산 내 비중이 20%를 넘어서면서 한국 경제는 어떤 식으로든 위기에 처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장기적으로 더 많은 '지대'를 발생시킬 수 있는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면 자본이 산업과 기술개발에 투입되기 어렵고, 이런 장기투자가 사라진 경제 운영이 2~3년간 계속되면 경제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형 뉴딜'이 '한국형 대공황'을 예고하는 전주곡일 수도 있는 것이다.
***굶주림에 허덕인 북한 아이들과 아픈 남한 아이들의 미래는?**
우석훈 실장은 한국 사회가 나아갈 대안으로 스위스와 덴마크 모델에 주목할 것을 주장한다. 3만달러 이상의 소득을 자랑하는 유럽의 소국인 이 두 나라는 열악한 자연 환경과 불안정한 국제 정세의 틈바구니에서 '생명'과 조화를 이루는 경제 성장을 추진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덴마크는 중소기업이 주도하는 풍력발전 산업과 전체 농산물 생산량의 10%를 차지하는 유기농업을 통해 유럽의 '강소국'으로 떠오른 나라다. 관광 강국으로만 알려져 있는 스위스는 초국적기업 네슬레의 본국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농업을 중시하는 나라일 뿐만 아니라, 지역에 분산된 작은 중소기업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조립산업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산업 실험을 성공했다.
우석훈 실장은 우선 스위스 모델과 덴마크 모델을 실험할 수 있는 근거지로 제주도와 부안을 들고 있다. 골프장을 짓는 대신 관광과 유기농업의 중심지로 만든다면 가장 먼저 3만달러 소득을 달성할 수 있는 곳이 제주도라는 것이다. '부안 사태'를 계기로 생명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양된 부안 역시 마찬가지다. 부안에 풍력발전을 비롯한 미래형 에너지 산업을 유치하고, 유기농업의 중심지로 만든다면 덴마크 모델의 구현이 가능하리라는 주장이다.
'아픈 아이들의 세대'에서 한 명이라도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전쟁의 아픔과 굶주림에서 면제받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20대 중반에서 30대 후반에 이르는 세대들이 낳은 아이들이 가장 불행한 세대가 될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 세대'와 남한의 '아픈 아이들의 세대'가 만들어갈 한반도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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