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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우리 모두를 천성산처럼 찢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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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우리 모두를 천성산처럼 찢고 있다"

[기고] 지율이 손가락이 되어 가리키는 것

지율이 또 한 번 풀잎처럼 스러졌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처럼 스러졌다. 주변의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술렁댔다. 지율의 단식과 건강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손가락 삼아 가리키고 있는 것에 주목할 것을 그토록 요청했건만 속인들이야 언제나 손가락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지율은 그 엉뚱한 관심에 더더욱 좌절하고 아파하지 않을까.

***순수로 포장된 정치·경제적 의도**

산을 뭉개고 천변을 밀어내며 바다를 메우는 '토건국가'의 국민 된 탓인지 지율의 단식일자 신기록, 형편없이 줄어든 몸무게에 더 관심을 갖는 데 익숙하다. 그도 아니면 지율이 망가뜨렸다는 '경제적 가치'를 재빠르게 셈한다. 지율 같은 이를 별다른 노고 없이도 스러지게 만드는 버릇을 갖추고 있는 우리 자신을 어렵사리 찾을 수 있다.

"마음으로는 밀고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손을 들어줄 수 없다." 주류 언론들이 자연과 과학 문제를 대하면서 반복해 보여준 태도다. 그런 탓에 자연과 과학 관련 보도는 순수와 조장(助長)이 범벅되어 있는 모호한 성격을 지닌다. 자연과 환경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순진무구한 어린이나 동물이 클로즈업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정치, 경제적 의도가 담긴 덧칠에 그 의미가 제대로 살아나지도 못한다. 순수는 조장을 위한 치장물에 불과한 것처럼 언론은 다루고 있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의 반대편에 선 어린이들이 종이학을 접는 모습은 신문 사진의 좋은 대상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모습은 지역 이기주의나 대안 없는 반대, 경제적 손실 등으로 치장된 조장의 덧칠 아래 깔리기 일쑤다. 심지어 관련 보도가 이데올로기로 조장될 때도 있다. 체르노빌 핵 재난 때 미국의 언론 보도가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체르노빌의 어린이들의 겁먹은 얼굴들로 재난을 더욱 강조하곤 했지만 그 이면에는 선진 기술을 가진 미국, 미국인으로서의 안도감이 더 강하게 깔려 있었다.

***돈 앞에서는 모든 범죄가 용서된다**

순수로 시작되지만 정치, 경제적 조장으로 마감되는 자연과 과학 보도의 버릇을 지난 두어 달 동안 몸서리치도록 경험했다. 황우석 사건에 대한 보도는 과학자 윤리를 다 지키지 못한 책임으로 늘 시작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원천기술, 경제적 가치를 더 높은 가치로 올려놓는 조장으로 마감되었다.

과학자의 양심, 정직성, 고결함 등에 걸어 시작된 이야기의 끝에는 늘 그와는 반대되는 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국가경제, 미래, 성장동력 등의 주의주장들이 보도의 대미를 굵직하게 장식한다. 언론의 이같은 틀 짜기(framing)는 언론적 사실로 그쳐버리지 않기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언론의 틀대로 사회가 인식하고, 토론하고, 기억하게 하는 효과를 내게 된다.

뻔한 범죄적 행위를 경제적 이유로 용서하고 보듬는 지극히 평범한 방식의 악행(惡行)에 빠져들게 할 수도 있다. 한나 아렌트는 이미 오래 전에 평범한 악행이 조장되고 있음을 경고했고, 최장집은 이를 두고 '유사 파시즘'적 사회로 접어들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질문했다.

***언론의 '돈, 돈, 돈' 앞에 희화화된 지율**

자연과 과학 문제에 관한 한 언론은 대체로 1차 문제제기자(a primary definer)에 해당한다. 1차 문제제기자는 쟁점의 범주를 정하고, 이후의 논의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순수로 시작해 정치, 경제적 조장으로 마감 짓는 한국 언론의 자연과 과학 논의는 마술적 효과를 연출하고 있다. 한국 언론의 문제제기 방식, 논의 방식은 자연과 과학 영역에서 과학, 진실로 향한 논의, 해석, 경쟁이 사라지게 하는 효과를 낸다. 자연과 과학을 논의하면서도 자연과 과학이 논의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마술적 결과를 펼치는 셈이다.

지율도 언론의 마술적 행위를 피해갈 수 없었다. 언론은 지율의 단식 날짜를 세기 시작했고, 인간의 한계를 기네스북에서 찾아내기에 분주했다. 환경영향평가나 정치적 공약을 지킬 것을 요청하는 지율의 요청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가 누운 모습을 스펙터클로 만들 궁리로 가득 찼었지만 정작 그가 가리키는 천성산, 그곳에서 벌어서는 토건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다,

지율과 관련된 보도의 끝은 늘 화폐적 가치였다. 공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를 화폐단위로 설명해냈다. 도롱뇽, 비구니를 순수와 결합시켜 관심을 끌면서 사회적 손실에 대한 토건 측 입장으로 마감하며 경제적 가치를 더욱 조장하는 이야기 구도를 만들어냈다.

***결국 언론에 의해 우리 모두가 천성산처럼 찢어지고 있다**

언론에 길들여왔던 우리 마음속에 지율은 고집불통의 승려로 남아 있을 공산이 크다. 우리의 눈은 지율이라는 손가락으로 향해 있음을 고백치 않을 수 없다. 그가 온몸을 다해 손가락이 되어 가리키고 있는 천성산이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다. 거기서 어떤 토건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허술한 환경영향평가를 전제로 한 토건, 손가락에만 집착하는 언론, 손가락을 더 열심히 뜯어보려는 대중, 모두가 '평범한 악'의 범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율이 손가락이 되어 가리키고자 한 것은 천연덕스럽게 그 범주로 들어가는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우리 모두가 천성산처럼 토건에 의해 찢어지고 있음을 지율이 전해주려 했음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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