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스님의 건강상태가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상 사람은 그가 왜 목숨을 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프레시안〉은 소설가 김곰치 씨와 교사 이계삼 씨의 기고문을 이미 게재한 데 이어 '문화연대'와 공동으로 지식인들의 릴레이 기고를 게재한다. 그 첫 번째로 상지대학교 홍성태 교수가 도대체 지율 스님이 맞서 싸우는 거대한 기득권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고발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시민운동가들이 뽑은 2005년의 대표적 시민운동에서 '환경운동'이 단연 앞자리에 섰다. 그 중에서도 '천성산 지키기'가 가장 먼저 꼽혔다. 2005년 연초에 100일 간의 단식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지율 스님은 일약 국민적인 관심인물로 떠올랐다. 그러나 곰곰이 따지고 보면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의 결과였다.
지율 스님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많은 애를 써왔다. 천성산과 금정산의 뱃속을 갈라서 부산으로 들어가는 경부고속철도를 놓게 되면 귀중한 자연 늪지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천성산이 크게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사실상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세력은 천성산을 지키고자 하는 지율 스님의 노력을 헐뜯고 비웃었을 뿐이었다.
***고속철도는 '토건국가'의 구조적 산물**
고속철도는 꼭 필요한 교통수단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필요성은 반드시 전문적 연구와 시민적 토론을 통해 확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고속철도는 그렇게 해서 결정되지 않았다. 최근 호남고속철도에 대한 이해찬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의 공개적 의견상충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우리의 고속철도는 거의 전적으로 지역개발주의를 부추기고 이용하고자 한 정치적 셈법의 산물이었다.
또한 고속철도가 꼭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 노선 확정과 건설 방식도 역시 전문적 연구와 시민적 토론을 통해 확정되어야 한다. 우리의 고속철도는 어떤가? 형식적으로 보아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실제로도 그런가? 예컨대 환경영향평가를 보자. 1994년에 발표된 천성산의 생물상과 생태계에 관한 환경영향평가는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것은 고속철도의 노선 확정과 건설 방식이 처음부터 완전히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속철도의 결정 과정과 건설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이른바 '토건국가'에 전형적인 문제들에 해당하는 것이다. '토건국가'란 토건업과 정치권이 유착하여 세금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국가를 뜻한다. 물론 이러한 탕진과 파괴는 당연히 부패를 수반한다. 이런 점에서 '토건국가'는 개발국가의 타락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부패국가의 타락한 형태이기도 하다. 고속철도가 낳는 문제들은 단순히 비용이나 공기(工期)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이러한 '토건국가'의 구조적 산물이다.
***'개발동맹'에 저항하는 지율 스님**
그러므로 지율 스님이 목숨을 버리기로 작정한 것은 두 가지 점에서 필연적이었다.
첫째, '토건국가' 세력은 지율스님이 막기에는 너무도 막강하다. 정치계, 관계, 기업계, 언론계, 학계를 망라하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이루어지는 '토건국가' 세력은 엉터리 환경영향평가 등을 통해 법을 우롱하고 대대적인 개발사업을 밀어붙인다.
둘째, '토건국가' 세력을 비난하며 적당히 뒤로 물러서기에는 지율 스님이 너무나 순정하다. 지율 스님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는 '토건국가' 세력은 지율스님에게 체념과 굴복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지율 스님은 그렇게 할 수 없다.
2005년 1월에 부산에서 만난 한 환경운동가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는 고속철도 사업이 6조 원이나 들어가는 대규모 사업인데 지율스님이 죽는다고 해서 그 사업이 중단되겠느냐고 말했다. 한마디로 지율 스님이 '비현실적 투쟁'을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토건국가' 세력에 맞서는 싸움치고 비현실적이지 않은 투쟁이 있겠는가? '토건국가' 세력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토건국가' 세력에게 맞서는 모든 투쟁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 '비현실적 투쟁'을 통해서 비로소 '토건국가' 세력이 비현실적 존재가 되는 새로운 현실이 생성될 것이다.
***누가 진실을 가로막는가?**
'토건국가' 세력은 지율 스님을 비정상이라고 몰아가기도 한다. 그녀의 목숨을 건 '단식 강법(講法)'으로 어렵사리 '천성산 환경영향평가 공동조사단'이 꾸려졌다. 그런데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공동 회의를 시작하면서 〈천성산 공사 관련 자료집〉이라는 책자를 만들어서 널리 배포했다.
이 자료집은 90쪽밖에 안 되는 작은 분량이지만 지율 스님에 대해 무려 73회나 부정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 이 자료집을 근거로 대한상공회의소는 지율 스님의 주장대로 노선변경을 하면 무려 30조 원의 국고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어 '토건국가' 세력의 일원이기도 한 보수언론의 무차별 공격이 이어졌다. '황우석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참으로 한심스런 작태가 아닐 수 없다.
막강한 '토건국가' 세력이 일치단결해 지율 스님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그녀가 진실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단식이 아니라 천성산과 그곳의 생명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녀가 '단식 강법'을 통해 가르쳐준 진실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토건국가' 세력의 구성과 작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더 이상 불법과 무법의 파괴행각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기 위한 실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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