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가장 중요한 한-미정상회담"이라고 반기문 외교통산부장관이 표현할 정도로,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6.10 한-미 정상회담'이 끝났다.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은 회담후 가진 짧은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미국은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와 "한 목소리"라는 표현을 다섯 차례나 사용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한두가지 작은 문제들"이 남아있으나 "중요한 문제는 다 해결됐다"고 답했다.
미국의 AP통신은 이와 관련, "이날 부시와 노대통령이 통일된 목표를 확립하는 과정에 외교적 언어(diplomatic language)가 난무했다"고 표현했다. 정상회담 발표내용의 껍데기가 아닌 '이면'을 읽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의제1. 북핵문제**
미 국무부 관계자는 회담에 앞서 8일(현지시간) "이번 회담의 3대 의제는 북핵, 한미동맹, 한일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프레시안> 9일자 '체니-럼스펠드가 盧를 단단히 벼르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9일 "북핵문제만 다뤄질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6.10 회담 결과는 미 국무부 전언이 맞은 것으로 드러났다. 회담후 가진 한-미 정상 기자회견이나 반기문 외교장관 및 스콧 매클렐렌 백악관 대변인의 별도 브리핑을 종합해 보면, 3대 의제를 둘러싼 양국의 이견과 합의내용을 부분적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첫번째 북핵문제와 관련,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는 향후 방향에 대해 지난해 6월에 제안했다. 그것은 합리적인 제안이며 우리는 아직도 그 제안에 대한 북한측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 부시대통령 발언이다.
부시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해 6월 3차 6자회담에서 제시한 '미국측 안' 이상의 새로운 대북제안을 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가능하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북한이 안심하고 회담에 나올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인 체제보장 및 대북보상안을 마련할 것을 미국측에 주문해왔다. 북한도 지난 2월 외무성의 '핵보유' 선언을 계기로, 미국에 대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며 이에 준하는 협상을 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부시대통령은 그러나 이날 '지난해 6월 제안' 이상의 새 제안을 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 나는 6자회담이 필수적(essential)이라는 점에 대해 동의했다"고 발표하면서도 6자회담 성사를 위해 북한에 추가로 양보할 생각이 없음을 드러낸 것으로, 향후 북한이 설령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미국측 제안을 전폭 수용하지 않는 한 회담의 난항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가능하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또하나 비상한 관심을 모은 대목은 "노무현 대통령이 외교적 노력이 소진할 경우 군사적 대응에 준하는(up to the point of a military response) 것도 지지할 것"이라고 한국정부 관리가 말했다는 <워싱턴포스트> 9일자 보도의 사실 여부였다.
반기문 장관은 이와 관련, "북한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부시 대통령과 노 대통령이 평소에 생각하는 게 꼭 그렇게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내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바깥으로 발표될 때는 아무런 이견없이 발표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 장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포스트> 보도처럼 대북강경대응책이 논의됐냐는 질문이 잇따르자 "구체적으로 여기서 협의 내용을 다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답해, 사실상 논의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같은 반장관 답변은 일견 대북강경대응에 대한 이견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해석가능하나, 회담결과 미국측 요구를 수용키로 한 게 아니냐는 정반대 해석도 가능해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주목해야 할 것은 매클렐렌 백악관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이다.
그는 '대북 금수(embargo) 가능성도 얘기되는데 금수할 게 뭐가 남았나. 식량원조 중단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식량을 외교무기로 사용해선 안된다는 점을 항상 분명히 해왔다. 오래 전부터 그 점에 대해선 매우 분명했다"고 부인하면서도 "다만 식량을 필요한 사람들이 배급받도록 확실히 해야 하는데, 북한엔 그 점에서 문제가 있다. 북한은 폐쇄사회로, 그 점에서 투명하지 않아 우리가 우려하고 있다"고 답해, 한국 등이 대북식량지원시 그 식량이 군부가 아닌 일반국민에게 가도록 감시해야 한다는 미국측 요구를 분명히 했다.
우리쪽의 '전제조건 없는 식량-비료 지원' 방침에 대한 미국측 제동으로도 해석가능한 대목이다.
***의제2. 한미동맹**
두번째 한미동맹과 관련, 가장 주목을 끄는 대목은 노대통령이 한미동맹의 강고함을 강조하는 과정에 말한 "한두가지 남은 작은 문제들"이 뭐냐는 것이다.
반 장관은 한미동맹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해선 이날 회담에서 언급되지 않았으며,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동맹관계 유지 방안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얘기가 나왔지만 양 정상간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관계장관, 외교국방장관간에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제의했고 부시 대통령도 거기에 대해 동의했다"고 전했다.
반 장관의 이같은 발언에 기초할 때 '한두 가지 작은 문제'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아니냐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 한동안 논란이 됐던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해선 노무현대통령 및 외교안보팀이 정상회담을 떠나기 전에 국내에서 "동북아균형자론은 미국이 아닌 일본을 의식한 것" "동북아균형자는 미국"이라고 잇따라 발언, 사실상 정부 스스로가 동북아균형자론을 폐기한 만큼 더이상 의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한두가지 문제는 '작계 5029' 및 '주한미군 기동화군'를 둘러싼 갈등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다.
'작계 5029'와 관련해선, 지난 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윤광웅-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회담을 통해 한국 정부가 지난 4월 '개념계획' 수준에서 보완.발전시키자고 한 제의를 미국측이 수용하면서 외형적으론 논란이 봉합된 상태다. 미국은 그러나 "동맹이란 군사작전을 함께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앞으로도 계속 이 부분을 압박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케네스 키노네스 전 국방부 북한담당관은 지난 9일 일본 <지지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한국에 대해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충실한 동맹국'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요컨대 '작계 5029' 등을 통해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미국에 충실하라"는 하향적 명령인 셈이다.
이와 관련, 최근 부시정부 고위층과 접촉한 한 야당 중진의원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작계 5029 등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단호하다"며 "한 예로 최근 라이스 미국무장관이 북한을 '주권국가'로 표현한 것을 우리는 적극적 대북대화 의지로 해석하고 있으나, 미국측 생각은 '북한도 주권국가인만큼 북한 붕괴시 남한이 북한에 대한 선점권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다"라고 전했다. 요컨대 작계 5029 갈등의 이면에는 '통일 헤게모니' 문제가 깊숙이 내재돼 있다는 전언인 것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한두가지 작은 문제들이 남아있으나 중요한 문제는 다 해결됐다"고 말했으나, 한두가지 문제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라 '더없이 중요한 문제'이며 따라서 결코 근원적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임을 감지할 수 있다.
***의제3. 한-일관계**
마지막 세번째 주목해야 할 대목은 미국이 제기한 '한-일관계'다.
반기문 외교장관은 회담후 브리핑에서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과의 최근 관계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고, 노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대일 정책과 동북아 정세의 핵심 사안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날 정상회담에 앞서 가진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무장관과 회동에서 이날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내용 외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혁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반 장관 전언은 우선, 일본의 유엔 안보리 가입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 라이스 국무장관이 한국의 반대에 대해 우려 및 철회를 압박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이 한-미-일 3각동맹을 통한 대북압박에서 이탈하기 위해 한-일 관계를 필요이상으로 악화시켜온 게 아니냐'는 부시정부의 평소 의혹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부시 정부는 일본을 '미국의 아시아 방패'로 삼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같은 미전략에 대해 한국, 중국이 강력 반발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영토분쟁 야기-신사참배로 한국, 중국에서의 반일감정은 극에 달한 상태다. 미국은 그러나 아시아 패권 유지, 중국 견제라는 목적아래 한-일 관계 정상화를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미국 요구에 대해 과연 우리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는 지켜볼 일이나, 주목되는 것은 일본측 반응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10일 밤 "한국정부가 정상회담 연기를 검토하고 있다"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말을 전한 한국 언론(YTN) 보도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일정) 예정은 이미 정해졌다. 이런저런 보도에 헷갈려서는 안된다"고 일축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역사에 대한 양국의 인식차가 정상회담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차이가 있음을 서로 인식하면서 우호관계를 심화해 가는 것이 정상회담"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일본 반응은 오는 20일께로 예정된 한일정상회담 개최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으로, 일본측 관심사는 회담이 당일회담으로 끝날 것인지, 1박2일 회담이 될 것인지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일본측은 1박2일 회담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노대통령의 최종결정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한국 '속내' 파악 위한 집단심사장이었나**
이처럼 중차대한 현안이 줄줄이 논의된 '6.10 한-미 정상회담'은 형식부터가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이날 회담은 '정상회담'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상외에 한국측에서는 반기문 외교장관, 홍석현 주미대사,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 이상희 합참의장, 조기숙 홍보수석, 윤병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장, 김숙 외교부 북미국장이 배석했다. 미국측에서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콧 매클렐렌 백악관 대변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마이클 그린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배석했다.
이같은 전례없는 회담 형식 외에도 이례적으로 짧았던 회담 및 방문일정, 또한 정상회담후 이례적으로 노대통령이 스태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부터 추가 브리핑을 받은 대목 등은 미국이 이번 회담을 한국정부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한 집단심사장으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을 정도로 긴장감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회담의 실체적 진실은 내주 후속협의를 위해 방한하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와 우리정부간 협의내용을 보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되며, 노대통령 귀국후 단행될 예정으로 알려지는 외교안보팀 개편을 통해서도 실체를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특히 이번 회담에 그동안 대북-대미정책을 총괄해온 이종석 NSC차장이 빠진 대목은 외교안보팀 개편의 방향을 예고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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