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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엄했던 '2004년 9월', 그리고 '2005년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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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엄했던 '2004년 9월', 그리고 '2005년의 봄'

[데스크 칼럼] 1백만원 받았다고 차관 목 날린게 언제라고...

***삼엄했던 '2004년 9월'**

지난해 9월2일, 노무현 대통령은 반부패기관협의회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모든 영역에서 부패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부패가 묻히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적발 노력을 강화하라"며, 특히 공공부문에서의 부패추방을 지시했다. 노 대통령이 이날 "퇴직 후에라도 재직 기간에 부패행위가 적발된 전직 공무원에 대한 혜택을 박탈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노대통령 지시 다음날인 지난해 9월3일, 부패방지워원회는 각 정부부처의 감사관 회의를 소집해 금품-향응을 수수한 공무원에 대한 강도높은 '징계 기준안'을 전달했다. 부패공무원에 대한 정부부처의 자체 징계가 '제식구 감싸기' 식이어서, 부패를 존속시키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징계 기준안은 엄격했다. 금품의 액수, 직무와의 관련성 등에 따라 징계의 범위를 24개로 세분화한 뒤, 특히 공무원은 어떤 경우라도 1천만원이 넘는 금품.향응을 제공받을 경우 반드시 파면하도록 했다.

우선 '떡값'이라 불리는 1백만원 미만의 금품.향응에 대해서도 ▲공무원이 금품.향응을 받은 뒤 직무와 관련된 부당한 처분을 하면 정직.해임되고 ▲정당한 처분을 하더라도 감봉.정직 조치하며 ▲직무와 무관하게 의례적으로 금품이나 향응을 받게 되면 감봉.견책을 내리도록 했다.

1백만~3백만원미만의 금품.향응수수는 직무 관련성이 있고 부당한 처분을 하면 파면.해임되고, 정당한 처분을 하면 해임.정직되며, 의례적인 수수일 경우 정직.감봉되도록 했다. 3백만~5백만원미만의 금품.향응은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파면.해임되고 의례적이면 해임.정직 처분을 받도록 하고, 5백만~1천만원 미만의 금품.향응은 직무 관련성 여부를 떠나 최소한 해임되도록 했다. 1천만원 이상은 이유를 불문하고 반드시 파면해, 연금혜택 등을 없애기로 했다.

부방위 기준안이 통고된 지 십여일 뒤인 지난해 9월14일, 김주수 당시 농림차관의 사표가 전격수리됐다. 후배로부터 '떡값 1백만원'을 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종민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김 차관은 지난 10일 오후 집무실에서 농림부 유관기관에 근무하는 고교선배 김모씨로부터 현금 1백만원을 수수한 사실이 조금 뒤 정부단속반에 의해 적발됐다"면서 "액수는 소액이지만 포괄적 업무의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참여정부 들어 차관급 고위직 인사가 금품수수 혐의로 `경질'된 것은 처음이었다. 김 대변인은 "노 대통령과 정부의 부패척결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고위공직자로서 부적절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2004년 9월의 분위기는 이처럼 삼엄했었다.

***관용의 정신이 넘실대는 '2005년초'**

그로부터 넉달 뒤인 지난 1월21일 김완기 당시 중앙인사위원회 소청심사위원장이 청와대 인사수석에 임명됐다. 그리고 두달 뒤인 지난 22일 조영택 국무조정실 기획수석 조정관이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에 내정됐다.

문제는 이들 두 사람 모두가 과거에 금품수수 혐의로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김영삼 정부 출범초기인 1993년 5월19일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감사원 암행감찰에 함께 걸려 들었다. 조 실장은 내무부 행정과장 시절 시장 등 지자체단체장들로부터 9차례에 걸쳐 1천40만원을, 김 수석은 내무부 기획예산담당관 시절 4백만원을 받은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감사원 통고를 받은 내무부는 사흘뒤인 5월22일 신속히 조영택 실장을 임명직이던 의정부시장에서 '직위해제'하는 동시에 중앙징계위원회에 '해임'을 요구했다. 사안이 경미한 김완기 수석는 자체 경징계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후 징계위에서 조 실장은 "받은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직원 회식비 등으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해임' 대신 '감봉 1개월'의 경징계로 바뀌었고, 김 수석은 "평민당 모 의원의 후원금을 대신 받아 전달한 것"이라는 해명이 받아들여져 징계중 가장 낮은 '견책'을 받았다.

청와대는 올 들어 이들을 기용하는 과정에 과거의 이같은 '전력'을 확인한 뒤, "지금은 용납할 수 없지만 과거에는 관행이었다"는 이유로 이를 문제삼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5년의 분위기는 이처럼 관용의 정신이 넘실댔다.

***국민은 과연 대통령인가, 봉인가**

국민들은 지금 더없이 어지러울 듯 싶다. 1백만원을 받았다고 현역 차관 목을 한 칼에 '떼깍' 친 게 어제 같은데, 오늘은 1천만원을 받아 직위해제까지 당한 인사를 장관급에 '떡'하니 기용하니 그럴 수밖에. 특히 '90년의 1천만원'은 지금 돈값어치로 따지면 '2004년의 1백만원'의 수십배에 달하는 거액인데...

부패방지위원회도 '할 말'을 잊었을 성 싶다. 1백만원 미만의 '떡값'도 중징계하고, 1천만원이상은 반드시 파면해 연금혜택까지 빼앗겠다는 '살벌한 최후통첩'을 보낸 지 얼마 안돼, 모든 정부부처의 업무를 총괄조정하는 장관급 국무조정실장에 살생부 가이드라인인 '1천만원' 이상을 받아 직위해제됐던 전력의 인사가 임명됐으니 말이다. 이렇게 부방위의 '명(命)'이 안 서서야 앞으로 공직자부패 조사를 전담할 기구를 산하에 둔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물론 '과거'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은 '결벽증'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탁류(濁流)의 시대'에 그 정도 흠결도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되물어도 할 말이 없다. 정부 스스로가 과거의 공무원 모두가 그렇고 그랬다고 매도한다면야 말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묻고 싶을 것이다. 그랬다면 왜 굳이 지난해 그렇게 살벌한 잣대를 내밀었냐고 말이다. 또한 정말 그렇게 '정부 인재 풀'에는 일반 국민들처럼 꼬박꼬박 세금 떼고 남은 월급으로 빠듯하게 생활하고 부하직원들과 소주를 마시는 이들이 전무(全無)하냐고 말이다. 아울러 가뜩이나 연초부터 잇따라 이기준 교육부총리-이헌재 경제부총리-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이 줄줄이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낙마해 국민 절망감이 대단한 이때, 꼭 그런 전력의 인사를 '알고도' 중용해야 했느냐고 말이다.

참여정부의 출범 캐치프레이즈는 "국민이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지금 다수 국민은 "봉"이 된 느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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