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을 방문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가 국제적 관행과 일치한다고 발언해 공분을 샀다. 원전 방사능 오염수는 정화 처리해서 바다로 흘려보내는 것이 현실적이고 일반적일 뿐만 아니라 과학적 방법에 기초한 것이란다. 그는 IAEA가 모니터링을 해서 일본과 주변국들에 미치는 환경영향을 확인해주면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출에 반대하는 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이런 자신감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IAEA는 그동안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미명으로 핵발전의 위험성을 분칠하고 장려해 온 조직이다. 따라서 IAEA 사무총장의 발언은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출에 정당성과 권위를 부여해주는 것이 아니라, IAEA의 정체성을 재확인해주는 것일 뿐이다.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는 그들만을 위한 과학에 기초한 타당성이고, 그들의 편의성에 기초한 일반적인 행위이고, 그들의 경제성만이 고려된, 그들에게나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들은 쌓아둔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에 흘려보내면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기억 하나를 함께 흘려보내며, 막힌 가슴도 함께 쓸어내릴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들의 고백처럼 그동안 해양생태계에 방출한 방사성 물질의 방대한 양을 생각한다면, 막대한 양의 오염수를 또다시 바다로 흘려보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120만 톤이나 쌓인 오염수를 17년 동안 7억 톤의 물로 희석한다고 한들, 방사성 핵종 물질 총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바다는 해류를 타고 순환한다. 거대한 오염수의 방류는 후쿠시마 주변 지역 어민뿐만 아니라 태평양 연안 국가에도 광범위한 피해를 입힌다. 그럼에도 도쿄전력이 줄기차게 해양방류를 주장하고, 일본 경제산업성이 해양방출 방침을 최종 제안한 이유는 단지 비용 때문이다. 오염수 내 발암물질인 스트론튬과 같은 고위험방사성물질을 제거하지 못한 것은 비용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값싼 기술만 적용하려다 보니, 결국 제염에 실패했다는 게 원자력 전문가 숀 버니의 전언이다.
일본 아베정부는 도쿄올림픽을 후쿠시마의 부흥과 안전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부흥올림픽으로 삼겠다고 했다. 성화 봉송 구간의 방사선량이 기준치를 초과하고 있는 것으로 측정되어도 올림픽 시설과 주변 방사선량이 전 세계보다 낮다는 억지만 부리고 있다. 사고는 덮고 싶다고 해서 그냥 덮어지지 않는다. 대형사고일수록 수습과 치유에 오랜 시간과 기술, 비용, 노력이 필요하다. 대형 참사 중의 참사인 핵발전 사고는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애초에 부흥과는 반대편에 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의 부흥과 안전을 과시하려는 시도는 무모한 발상이지만, 어찌 보면 일관된 찬핵론자들의 태도이고 그 연장이다. 그들은 늘 핵발전을 홍보할 때, '부흥'과 '안전'을 빼놓지 않았다. 이미 장막이 드러나 사고와 죽음의 처참함이 목격되고 있더라도 말이다.
오는 3월 11일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 지 9주년이 되는 날이다. 감염병 확산으로 인해 대규모 집회가 조심스러운 지금, 우리가 후쿠시마를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가오는 총선, 새로 구성될 국회가 탈핵에너지전환을 법제화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약속했던 탈핵을 폐기한 수준이다. 급기야 보수야당은 탈원전 정책 폐지를 1호 공약으로까지 내세우고 있다.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막고, 가동 중인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탈핵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 둘 곳 없는 핵폐기물 대책도 없이 차일피일 그 피해를 핵발전소 소재 지역주민과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떠넘기는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행태를 지속해서는 곤란하다. 기후위기에 직면하여 기회를 얻은 듯 대안으로 핵발전을 내세우는 핵산업계와 정치권을 상대로 핵발전이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만이 핵사고와 기후위기를 함께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기후위기가 후쿠시마를 즈려 밟고 갈 수 없음을 각인시켜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와 기후위기는 핵발전과 석탄발전이라는 상이한 발전 방식이 초래한 상이한 양상의 비극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비극에 대한 성찰 없는 활동의 결과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단기적 이득을 떠나서 장기적으로 그 여파가 막대한 비용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생존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역시 동일하다. 대규모 집회를 통해 후쿠시마 기념행사를 치루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우리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 핵발전 넘어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그것이 우리가 후쿠시마를 기억하는 슬로건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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