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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라떼파파'를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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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에서도 '라떼파파'를 볼 수 있을까?

[노회찬정치학교를 가다] "돈 걱정 없이 일하고·먹고·사랑할 수 있는 사회"

작년 이맘때쯤 처음으로 스웨덴에 가서 거의 반년이란 시간을 보내다 왔다. 우리나라에선 스웨덴이 선망의 대상이면서 환상 속 나라의 이미지가 강한지라 사람들에게 스웨덴에 갔다 온 경험이 있다고 말하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어떤 점이 인상 깊었냐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반년이란 시간은 스웨덴 사회를 충분히 관찰하고 사유하기엔 짧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유독 내 눈에 띄었던 것은 스웨덴의 '라떼파파'들이었다.

▲ 스웨덴의 '라떼파파'들. ⓒImage Bank Sweden

'라떼파파'란 한 손에는 커피를, 한 손에는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들을 일컫는데, 스웨덴에서 정말 흔히 볼 수 있다. '라떼파파'에 대한 명성이 한국에까지 닿았는지 작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스웨덴 국빈 방문 기간 중 김정숙 여사는 라떼파파들을 직접 만나 스웨덴 아빠들의 적극적인 육아 문화에 대해 한껏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당시 스톡홀름 프레스센터 취재지원으로 일했던 나는 이들의 만남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스웨덴은 원래부터 남성들의 적극적인 자녀 육아 문화가 보편화 된 나라였을까? 그렇지 않다. 여성의 노동권 신장과 남성의 육아 참여를 위한 여러 노동·복지 정책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스웨덴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이처럼 잘 짜인 노동·복지 정책들의 힘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노회찬정치학교 노동과 복지 영역 내내 선진 복지국가 모델로서 계속해서 언급됐던 스웨덴을 바라보며 과연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노회찬재단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노동 인권 감수성에 관한 강의로 노동과 복지 영역을 열었다. 그는 1년 동안 여섯 차례 걸쳐 모의 노사교섭을 진행하는 독일 학교에 비해 노동교육이란 것을 전혀 시행하지 않는 한국 학교의 실태를 꼬집는 것을 시작으로 노동조합, 비정규직, 파업 등을 차례로 다루며 한국 사회가 노동에 대해 얼마나 보수적인지를 일깨워 주었다. 또한, 이런 사회문제를 구조적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와 자본가가 나눠 가진 몫이 평등할수록 사회 전체에 더 유익하다고 역설했다.

1강에선 노동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다루며 노동 인권 감수성을 높였다면, 2강에선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 실정을 들여다보고 문제점을 진단하는 시간을 가졌다. 2강을 맡은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한국의 노동 문제점을 크게 고용 불안정, 소득 불평등, 그리고 노사관계 파편화로 구분 지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방안 중 하나인 최저임금제를 중심으로 해외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 그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최저임금 인상이 낳은 긍정적 효과들을 여러 데이터를 통해 설명하였다. 그는 '최저임금 1만 원'은 사회적 합의라는 점을 들어 최저임금 수준 현실화와 함께 최저임금 투쟁 영역의 다변화, 최고임금제 도입 등을 앞으로의 과제로 제안했다.

▲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노회찬재단

바람직한 복지국가 건설

3강부터는 주로 복지에 초점을 두고 강의가 이뤄졌다. 김영순 서울과기대 교수는 사회복지란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재분배 체계라고 말하며 복지와 정치의 연결고리를 설명했고, 이런 측면에서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과 그 뿌리에 어떤 정치적 균열구조가 존재하는지 살펴보았다. 수십 년 동안의 운동과 계급 정치를 통해 복지국가 제도를 쟁취했던 서구에 반해 우리나라는 우연의 연속으로 제도가 급작스럽게 먼저 도래했던 점을 지적하며 한국 복지 정치의 주요 행위자들로서 노동운동, 시민운동, 정당 각각의 전망과 과제를 제시했다.

이어지는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의 강의에서는 '어떤 복지국가인가?'라는 주제로 바람직한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현 단계 우리 사회에서 남겨진 쟁점들을 숙고해보았다. 작은 복지국가 vs. 큰 복지국가, 선별적 복지국가 vs. 보편적 복지국가, 가족동맹 복지국가 vs. 개인동맹 복지국가, 현금급여 vs. 현물급여로 나눠진 쟁점들을 짚어보며 미국이 대표하는 자유주의, 독일 대표하는 보수주의, 그리고 스웨덴이 대표하는 사민주의 복지국가들이 각 쟁점에서 어떤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 노동과 복지 영역 에세이 발표 자료 ⓒ노회찬재단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동과 복지 영역의 주제가 주제인 만큼 이번 특강은 스웨덴의 노동과 복지를 알아보는 시간으로 주어졌다. 특강을 맡은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은 노회찬 의원이 꿈꾼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의 전형이 되는 스웨덴은 노동자 계급이 일궈낸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강의 전반에 걸쳐 스웨덴 노동계급이 스웨덴 노총(LO)을 중심으로 계급을 형성하고 사민당을 통해 정치세력화와 장기집권에 성공하면서 어떻게 경제민주주의 발전과 복지국가를 형성했는지 주요 정책들의 발전 과정을 살피며 분석했다. 강의에서 다뤄졌던 주요 정책 중 공적 보육 확대, 세계 최초 출산휴가제에서 육아휴가제로의 전환, 기혼 부부의 개별과세 등을 담고 있는 여성·가족 정책은 위에서 언급됐던 '라떼파파' 탄생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특강 후 진행된 수강생들의 에세이 발표는 그 어느 영역 때보다도 나의 심금을 울렸다. 노동과 복지가 우리의 삶에 가장 맞닿아 있는 만큼 발표자 모두가 각자의 인생에서 드러난 다양한 문제들을 이야기했고, 그 하나하나에 나름대로 깊게 고민한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다. 걱정, 슬픔, 설렘, 투쟁심 등 갖가지 감정들이 느껴지는 발표 속에서도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모두가 (한 발표자의 에세이 마지막 문구를 빌리자면) "돈 걱정 좀 안 하고, 마음껏 일하고, 마음껏 먹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사회가 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발표자들의 모습에서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를 꿈꿨던 노회찬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

이번 영역 강의 중 한 수강생이 스웨덴과 우리나라는 애초에 다른 점이 많은데 과연 스웨덴처럼 될 수 있냐는 질문을 남겼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스웨덴과 같은 선진 복지국가들과 출발점도 다르고 정치·경제적 상황도 다르다. 그럼에도 스웨덴은 우리가 추구하는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의 가치를 제일 잘 구현하고 있기에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변 사람들과 스웨덴에 관해 대화를 나눌 때도 어김없이 위와 같은 질문이 나온다.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회의적인 반응도 꽤 있다.

"한국은 스웨덴이 아니잖아요."

내 지인이 푸념 섞인 말투로 던진 말이지만 나는 이 똑같은 말을 독자분들께 희망을 담아 전해주고 싶다. 이번 영역 동안 여러 번 강조됐던 것처럼 어느 한 복지국가 모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 맞는 복지국가 모델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스웨덴 모델을 지향할 수는 있지만, 우리 실정에 맞게 변형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스웨덴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더 깊은 연구와 더 큰 창의력이 필요하다. 과정은 험난할지라도 다른 선진 복지국가 모델에 뒤지지 않는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이 언젠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살포시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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