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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키신저, 진나라에 맞선 '합종'의 설계자 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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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중국의 키신저, 진나라에 맞선 '합종'의 설계자 소진

[표변하는 삶] 소진

오스트리아 빈의 고급 호텔 창문에서 밖으로 돌을 던지면 셋 중 한 번은 간첩이 맞는다는 말이 있다. 국제기구가 많이 모인 빈에는 자국 이익을 위해 비밀리에 활동하는 각국의 정보요원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천하의 종주국 주나라가 뇌사 상태에 빠졌던 전국시대에 제나라 수도 임치는 당시 최고의 학술 아카데미였던 직하학궁이 존재한 가장 번화한 국제 도시였다. 일급의 사상가는 물론이고 각국에서 파견한 간첩이 많았을 것이다. 그 중 한 사람이 소진(蘇秦)이다.

중국의 키신저, 소진

소진은 장의와 함께 종횡가를 대표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중국 작가는 소진을 미국의 전 국무장관 키신저에 비견하는데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키신저가 당시 적대관계였던 중국과 미국의 수교에 커다란 역할을 다한 것처럼, 소진도 전국시대 여러 나라 왕을 설득하는 등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진나라에 대항하는 동맹을 결성하였다. 소진과 같은 종횡가는 전국시대에 권모나 책략, 언변 등에 의지해서 제후들에게 유세하며 정치 외교활동에 종사한 일군의 사람들이다.

종횡은 합종과 연횡을 합쳐 부른 말인데, 둘의 목적은 다르다. 합종은 "여러 약한 나라가 힘을 합쳐 하나의 강국, 즉 진나라를 공략"하는 것이고, 연횡은 반대로 이러한 동맹을 파괴하고 "하나의 강국을 섬겨 여러 약소국을 공격하는" 전략이다. 소진은 합종책을, 장의는 연횡책을 펼친 대표적 인물이다.

지금 세계에서 최강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모든 나라의 주된 외교적 과제인 것처럼, 전국시대 중후반에 이르면 시대의 주선율은 진나라에 대항하느냐, 아니면 동맹을 맺느냐였다. <맹자>에 경춘이라는 사람이 "그들이 한번 노하면 제후들이 두려워하고 편안히 거하면 천하가 조용하다. 공손연, 장의 같은 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가 아니냐"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이에 대해 맹자는 "부귀도 타락시킬 수 없고 빈천으로도 뜻을 바꾸게 할 수 없으며 위무(威武)로도 굴복시킬 수 없는 이가 진정한 대장부"라고 반박한다.

이처럼 맹자는 도덕적 견지에서 종횡가를 비판하고 있지만, 이 대화를 보면 당시 종횡가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대화에서 공손연, 장의와 같은 종횡가를 거론하면서 가장 유명한 소진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당시에 소진이 실세하였거나 이미 죽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좌절을 동력으로 삼는 정신

소진은 동주의 수도 낙양의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제나라에 유학 가서 귀곡 선생(또 다른 제자로는 손빈, 방연, 장의가 있다)에게 사사 받는 등 열심히 공부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집안 식구들에게조차 냉대를 받는다. 소진은 이에 욕됨을 견디며 두문불출,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더욱 분발 '노오력'한다. "선비로서 고개를 숙여 가며 책을 읽었지만 어떤 존엄이나 영달도 얻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책을 많이 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실 책을 많이 읽어도 부귀영화는커녕, 미치거나 자신도 모르게 거세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공공도서관에 가보면 정신이 온전치 않은 분과 마주치는 일이 있는데, 나는 그 때마다 책을 보다 미쳤는가, 미쳐서 책을 보는 건가 반성해볼 때가 있다.

소진은 책을 실용적으로, 살아 숨 쉬게 잘 읽어 마침내 당대의 군주를 구워삶을 수 있는 유세술을 터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진은 자기 고향 주나라에서, 서쪽의 진나라에서, 그리고 동쪽의 조나라에서 번번이 실패한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북쪽의 연나라로 가서 마침내 합종책을 받아들이는 군주를 만난다. 이후 소진은 연나라 문후의 신임을 발판으로 세치 혀를 이용, 나머지 다섯 나라의 임금을 설득해 마침내 여섯 나라 재상의 인수(印綬, 벼슬에 임명될 때 왕에게서 받는 일종의 표장)를 차고 진나라에 대항하는 ‘연합사령관’이 되었다. 욕됨을 참고 견디며 분투해서 일생의 최정점에 올랐던 것이다.

예전에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 밥도 잘 주지 않고 거만하게 굴던 형수가 공손해진 것을 보고 소진은 탄식한다. "똑같은 사람의 몸이건만 부귀해지면 친척도 두려워하고 비천해지면 업신여기니, 하물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만약 내게 낙양성 가까이에 비옥한 땅 두 마지기만 있었던들 오늘날 내 어찌 여섯 나라의 재상의 인수를 찰 수 있었겠는가?" 좌절을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삼았던 이런 소진의 세태인정에 대한 감탄에는 자신에게 닥친 곤욕에 굴하지 않고 마침내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 자신의 심정도 얼마쯤은 들어 있으리라. 육국의 합종으로 진나라 군사는 15년 동안이나 함곡관에 머무르며 중원을 넘보지 못했다.
연나라의 간첩

어렵게 유지되던 동맹은 진나라의 반격으로 깨진다. 앞서 밝혔듯이 연횡책이란 육국의 동맹을 파괴해서 진나라가 패권을 차지하는 전략이다. 각국의 이해가 조금씩 다른 것을 이용, 작은 나라가 사적인 이익을 위해 약속을 깨게 만드는 것이다. 진나라의 서수(공손연)는 연횡책으로 제나라와 위나라를 속여 함께 조나라를 치게 만들었다. 당시 합종 동맹의 중심인 조나라에 와 있던 소진이 이로 인해 연나라로 돌아가게 되자 동맹은 와해되었다.

이후 소진은 연나라의 전략적 간첩으로 변신한다. 소진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연나라의 간첩이 되었을까? 이는 아마도 육국의 재상 인수를 차는 찬란한 영광이 연나라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처음 자신을 알아준 연나라에 보은하고 충성하려는 마음이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제나라에 파견되어 한 일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제나라가 빼앗은 성 열 개를 한 명의 병졸로 죽게 하지 않고 되찾아 온 일이고, 다른 하나는 제나라를 피폐하게 만든 일이다. 소진은 제나라 선왕이 죽자 아들 민왕을 설득하여 선왕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게 하고, 커다란 궁실을 짓게 만들며, 어마어마한 원림을 조성하게 만들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제나라 왕은 효도를 다했지만, 제나라를 약화시켜 연나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정한 소진의 계책이었다. 나중에 이러한 계략이 발각되어 소진은 거열형을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이처럼 소진의 일생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진나라에 대항하는 육국(제, 초, 조, 위, 연, 한)의 동맹관계를 형성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제나라를 약화시키기 위해 연나라가 파견한 간첩으로 활동한 일이다.

소진의 삶에 대한 평가

사마천은 소진의 일생을 지(智)라는 한 글자로 요약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나라의 임금을 설득하기는커녕 만나기도 힘들다. 하물며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육국의 임금을 모두 만나고 설득해서 동맹을 형성하는 것은 제로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일이다. 당시의 국제정세나 각 나라가 처한 지정학적 여건, 각국의 역사나 군주의 심리상태를 꿰고 있는 지혜는 물론이고, 위험을 무릅쓰는 담대한 행동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소진을 이를 완성한 인물이다.

소진이 죽은 이후 사마천이 그에 관한 열전을 쓰기까지 200년 정도의 기간에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분열되었고, 급기야는 멸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분서갱유를 통해 정확한 자료가 사라졌기 때문에 "세상에 퍼진 소진의 사적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폭압적인 통치를 펼쳤던 진나라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과거 진나라에 대항해서 싸운 소진에 대한 갖가지 영웅담이 만들어진 것은 시대의 요구였다. 죽으면서까지 자신을 죽인 자에게 보복하는 이야기도 그가 얼마나 총명한 사람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문학적 장치일 가능성이 크다. 소진 때문에 멸망을 재촉하게 된 제나라 사람이 아니라면 소진에 대해 도덕적 비판을 가할 필요는 없다. 약한 나라를 규합해 강자에 대항한 인물이 아니던가. 이 시대의 '진나라'를 억제할 인물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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