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손자병법=권모술수? 중국 이해의 열쇳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손자병법=권모술수? 중국 이해의 열쇳말!

[아까운 책] 리링의 <전쟁은 속임수다>

'프레시안 books' 138호는 '아까운 책' 특집호로 꾸몄습니다. 지난해 가치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우리 곁을 스쳐가 버린 숨은 명저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다양한 분야 열두 명의 필자가 심사숙고 끝에 고른 책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함께 '나만의 아까운 책'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 작업은 출판사 부키와 공동으로 진행했습니다. 여기 공개되는 원고를 포함해 총 47편의 서평이 실리는 단행본 <아까운 책 2013>이 오는 5월 초 부키에서 발간됩니다. <편집자>

인터넷서점에 들어가서 '손자' 혹은 '손자병법'으로 검색해보면 정말 다양한 책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출판되어 있다. <손자>라는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한 책도 여러 종이 있지만, 그보다는 <손자>를 경영이나 비즈니스 같은 영역 등에 응용한 저작이 훨씬 많다. 역설적이게도 정작 군사나 전쟁에 적용한 책은 거의 없다. 병법에 관한 '성경'과 같은 책이지만 일반 대중이 소비하고자 하는 '병법'은 그 병법이 아닌 것이다.

나는 과거에 맹자를 먼저 읽은 영향 때문인지 "하필 이익을 말하는가. 인의(仁義)가 있을 따름이거늘"이라고 되뇌면서 모략이나 전략 전술 같은 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 손자병법 어쩌구 하는 책을 보면 왠지 생존이나 출세를 위한 얄팍한 실용서라고 생각하여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약간 변화가 생겼다. 변화의 중요한 계기가 된 책이 바로 리링(李零)의 <전쟁은 속임수다>(김승호 옮김, 글항아리 펴냄)다.

▲ <전쟁은 속임수다>(리링 지음, 김숭호 옮김,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이 책은 부제처럼 저자가 베이징대학에서 20년 동안 <손자>를 강의한 내용을 정리했다. 전략 전술 같은 말도 좋아하지 않으니 전쟁이니 속임수니 하는 말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저자 리링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그는 전공이 고고학, 고문자학, 고문헌이지만 "아마추어적인 태도로 전공을 연구"한다고 자임하는 학자다. 역사문화에 대한 오랜 축적과 세계적 안목이 있으면서 어떤 당파적 견해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인 견지에서 글을 쓸 뿐만이 아니라 참신하면서도 친근한 필치 때문에 중국에서는 그의 글을 좋아하는 고정 독자가 상당하다. 그런 저자가 무려 20년 동안 <손자>를 강의한 것을 펴낸 책이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리링이 <손자>에 주목한 이유는 중국의 지혜를 설파하는 중요한 경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의 저명한 사상가인 리쩌허우(李澤厚)는 "손자에서 노자가 나오고, 노자에서 한비자가 나왔다", "노자는 손자의 영향을 받았고, 역전(易傳)은 노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상사적 통찰을 제시한 적이 있는데, 이런 관점에 입각해볼 때 <손자>는 중국적 지혜의 원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철학사나 사상사에서 <손자>를 일반적으로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이런 사정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펑유란(馮友蘭)도 중장년 시절에 쓴 철학사에서는 <손자>를 다루지 않았지만 신중국 성립 이후 말년에 쓴 <중국철학사신편>에서 <손자>를 다뤘다.

병법을 말한 <손자>에 무슨 철학이 있다는 것일까. 리링에 따르면 철학이란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인데, 전쟁 중에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발달한 병법엔 당연히 지혜가 녹아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중국식의 사유는 병법과 관련이 있고, 병법을 모르면 중국철학을 모른다고까지 말하고 있으니 그가 <손자>를 중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방관자가 잘 본다(局外者淸)"는 중국의 속담이 있지만, 서양에서 중국을 연구할 때 가장 주목하는 중국의 고전 중 하나가 <손자>다. 최근에 나온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헨리 키신저 지음, 권기대 옮김, 민음사 펴냄)라는 책을 보더라도, 그가 첫머리에서 서구와 다른 중국의 특이성을 손자병법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키신저에 따르면 중국은 "자신들의 문화와 체제가 보편적인 타당성을 지녔다고 주장하면서도 타인을 개종시키려 하지 않는 나라,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면서도 해외 교역이나 기술 혁신에 무관심한" 특이한 나라인데 이런 중국의 특이성은 <손자>와 연관이 있다.

"전쟁이란 다른 방법에 의한 정치의 연속"라고 말한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보다 "정치와 전쟁이라는 두 개의 장(場)을 하나로 융합시킨" 손자,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은 가장 잘한 용병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남을 굴복시키는 용병이 가장 좋은 것이다"라고 하면서 "군사적 요소에 앞서 심리적, 정치적 요소를 강조하는" 손자, "영토 정복의 원칙이 아니라 심리적인 압도의 원칙을 또렷하게 밝히는" 손자는 서양과 다른 중국의 특이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이처럼 서구에서 <손자>를 중요시하는 방식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기존의 유가(儒家) 사상 중심의 시야에서 벗어나 중국사상사의 또 다른 흐름(손자-노자-한비자 혹은 주역)에 주목해볼 때 <손자>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리링은 <노자>, <논어>, <주역>과 함께 <손자>를 중국의 지혜를 대표하는 "우리들의 경전"으로 파악한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손자>가 현대판 "사서(四書)"의 하나로 격상된 것이다. 손자병법은 전쟁의 기술이나 처세의 요령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는 철학이 된다.

<손자>는 5000자 분량의 노자 <도덕경>보다 약간 더 많은 6000자에 불과한 짧은 책이지만, 추상적이고 압축적인 개념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꼼꼼하게 따져보면 분명하게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다. 모두 13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군사는 국가의 큰일이다. 병사의 생사와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으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는 차분하고도 어두운 서막으로 시작된다. 전쟁을 벌이기 전에 먼저 신중하게 따져보아야 한다는 '계(計)편'에서 시작해서 간첩의 중요성을 설파한 '용간(用間)편'에서 끝을 맺고 있는데, 나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상대방을 아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구조를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투쟁과 생존의 철학인 <손자> 철학의 핵심은 무엇일까. 손자병법하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너무 잘 알려져 식상하지만 나를 알고 상대를 아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혹자는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은 가장 잘한 용병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남을 굴복시키는 용병이 가장 좋은 것이다"('모공편')라는 말을 거론하기도 한다. 직접 싸우는 것보다 심리나 두뇌로 싸우는 것이 최고의 경지(上兵伐謀)라는 말이다. 산전수전 공중전이라고 해도 심전이 최고란 말씀. 당태종 이세민은 "잘 싸우는 사람은 적으로 하여금 나에게 오도록 하지 자기가 적에게 가지 않는다"('허실편')를 꼽았다.

이에 반해 리링은 "군대는 속임수로 존재하는 것이다(兵以詐立)"('군쟁편')라는 구절에 주목한다. 이게 <손자>의 핵심이라고 보아서 원서의 제목으로 삼기까지 했다. "전쟁은 속임수다"라는 우리말 번역본 제목은 원어의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리링이 누누이 밝히고 있듯이 <손자>에서 말하는 병(兵)은 전쟁이 아니라 군대 혹은 군사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병이사립(兵以詐立)은 규칙에 도전한다는 의미이고, 유일한 규칙은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군사는 속임수의 도(兵者 詭道也)"('계편')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상생활에서 남에게 속임수를 쓰는 것이야 나쁜 일이지만 생사가 갈리는 전쟁 중에 속임수를 쓰는 않고 적에게 "진실되고 인자하게" 대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이 아니라 자기편에 잔인한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속임수"는 나쁜 의미가 아니라 임기응변을 통해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한다는 긍정적 의미임을 유념하는 것이 좋겠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전쟁은 속임수다>는 <손자>에 관한 최고의 책이다. 고문헌이나 고문자학적 지식의 토대 위에서 <손자>에 대한 논리적이고 구조적인 분석을 가할 뿐만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 엄밀한 해석을 쉬운 언어로 생기발랄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에 더해 전쟁사, 사상사, 문화사, 사회사 등 여러 분야를 섭렵하면서 입체적으로 해설해주고 있기 때문에 읽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할 뿐더러 병학(兵學)에 관해 얻는 것도 많은 책이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책이 너무 두껍고 제목도 얼핏 보면 속고 속이는 전쟁을 다룬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독자들이 선뜻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주위를 돌아보면 <손자>라도 좀 읽어 '병법'을 익혀야 할 듯한 사람은 관심이 많지 않고, <손자>를 따로 읽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권모술수가 있는 사람은 거꾸로 관심도 많고 여력이 있으니 참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런데 과연 이 책을 읽으면 '병법'이 출중해질까? 운용의 묘는 한 마음에 있으니 그것은 독자의 몫이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1. <집 잃은 개>(전 2권, 리링 지음, 김갑수 옮김, 글항아리 펴냄)
리링의 논어 해설서, <전쟁은 속임수다>는 학계의 평가가 긍정 일변도였다면 이 책은 내용을 떠나 공자를 지칭하는 "집 읽은 개"라는 제목 때문 중국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공자를 성인으로 추존하는 작금의 중국의 일반적 흐름과 달리 역사 속의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2.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헨리 키신저 지음, 권기대 옮김, 민음사 펴냄)
중국과의 수교를 성공시켜 세계의 역사를 바꾼 미국의 외교관이자 학자인 헨리 키신저의 일생에 걸친 연구와 경험이 집약된 노작, 중국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세계적 지평에서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무조건 읽어야 하는 책.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