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가끔 큰마음 먹고 대형 서점에 나가보면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중국 관련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어 참담한 심정이 들 정도이다. 완전히 촌놈이 상경한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렇듯 중국에 관한 많고 많은 책 중에서도 마크 레너드의 <중국은 무엇을 생각하는가>(장영희 옮김, 돌베개 펴냄)라는 책은 조금 특별하다.
왜냐하면, 중국을 대상으로 한 것은 기타 여느 책과 다를 바가 없지만 단순히 중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주체로서 중국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가 있거니와 단순히 사물이나 대상으로가 아니라 생각하는 주체로서 중국을 다루고 있는 점이 여느 책과 다른 점이다. 더구나 두께가 얇은 게 맘에 든다. 주변의 지인의 말을 들으니 요사이 두꺼운 책이 대세라는데 게으른 나는 왠지 얇은 책이 좋다.
▲ <중국은 무엇을 생각하는가>(마크 레너드 지음, 장영희 옮김, 백영서 감수, 돌베개 펴냄). ⓒ돌베개 |
개혁 개방 시대에 들어와서도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라는 '탄탄대로'를 놓아두고 검은 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쥐만 잘 잡으면 된다거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니 사회주의 시장 경제라는 알다가도 모를 '이상한' 개념을 내세우면서 "돌다리를 더듬어 가면서 강을 건너 왔다." 중간에 천안문 사태라는 곡절이 있었지만 소련처럼 한순간에 해체되거나 동유럽처럼 몰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가 놀랄 정도의 속도로 점점 발전해왔다.
돌이켜 보면 마오쩌둥의 사상도 마찬가지이다. 그걸 사회주의라고 말할 수 있지만 또 달리 보면 사회주의가 아니라고도 볼 수도 있다. 정통적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발전한 상태에서 그 모순이 폭발하여 사회주의로 진입하여야 하는데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도시의 노동자가 봉기하여 농촌을 포위하는 노선은 모두 실패하였고, 거꾸로 농촌이 도시를 포위하는 마오쩌둥의 노선이 성공을 거두었다.
이론의 무덤 : 중국
중국은 이른바 '보편적' 이념이나 이론의 무덤이라고 말할 정도로 일반적 룰이 적용되지 않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선 신중국의 성립부터가 그러하다. 서구의 경우 제국이 여러 나라로 해체되어 민족 국가 혹은 국민 국가(nation-state)가 탄생했는데 중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신중국은 청 제국이 펼쳐놓은 판도를 거의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 탄생했다.
루시앙 파이라는 미국의 학자는 중국을 "국민 국가 혹은 민족 국가의 옷을 걸친 제국"이라고 하였지만 사실 일반적 민족 국가라고 부르기도 어색하고 제국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국가가 중국이다. 그렇지만 이런 중국적 특색의 길이 실패로 끝났다면 우리가 크게 관심을 가질 필요조차 없다. 헌데 많은 중국 관찰자의 예상을 비웃듯이 중국 붕괴론을 뒤로 하고 현재도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도시와 농촌의 불균등 발전, 점점 심화되는 빈부 격차, 날로 심각해져가는 환경 문제, 변방 소수 민족의 갈등 등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최근에는 우연한 기회에 베이징의 집값에 대한 생생한 소식을 들은 일이 있는데 베이징에서 우리로 치면 서울의 강남도 아닌 마포 같은 곳의 30평짜리 집을 사려면 농촌 사람의 경우 평균 소득을 500년 동안, 도시 사람은 100년 동안 돈을 모아야 살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농촌 사람은 당나라 시대부터 돈을 모았어야 하고 도시 사람은 청나라 시대부터 돈을 모아야 한다는 이야기니 서민들에게 집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와 미국 특색의 자본주의
이처럼 많은 내부 모순을 안고는 있지만 2010년에 중국은 국내 총생산 규모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였다. 일본을 따라 잡았다고 세계 각 언론에서 앞 다퉈 이 소식을 대서특필했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거의 환호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도리어 1인당 국민 소득을 볼 때 갈 길이 멀다는 분위기다. 그런 가운데 2008년 세계 경제를 강타한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의 인터넷에서 유행한 말은 우리의 주목을 끈다.
"1949년에는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고, 1979년에는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으나, 1989년에는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었고, 2009년에는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
과장된 언사지만 중국이 그동안 이념이나 주의의 적용 대상에 머물렀다면 이제 주체로 서게 된 중국인의 자부심과 희망을 담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이 크게 유행했는지 모른다. 이제 더 이상 생각은 미국이나 유럽이 하고, 중국은 그런 '보편적' 생각을 적용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중국은 더 이상 서구의 단순한 학생의 신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100여 년 동안 열심히 서양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공부했건만, 금융 위기를 맞고 보니 선생님이 꼭 옳은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사실 지난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미국이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에 돈을 빌려 주면서 요구한 조건과 이번에 미국의 경우를 보면 너무도 달랐다. 완전 차일시피일시(此一時彼一時)다.
은행은 거꾸로 '국유화'했고 금리는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고 달러를 마구 찍어서 왕창 풀었다. 이걸 그럴 듯하게 양적 완화라고 한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이 풀리니 물가가 폭등하여 중동에서는 몇 나라의 정권이 바뀌었고, 지금도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미국 자본주의는 일반적 자본주의가 아니고 미국 특색의 자본주의라고 비꼬기도 한다.
아무튼 중국은 이제 목적어에서 주어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제 중국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현대 판 유럽의 제갈량?
마크 레너드는 바로 이런 점에 주목했다. 그는 중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형 인물이라기보다는 영국의 전 수상 토니 블레어가 만든 싱크탱크인 유럽개혁센터의 외교정책연구소 초대소장 등을 역임한 젊은 국제 전략 분석가이다. 제국을 운영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전략적 사고가 발달한 영국 출신이고, 이념적으로는 좌파나 혹은 우파 어느 한쪽에 치우친 인물이 아니다.
비록 이 책에서는 이른바 중국의 신좌파에 속하는 인물의 사상을 소개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만 이는 중국 지성계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지 그의 지적 편향 때문이 아니다. 이 책을 내기 전 그가 2005년에 출판한 <유럽의 세계 지배>(윤덕노 옮김, 매일경제신문사 펴냄)라는 책은 비교적 유명해서 18개국의 언어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그 책의 요지를 간단하게 말하면 미국과 유럽을 비교해볼 때 21세기에는 유럽이 미국보다 잘 나가리라는 것이다. 그가 볼 때 냉전이 종식된 이후의 세계엔 미국과 유럽이라는 두 개의 모델이 있는데 미래의 가능성의 측면을 볼 때 유럽 모델이 미국 모델보다 훨씬 매력이 있으며 미국의 모델은 점차 쇠락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근거를 여러 가지 들고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미국은 일방주의를 주장하고, 유럽은 다자주의를 펼치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상을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지만, 유럽은 세상 모두를 잠재적 친구로 생각한다!"
그는 이내 이런 자신의 주장이 커다란 도전에 직면한 것을 발견한다. 유럽의 모델이 미국의 모델을 대체할지라도 결국 21세기도 서양이 세계의 틀을 짜고 지배할 것이라고 낙관했는데 이런 서양의 지배에 도전할 강력한 타자인 중국의 부상이라는 문제에 부닥쳤다. "광활한 영토와 경제적 역동성, 지도자의 정치적 수완 등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국제무대에서 주도권을 다투게 될 가장 강력한 도전자는 다름 아닌 중국이었다." 그래서 2005년부터 부지런히 중국을 방문하여 정책 결정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큰 그림을 그리는" 다양한 지식인들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짧은 시간에 중국 사상계 지형도의 핵심을 어떻게 요령 있게 잘 파악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또한 유럽을 기준으로 지난 책에는 미국을 다루고, 이번에는 중국을 다루는 폼 새가 삼분천하(三分天下)해서 융중책(隆中策)을 설파하는 영국 판 혹은 유럽 판 제갈량을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중국 측에서 그가 영국 수상 블레어의 참모라고 해서 상당히 높은 격으로 대접해서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배려하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웬만한 중국인도 잘 몰랐던 충칭이나 다른 촌락의 기층 민주주의 실험을 알 수 있었고 보통의 학자라면 만나기 어려운 중요한 사람들을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다. 중국말에 "그대와 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니 10년 공부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지만 정말 그런 모양이다.
중국도 꽤 예쁘지만 유럽이 더 예뻐!
이 책의 결론은 간단하다. 유럽 모델을 위협할 중국 모델(간양이나 왕후이 같은 학자는 규범적 느낌이 강한 모델이라는 용어를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지만), 혹은 중국의 세계관은 한마디로 토머스 프리드먼이 말하는 "평평한 세계"와 다른 주권이라는 '성벽'이 세워진 세계이다. "중국적 세계 질서의 핵심이란 외부의 간섭 없이 운영되는 국가 주권과 권리의 배타성이 그 안에 살고 있는 국민의 인권보다 더 중시되어야 한다는 가치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런 중국 모델은 경제적으로는 크게 보면 황하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협의형 독재 체제, 국제 관계의 측면에서는 종합 국력의 추구라는 세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21세기에 유럽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국가의 간섭을 반대하고 민영화, 강력한 재산권, 급진적 경제 개혁에 찬성하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파산한 것과 달리 혁신을 위한 공적 자금의 사용, 공유 재산 보호의 지지, 경제 특구 방식의 점진적 개혁을 지지하는 황하 자본주의는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브라질, 러시아 등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더구나 이런 중국 모델의 매력이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밀어낼 정도라고 평가하고 있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정말 그런가?
하지만 결론은 역시 중국의 매력은 유럽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의 숨은 의도는 바로 이것이다. 자세히 보니 너도 꽤 예쁘지만 나보다는 안 예뻐! 이는 아마도 대부분의 유럽 지식인들의 일반적 생각일 것이다. 작금의 유럽 발 재정 위기 때문에 유럽의 매력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사족 삼아 굳이 덧붙이자면 중국 사상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간양(甘陽)을 자세히 다루지 않은 점, 유교를 위시한 전통 문화의 부흥에 대해 언급이 거의 없는 점 등은 아쉽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신좌파와 자유주의라는 이분법으로 잘 파악되지 않은 다양하고 역동적인 중국의 생각을 엿보거나 이런 중국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조망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단순히 경제만 발전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중국은 지금 생각 중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