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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가족들 "발표할 게 없다. 궁금한 것 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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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가족들 "발표할 게 없다. 궁금한 것 밖에 없으니까"

[현장] 지쳐가는 가족들, 軍 발표에 '불신' 언론 보도에 '공포'

"취재 허가가 났다고요? 우리는 허락한 적 없습니다!"

천안함 침몰 사고 발생 닷새째인 30일 평택시 포승면 해군 제2함대사령부 부대 내 예비군 교육대에 마련된 실종자 가족 임시 대기소.

약 300여 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들었다. 가족들은 사건 직후의 혼란에서는 다소 벗어났지만, 구조 소식이 들려오기는커녕 사고와 관련된 의혹이 어느 하나 풀리지 않아 지친 모습이었다.

언론에 대해서도 민감해졌다. 일부 가족들은 "언론에 이야기한 게 왜곡되어 보도되거나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며 취재진에게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 예비군 교육대에 마련된 천안함 실종자 가족 임시 대기소에서 한 가족이 취재진을 내려다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실종자 가족-언론 조율 실패에 취재 현장은 아수라장

실종자 가족들을 둘러싼 취재 열기가 가열되면서 지난 29일에는 일부 기자들이 2함대 사령부의 허가 없이 백령도행 군함에 몰래 올라타거나 심야에 가족들 임시 숙소에 들어가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이에 2함대사령부 김태호 소령은 30일 오전 브리핑에서 언론사들의 개별 행동에 자제를 요청했다. 현재 진행중인 작전 수행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가족들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이유에서다. 김 소령은 이어 가족들이 회의를 통해 향후 언론 대처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면서, 그 결과를 취재진이 수렴한 의견과 취합해 원활한 취재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2함대사령부는 30일 오후 1시부터 모든 언론사에 취재를 허용했다. 가족 대표단이 회의를 거쳐 언론 대처 방향에 어느 정도 합의를 봤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시 대기소 안으로의 진입은 거부됐다. 2함대사령부 소속 장병들은 연병장 내를 배회하는 가족들과 취재진을 격리하기 바빴고, 이미 흩어진 90여 명의 취재진들은 한 명의 이야기라도 더 들으려 동분서주했다. 가족들과 외부로의 소통 창구인 언론을 이어줘야 할 2함대사령부 측의 조율 실패였다.

"언론을 안 믿겠다"면서도 카메라 앞을 떠나지 못하는 가족들, 강박적으로 취재에 매달리는 취재진들, 양자를 떼어놓으려 목소리를 높이는 군인들이 뒤섞여 2함대사령부 내 임시 대기소 앞은 한때 아수라장이 됐다.

▲ 한 실종자 가족이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말을 제대로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상황

가족들은 "아무리 말해도 언론에 전달이 안 되는 것"과 "해군 측으로부터 아무런 설명(말)도 들을 수 없는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현재 가족들의 생명줄이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 소식이라면, '링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말'이다. 함미가 발생된 후 사흘째 답보상태인 구조 상황에 링거라도 절실한 이 때, 말을 제대로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노령의 한 실종자 가족은 "(오전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이 밝힌) 함미 부분 깨진 틈으로 공기를 주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느냐"는 질문에 "그게 뭔가.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아는 게 없다. 기자들이 우리보다 더 잘 알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계속되는 의혹에 정부 차원의 정확한 해명을 요구해도 별다른 대답이 없는 데 따른 체념이었다.

그러면서 언론엔 배신감을 드러냈다. 가족대표 중 한 명은 "우리의 모든 불만을 다 이야기해줬는데 어제 보도된 것은 2함대사령부가 마련한 검은 천막을 철거한 사실 뿐"이라며 "더 이상 우리는 언론을 믿지 못한다"고 말했다.

몇몇 가족이 방송 카메라를 꺼달라고 항의했고, 이 자리에서 "언론도 통제되고 있냐"는 목소리도 들렸다. 이런 가운데 일부 언론이 다른 가족들에 접근해 취재를 시도하자, 가족대표 중 한 명은 임시 대기소에 딸린 확성기를 통해 "대표자 회의가 진행 중이니 어떤 정보도 기자들에게 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 가족대표 중 한 명이 "더이상 언론을 못 믿겠다"며 인터뷰를 거부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기자들은 "어떤 점이 축소되고 왜곡됐는지 알려달라"고 말했지만 "말해줘도 어차피 (보도에) 안 나오지 않냐"는 차가운 대답만 돌아왔다.

이런 반응의 이유에 대해 현장을 방문한 민주당 이종걸 의원으로부터 간접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의원은 29일 현장을 방문해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강당을 지키다가 가족들과 함께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 의원은 "가족들은 군이 생존자들의 입을 막으면서, 실종된 이들을 수장된 채로 내버려두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처음에는 9시 45분에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다가 9시 30분으로 정정했고, 이어 실종자 하균석 하사가 여자친구 김 모 씨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9시 16분에 갑자기 끊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듯 계속해서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며 "가족들은 이런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의혹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가족들이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함대사령부에 대한 의심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함대사령부와 가족들 사이의 생각의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지점 바로 근처에 있었던 함미 부분을 사흘이 지나서야 발견할 때까지, 가족들에게 구조 활동은 쇼로 비쳐졌을 것"이라며 "구조 작업에 진정성이 있었더라도 작업 자체가 미흡했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은 "사고 후 해군의 초기대응이 좋았다"고 했지만 가족들 상황으로선 인정할 수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 의원은 또 "가족들은 저녁이면 언론 출입을 막는 것도 통제라고 생각한다"며 "가족들은 조속히 진상이 규명되기를, 사건 전체를 파악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가족들은 언론에 '믿지 못하겠다'며 날을 세운 것일까. 언론 앞에 더 많은 의문점과 슬픔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한편, 인터뷰 내용이 축소되는 것에 대한 배신감과 반대로 부풀려지거나 왜곡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실종자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현장에 방문한 민주당의 이종걸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희망 잃지 않고 '실종자 가족'으로서 목소리 낼 것"

실제로 상황이 다소 진정된 후인 오후 4시께 실종자 김종훈 중사의 매제를 비롯한 가족대표 3명은 2함대사령부 부대 바깥 제2해군회관에 마련된 보도본부를 방문해 "아직 가족들은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다"며 "그러나 언론을 처음 접해보는 분들이라 잘못된 정보가 나가는 것에 대해 상처와 충격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족대표 중 한 명은 "기사가 엉뚱하게 나가 (숙소에서) 밤마다 통곡소리가 난다"며 "제발 우리한테 직접 듣지도 않은 말을 추측해서 쓰는 건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극구 이름을 밝히길 꺼린 그는 일부 기자들이 노령의 가족들에게 접근해 '사연'을 캐가는 것도 문제삼았다. 그는 "젊은 나도 충격으로 제정신이 아닌데 나이 드신 분은 어떻겠나"라며 "그 분들은 감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감정에서 나오는 보도는 오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우리들은 유족이나 유가족이 아닌 '실종자 가족'"이라며 아직 수색에 희망을 갖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백령도 사고 현장에 갔던 18명의 가족들이 귀환해 휴식을 끝내면 대표단을 제대로 구성해 31일부터 회의록과 보도자료 등의 형태로 합치된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가족대표는 "지금으로서 우리는 발표할 게 없다. 우리에게는 궁금증밖에 없는 상태다"라고 일축했다.

실종자 가족들 스스로가 말을 할 수 있으려면 먼저 정부 차원의 명확한 '말'이 있어야 할 듯하다. 정확한 사건 발생 시간, 사고 후 생존자들이 구출되기까지 70분간 일어난 일들, 사고 당시 선체의 상황, 사고 원인 등 모든 의혹들에 대해 국민 대다수는 실종자 가족들처럼 "궁금증밖에 없는 상태다."

▲ 한 실종자 가족이 2함대사령부 내 예비군 교육대 맞은편 강당에서 구조 작업 진행 상황을 보도하는 방송을 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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