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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설족이 지배하는 '뱀파이어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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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 건설족이 지배하는 '뱀파이어 경제'

[데스크 칼럼]'분양원가 공개 망국론'의 허구를 파헤친다

노무현대통령이 끝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하는 정부와 건설업계 손을 들어주었다. 노대통령이 9일 민주노동당과 만난 자리에서 밝힌 반대 이유로 밝힌 것은 '시장주의'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가 왜 개혁적인 것이냐.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사하는 것인데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고, 결국 벌고 못벌고 하는 것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지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 공개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노대통령 경제철학이 '시장주의'라기보다는 '시장방임주의'에 가까움을 보여준다. 실제로 노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 문희상 의원은 "고전적 자유경제주의로 돌아가자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부연설명하기도 했다. 요컨대 노대통령은 시장이 요동을 치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기 마련이라는 생각, 즉 "시장은 완전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과연 시장은 완전한가.

***고 김재익 수석의 '심판론'**

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뒤, 전두환 당시대통령의 절대신임아래 경제수석을 맡은 고 김재익씨가 우선적으로 착수한 일 가운데 하나가 공정거래법 제정이었다. 당연히 재벌들의 반발이 대단했다. 2차 오일쇼크로 나라경제가 엉망인 마당에 무슨 놈의 공정거래법 제정이냐는 반발이었다. 공정거래법을 만들면 마치 재벌들이 '경제 보이콧'이라도 할 분위기였다.

당시 김재익 수석은 공정거래법 도입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요지의 주장을 폈다.

"앞으로는 정부 대신 시장이 경제중심이 돼야 하는 시대다. 박정희 시대에는 정부가 축구장의 감독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앞으로 정부는 심판이 돼야 한다.

시장은 완전한 게 아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투기와 담합, 야합이 판치는 카지노판이 되기 마련이다. 민간기업이라는 선수들이 시합에서 페어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심판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공정거래법이다. 반칙을 하는 선수는 운동장에서 퇴장시켜야만 공정한 게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수석은 이같은 '심판론'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는 김 수석에 대한 전두환 대통령의 절대신임에 힘입어 공정거래법이 제정돼 그후 시장의 불공정 경쟁행위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와 '시장'의 관계는 이런 것이다. 게임을 엉망으로 만드는 '반칙'을 하는 악질선수를 퇴장시키는 게 바로 정부의 역할인 것이다. 노대통령도 평소 무수히 얘기했듯 "반칙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인 것이다.

노대통령은 작금의 부동산시장을 '시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난 몇년간 건설업계가 보여준 이런 작태는 '시장'이 아니다. 담합과 야합이 만들어낸 '투전판'이지, 결코 공정한 게임의 장이 아닌 것이다. 더욱 개탄스러운 대목은 이같은 투전판을 막았어야 할 정부가 스스로 심판의 역할을 포기하고, 도리어 투전판의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는 대목이다.

***"뱀파이어 경제"**

며칠 전 내로라하는 외국계 컨설팅기업의 한국담당 CEO와 만나 한국경제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이 CEO가 한국경제에 대한 상당히 인상적 표현을 썼다.

"한국경제는 한마디로 뱀파이어 이코노미(Vampire Economy)라 할 수 있다. 햇볕에 쬐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부실기업과 기업주들이 대낮에는 음지에 숨어있다가 밤만 되면 활개치고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구조조정이 아직 미완성형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뱀파이어 이코노미', 우리말로 풀면 '흡혈귀 경제'라는 개념을 듣는 순간, 이 개념을 작금의 한국 아파트시장에 적용하면 아주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펀뜻 들었다.

전국민의 절반에 달하는 무주택 국민과,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 조금 집을 넓혀가려는 시민들에게 건설업계와 건설족이 행한 지난 몇년간 행위야말로 '뱀파이어의 흡혈행위'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절대다수 국민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뱀파이어 경제'에 대한 저항에 다름아닌 것이다.

***IMF사태후 세번의 '뱀파이어 축제'가 있었다**

'뱀파이어 경제'란 한마디로 정상적 기업행위나 노동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게 아니라,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부를 부풀리는 경제'를 가리킨다.

한국의 경제전체규모 즉 국내총생산(GDP)는 IMF사태이전보다 거의 성장하지 못했다. 1996년 1만달러를 돌파한 1인당 GDP가 지난해 1만2천달러 수준으로 높아졌다고는 하나, 이는 지난해 한국은행의 계수조정에 의한 '착시현상'으로 실질적으로는 거의 성장을 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셈이다.

그러나 나라경제 전체는 거의 성장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상류층은 이 기간중 재산을 IMF사태 전보다 몇배씩 불릴 수 있었다. 이유는 세차례 투기판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첫번째, IMF직후의 살인적 고금리로 현찰 보유자는 부를 증식했다. 반면 은행에 빚을 진 중산층이나 서민은 그만큼 부가 줄어들었다.

두번째, IMF가 금리정책을 저금리로 바꾸자 이번에는 증시를 중심으로 '묻지마 투기판'이 벌어졌다. 이때도 현금보유자는 또한차례 부를 증식할 수 있었던 반면, 현금이 없는 다수 국민은 절망감만 곱씹어야 했고 뒤늦게 돈을 빌려 뛰어든 이들은 상투를 잡고 또한차례 부를 털려야 했다.

세번째, 증시가 시들해지자 이번에는 '아파트투기장'이 섰다. 아파트투기판은 결정적으로 전국민의 절반에 달하는 무주택자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 조금이라도 집을 넓히려던 다수 국민에게 치명타를 가하며 '부의 양극화'를 극단화시켰다. 즉 자그마한 30평대 초반의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 한채를 마련하는 데 걸리던 시간을 종전의 9년에서 18년으로 배가시킴으로써, 집 한채를 마련하기 위해선 18년을 무조건 결핍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국 내수경제가 침몰한 건 필요적 귀결이고,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도 거의 전무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내수경제의 소비주체인 국민 다수의 구매력을 일부 계층이 빼앗아간 결과다. 다름아닌 '뱀파이어 경제'의 귀결인 것이다.

***은행들 "아파트값 30% 빠져도 견딜만하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의 논리가 궁색하자, 요즘 부쩍 제기되고 있는 논리가 '일본 장기복합불황론'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청와대에서 언론사 경제부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경기가 나쁘다고 탄핵을 추진한 한나라당이 경기를 죽일 수 있는 이런 규제를 만들자는 것이냐"며 "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제발 이랬다 저랬다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며 분양원가 공개에 찬성하는 한나라당을 공격했다.

노 대통령은 또 "부동산 가격은 급격한 변화를 주지 않는 게 좋다. 투기하는 것도 싫어하지만 자신의 자산이 깎이는 것도 싫어한다. 또 금융부분과 많이 맞물려 있다"고 말해 분양원가 공개시 부동산값이 폭락할 것을 우려해 원가공개에 반대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에 앞서 이해찬 총리 지명자도 10일 "아파트가격이, 특히 공공아파트의 경우 시장원리에 기본적으로 맞아야 하는데 시장원리를 침해하는 식으로 하다보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며 노대통령의 분양원가 공개 반대 입장에 동조했다.

이같은 인식은 건설업계와 건교-재경부, 언론이 펴고 있는 '일본형 장기복합불황'론에 기초한 것이다.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집값이 폭락하고 금융부실이 급증하면서 일본처럼 장기불황에 빠져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과연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일본같은 장기불황에 빠져드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올까.

국내 주요 은행들은 지난해말 아파트거품이 폭발직전 상태로 부풀었다고 판단, 비밀리에 전국 지점을 상대로 '과연 얼마나 아파트값이 빠져도 은행이 견딜 수 있나'를 조사했었다. 각 지검의 담보대출비율 등을 실물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는 "아파트값이 30%까지는 빠져도 견딜만 하다"는 것이었다. 일본 은행들의 경우 부동산값이 영원히 오를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집값보다 대출을 더해주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치명상을 입었으나, 우리나라 은행들의 사정은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분양원가 공개 반대론자'들이 펴고 있는 '일본 장기불황론'의 허구를 알려주는 조사결과다.

***맥켄지 "한국의 아파트거품 반드시 터진다"**

세계최대 컨설팅그룹인 맥켄지에 따르면, 한국의 아파트거품은 이미 폭발했어야 마땅했다. 1991년 일본, 1995년 홍콩의 부동산거품이 폭발했을 때보다 거품의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는 이유에서다. 맥켄지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아파트거품은 정부가 아무리 막으려 해도 멀지 않아 터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맥켄지가 확보하고 있는 각국의 경제발전 통계를 보면, 국민의 1인당 GDP가 8천달러를 넘는 순간부터 GDP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유독 한국의 경우는 IMF사태로 1인당 GDP가 8천달러로 추락한 이래 최근 1만2천달러까지 회복되는 과정에 GDP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져왔다. 한마디로 말해 정부가 99년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를 계기로 줄기차게 '아파트 경기부양책'을 펴왔다는 얘기다.

내집마련정보사에 따르면, 서울 동시분양 아파트의 전년 대비 분양가 상승률은 아파트 분양가가 된 1999년 9%를 시작으로 2000년 7.9%, 2001년 10.5%, 2002년 15.2% 급등했고, 특히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해에는 30.3%나 폭등해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분양가 폭등은 업계가 "분양이 안돼 죽겠다"고 아우성치고 있는 올해 들어서도, 5차례에 걸쳐 실시된 서울 동시분양 아파트 59개 단지 5천6백22가구의 평당 분양가가 4.8% 상승했고 40평대 아파트는 17.8%나 폭등했다. 아파트 거품은 이 순간에도 계속 폭발점을 향해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거품이 확대재생산을 거듭하는 한, 한국경제는 치유불능의 말기암 상태로 골병들고 있다.

***국민을 감히 가르치려 하지 말라**

문제는 이처럼 지난 수년간 분양가가 폭등하면서 다수 국민의 허리는 더없이 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건설업체들이 국가에 낸 세금은 몇년째 거의 변함없는 쥐꼬리 상태였고 업계는 계속해 "벌은 돈도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다수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빼낸 그 천문학적 돈은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정부는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든 정부가 추진하는 원가연동제를 하든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참여연대 등 극소수 시민단체도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분양원가를 공개해야만 지난 몇년간 다수 국민에게 빼내간 돈의 행방을 찾을 수 있다. 분양원가를 공개해야만 누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고, 얼마나 많은 탈세가 이뤄졌으며,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가를 찾을 수 있다.

"앞으로 원가연동제를 하면 폭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정부측 주장은 "과거는 묻지 말자"는 주장에 다름아니다. 지난 몇년간 아파트를 매개로 다수 국민을 상대로 행해진 '뱀파이어 행위'를 덮어두고 넘어가자는 얘기인 것이다.

정부 주장대로 "분양원가 공개와 원가연동제 사이에 차이가 없다"면, 즉각 다수 국민이 원하는대로 분양원가 공개를 하라. 무엇이 두려워 못하는가. 다수 국민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국민을 가르치려 하지 말라. 자신과 가족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에 관한 한, 국민은 결코 우중(愚衆)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건설족이 지배하는 '뱀파이어 경제'가 존속하는 한 한국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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