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부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제25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5)가 진행되고 있다. 13일까지 열릴 예정이며, 이제 첫째 주의 일정이 끝났다. 칠레 산티아고가 시위로 인해 개최를 포기한 결과 장소가 스페인 마드리드로 변경됐다. 준비를 급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 그런지 COP에 처음 참가하는 입장으로서 상당히 실망스럽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기후위기 시대에 COP25 행사장 안은 이상하리만큼 허전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6일 오후 6시, 스페인 마드리드 아토차 역과 누에보스 미니스떼리오스 역 사이에서 대규모 집회 '기후비상행진'이 열렸다. 약 4㎞ 정도 되는 거리가 사람으로 꽉 채워졌다. 스페인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50만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기후위기 비상사태는 부정할 수 없으며 지금부터 행동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이들은 한 목소리로 칠레 민중가요 가사인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를 외쳤다. 칠레 시위와 연대하고 기후정의와 사회정의 운동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칠레에서 온 참가자들은 피녜라 대통령을 구속하라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집회는 약 500개 이상의 스페인 시민사회 조직으로 구성된 'Cumbre Social por el Clima(기후사회서밋)'가 주최했다. 환경, 청년, 인권, 여성, 원주민, 종교, 교육, 노동, 사회 등 여러 분야의 단체들이 참여했다.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은 'This is change(이것이 바꾼다)' 깃발을 흔들었고, 그린피스는 'No hay planeta B(다른 지구는 없다)'라는 문구로 지구모양의 풍선을 띄웠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분필로 아스팔트 바닥에 그림과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많은 참가자들은 정의로운 전환과 그린 뉴딜, 깨끗한 공기와 물을 원한다는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청소년 참가자들은 육교에 매달려 'Just 8 years till 1.5℃, How dare you?(1.5도까지 남은 건 8년,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가 적힌 현수막을 펼쳤다.
COP25 총회장 부대행사 일부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가장 중요한 '행동'과 '대안'은 COP25 공식 회의에서는 수사적 표현일 뿐이었고 지금까지의 행보를 봐서는 앞으로도 기대하지 않은 편이 낫겠다. 대신 주목해야할 곳은 'COP25를 넘어' 기후사회서미트다. 기후비상행진 이후 7일부터 13일까지 마드리드콤플루텐세대학교(UCM)와 스페인노동자총동맹(UGT)에서 각 분야별 시민사회단체와 운동가들이 기후위기와 관련된 프로그램과 워크숍을 진행한다.
기후사회서미트는 3년 연속 유럽 국가에서 COP을 개최하는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기후, 환경, 페미니즘, 퀴어, 노동, 농민, 인종, 탈식민주의 등 다양한 운동의 연결고리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길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또한 칠레 시위와 연대해 제국주의 유산을 가진 스페인 시민사회로서 책임을 다 할 것을 결의한다. 이와 같이 '행동'하고 '대안'을 뜨겁게 고민하며 논의를 이어가는 곳은 COP25 총회장이 아니라, 총회장 밖의 시민사회 조직들이다.
7일에 열린 세션에서 핵발전소는 기후변화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내용으로 탈핵 단체(Don‘t nuke the climate)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탄소 배출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핵발전소의 진실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우라늄 채굴과 발전소까지의 이동 과정 등에서 배출되는 탄소 배출 문제, 그리고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문제를 짚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를 예로 들어 핵발전소는 위험할 뿐 아니라, 발전 비용 이외에도 계산 불가능한 핵폐기물 처리 비용을 고려하면 비싼 발전이며, 기후위기에 있어 화력발전소를 대체할 에너지원이 아님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ITUC(국제노총)은 노동자총동맹(UGT) 지부에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일, TUED(에너지민주주의 노동조합)이 주최한 '에너지의 공적 소유 라운드 테이블'에서 숀 스위니는 기후위기 시대에 정의로운 전환을 통해 녹색일자리와 그린뉴딜, 에너지 공유화가 어떻게 노동운동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쟁점들을 발표했다. 그리고 각국 노동조합에서 참가한 토론자들과 '계획적 전환(Programmatic Shift)'을 실현할 전략을 구상했다.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2℃로 막고, 나아가 1.5℃ 이내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맞춰 유엔 기후변화기본협약 당사국들은 2030년까지 이행할 자발적인 감축목표(NDC)와 2050년까지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을 제출해야 한다. 한국도 2015년에 제출한 감축목표를 보완하여 내년 COP26에 제출해야 하지만, 이전에 제출했던 목표를 바꿀 계획은 없어 보인다.
지난 COP24는 IPCC의 1.5℃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고 일부 국가들만 1.5℃를 목표로 관련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기후비상행진 참가자들은 1.5℃ 말고는 다른 대안은 없다며 지금 당장 목표를 올릴 것을 요구했다. 미국에서 칠레로 향하다가 마드리드에 도착한 그레타 툰베리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무시하고 있다"며 "권력자들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행동하는 우리가 희망"이라고 외쳤다. COP25는 국가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협상하고 결정하는 국제회의지만, 현 시점에서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온전히 실현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COP25 2주차부터 공식적인 정치협상과 고위급 회의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대규모 집회에서 표출된 민중의 목소리가 부디 닿길 기대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마지막 희망을 이어갈 수 있는 COP25가 되길 바란다. COP25 협상단은 들어라. 희망은 거리에 나선 우리이고, COP은 희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끝으로 노래를 불러본다. 'Y ahora el pueblo que se alza en la lucha con voz de gigante gritando: ¡adelante!(이제 민중이 일어나 투쟁에 나서 만 천하를 진동하는 함성으로 외치자,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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