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과 정부가 1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안하기로 최종방침을 확정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다수 국민이 분양원가 공개를 촉구해왔던 만큼 국민들이 느끼는 분노는 대단하다. 한 예로 KBS 1라디오가 지난달 20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20세 이상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대다수인 86.9%(매우 44.3%, 찬성하는 편 42.6%)가 분양원가 공개에 찬성한다고 밝혔고 "반대한다"(반대하는 편: 8.7%, 매우: 2.1%)는 의견은 10.8%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은 불과 달포 전에 했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약속을 헌신짝처럼 집어던졌다. 우리당이 불과 한달반 사이에 분양원가 공개시 발생할 '말못할 중대비밀'을 알게 됐기 때문인가. 아니면 시쳇말로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생각이 다르기 때문인가.
***열린우리당이 공약 포기 속내라고 밝힌 3가지 이유**
열린우리당은 공약 포기 속사정을 여러 언론을 통해 말하고 있다.
우리당 목소리를 가장 충실히(?) 대변한 <서울신문> 2일자 2면의 '공개포기 속사정'이란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소개돼 있다.
"열린우리당은 당초 주공아파트를 중심으로 분양원가를 공개하려 했다. 그러나 공개시 분양금 반환소송 제기에다 주택공급 포기상태 등이 우려된다는 지적을 정부와 건설업계로부터 줄기차게 들어왔다. 건설업체들은 또 수도권에서 이윤을 남겨 부산-광주 등 지방 분양시장에서 보는 적자를 보전하는 실정이다. 특히 지방은 미분양 물량이 많아 건설업체마다 적자가 심각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노영민의원도 '원가공개가 이뤄지면 경영혁신으로 분양원가를 최대한 낮춘 업체가 오히려 소비자들로부터 폭리를 취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경영혁신 등으로 평당 분양원가를 낮춘 A업체와, 아무런 경영혁신 노력없이 분양가와 비슷한 수준에서 분양원가를 공개한 B업체가 있다고 가정할 경우, 분양원가 공개로 A업체보다 오히려 B회사가 시장에서 살아남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단 열린우리당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공약포기 사유다.
***첫번째 주장의 허구: "반환소송이 우려된다"?**
이같은 우리당 주장이 얼마나 허구투성이인지를 하나씩 조목조목 살펴보도록 하자.
첫번째, "분양원가 공개시 분양금 반환소송이 우려된다"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우리당 관계자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울도시개발공사에서 지은 상암동 주공아파트의 경우 40평형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를 1천만원으로 책정했는데 나중에 평당 6백만원인 것으로 나오자 입주민들이 개발이익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하려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환소송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 우려돼 분양원가 공개를 안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폭리'에 대한 소비자의 소송 제기 등 권리찾기는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것도 한두푼이 아니고 집 한채당 최소한 1억~2억씩의 억울한 손해를 입은 가난한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더욱이 '폭리'를 취한 건설사들이 세금을 제대로라도 냈나. 아파트투기가 전국을 강타한 2002년과 2003년 재벌그룹사 소속 대형건설사들이 신고한 연간 수익은 한 회사당 많아야 2천억원 전후다. 아파트 서너동만 건설해도 실제로는 1천억원이상을 벌어들이면서 말이다. 이처럼 초거대 수익을 챙기면서도 쥐꼬리만큼 수익을 신고할 때 과연 국세청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처럼 정부가 건설사들의 폭리를 눈감아주고 있는 한, 소비자들의 '반환소송'은 정당한 권리이자 저항이다.
또한 우리당 입장에서는 이같은 반환소송을 문제삼기 이전에, 엄청난 폭리를 취한 건설사들이 제대로 세무신고를 하고 세금을 냈는지 아니면 '천문학적 탈세'를 했는지를 '조세정의' 확립 차원에서라도 엄중조사해야 마땅하나, 우리당은 지금 엉뚱한 '사회적 혼란' 타령만 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주장의 허구: "분양원가 공개하면 지방이 망한다"?**
두번째, 우리당은 "건설업체들은 또 수도권에서 이윤을 남겨 부산-광주 등 지방 분양시장에서 보는 적자를 보전하는 실정"이라며, 따라서 분양원가를 공개해 마진이 줄어들면 건설사들이 지방에 아파트를 짓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지방에서 과잉공급된 일부 아파트의 경우 미분양물량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분양 출현은 최근 일이다. 지난 2년여간 서울등 수도권뿐 아니라, 부산-광주-대구-대전에서도 분양가가 2~3배 뛸 정도로 아파트투기 열풍은 대단했고 건설사들은 이 과정에 예외없이 지방 분양사업에서도 거대한 수익을 올렸음은, 경실련 등 여러 시민단체의 조사결과 이미 밝혀진 객관적 진실이다.
또한 최근 나타난 미분양 사태의 근원도 다름아닌 '살인적 분양가' 때문임을 우리당은 애써 모른 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분양가에서 '폭리'라는 거품만 제대로 빼봐라. 지금 전세를 살고 있는 '실수요자'들이 앞다퉈 내집 장만에 나서면서 미분양 물량은 순식간에 해소될 것이다.
시장의 수요-공급법칙을 파괴한 '폭리'라는 걸림돌을 제거하려 하기는커녕 도리어 마치 지방을 엄청 생각하는듯 생색을 내면서 업계의 폭리-착취 구조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 주장의 허구: "분양원가 공개하면 우량기업이 망한다"?**
세번째, 우리당은 "원가공개가 이뤄지면 경영혁신으로 분양원가를 최대한 낮춘 업체가 오히려 소비자들로부터 폭리를 취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을 더없이 우습게 보는 발상이 짙게 깔린 궤변이다. 국민들은 지금 한푼이라도 아껴 어려운 경제난국에서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다. 자동차보험료만 해도 온라인으로 가입, 연간 수십만원씩을 아끼는 판이다.
그런데 분양원가 공개시 경영혁신으로 분양원가를 낮춰 동일한 품질의 아파트를 보다 낮은 값에 공급하는 우량업체를 '폭리집단'이라고 망하게 할 넋나간 소비자가 어디 있겠는가.
***네번째 '진짜 이유': "분양원가 공개하면 일본처럼 경제가 절단난다"?**
앞의 세가지 이유는 우리당이 대외적으로 말하는 '분양원가 공개 포기' 이유다. 그러나 우리당 의원들을 만나보면 말못할 속내중 하나는 '일본형 공황 도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요지인즉 "가뜩이나 내수경기 침체로 경제가 위태로운 판에 분양원가를 공개해 아파트값이 뚝 떨어지면 아파트 담보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이 부실화되면서 제2의 IMF사태가 닥칠 것이다. 그러면 90년대초 부동산거품이 파열하면서 10여년간 장기불황에 빠졌던 일본 짝이 날 것이다"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런 주장은 재정경제부 등 정부부처가 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렇다. 지금 3년간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가 택한 '부동산거품'을 통한 경기부양 정책의 폐단은 제2의 IMF사태 도래를 우려할 정도로 부동산거품을 '말기암' 상태로까지 증폭시켰고, 자칫 이를 잘못 다루면 심각한 상황이 우려되는 게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라. 터질 거품은 아무리 막아도 터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무방비상태로 있다가 거품파열을 맞아 일본같은 전철을 밟느냐, 아니면 단기적인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라도 계획적으로 거품을 거둬내면서 '건실한 경제체질'로 전환할 것인가이다.
현재 한국경제의 가장 심각한 '병명'은 '양극화'이다. 돈이 한쪽으로 쏠린 까닭에 내수기반이 붕괴되고 있는 현상이다. 이같은 양극화의 가장 큰 원인이 다름아닌 '투기 부양책'이었다.
IMF사태로 30% 고금리 시대가 오자 현금보유자들은 가만히 앉아 떼돈을 벌 수 있었다. 고금리 시절이 가자, 이번에는 주가가 폭등했다. 이때도 현금보유자들은 또한차례 떼돈을 긁을 수 있었다. 주식거품이 꺼지자 이번에는 신용카드 남발 정책과 아파트투기 방임 정책이 또한차례 있는자와 없는자를 양극화했다.
그 결과 거대한 부를 웅켜쥔 극소수는 아쉬운 게 없는 반면에, 다수 국민은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뿐 아니라 앞으로 제집 장만조차 포기해야 할만큼 절대적 절망감에 빠져들고 경제는 회생불능의 위기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KBS라디오 여론조사에서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라"고 답한 86.9%의 국민은 바로 이같은 양극화에 분노하고, 양극화의 해소를 적극 요구하고 있는 '피해국민'인 것이다.
분양원가 공개를 통한 거품 제거는 다름아닌 이들 피해국민을 '경제주체'로 복원시키는 지름길이다. 이들 국민이 더이상 몇몇 건설사, 그리고 여기에 기생하는 권력들과, 6백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부동자금을 굴리고 있는 투기세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분양원가는 공개돼야 한다.
이들 대다수 국민이 평생 쓰지 않고 모아도 제집 한칸 마련 못하게끔 하는 '구매력 멸종 경제'가 아닌, 이들이 제집 마련을 위해선 소득의 일부만 저축하고 나머지는 여유롭게 소비할 수 있도록 경제체질을 바꿔야만 비로소 한국경제의 탈출구도 보일 것이다.
***로마의 교훈**
지난 1996년 몇몇 기자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갔을 때 일이다. 당시 로마 주한대사의 초청으로 저녁식사를 하던 중에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1만달러를 넘어서며 OECD에 가입한 사실이 화두에 올랐다. 기자중 한명이 당시 이탈리아 1인당 GDP가 우리보다 몇천달러밖에 안되는 점을 들어 '곧 우리국민들도 이탈리아 국민처럼 여유있게 살 수 있지 않겠냐'고 묻자 주한대사의 답인즉 "턱도 없는 소리"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국민의 경우는 소득의 10%만 집값 마련에 투자하고 90%를 소비하는 반면, 한국은 소득의 90%를 집 장만에 투자하고 나머지 10%만 쓰기 때문"이라며 "한국에서 부동산투기를 잡지 못하는 한, 일본처럼 '국가는 부유하되 국민은 가난한 나라'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지적은 당시보다 한층 부동산투기가 한국경제를 골병들 게 만든 지금도 더없이 유효한 한국경제 진단이자, 한국경제의 활로 제시다. 소비자의 구매력을 북돋는 것보다 훌륭한 소비타개책-불황돌파책은 어느 경제교과서에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당,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
연전에 만난 홍세화 한겨레신문 편집위원이 한 말 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 명구가 하나 있다. "존재를 배신하는 의식"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노동자임에도 자신이 중산층이나 자본가인양 착각에 빠지는 '허위의식'을 지칭하며 한 말이다.
마찬가지 논법이 지금 우리당에게 적용가능해 보인다. 우리당을 16년만에 과반수이상 거대정당으로 찍어준 자신의 지지기반, 즉 '존재'를 지금 최소한 우리당 지도부는 '배신'했기 때문이다.
강남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조차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주장하고 있다. 정략적 측면을 완전배제할 수는 없으나, 더이상 아파트투기를 방치했다간 한국경제가 금명간 절단날 것이라는 사회공감대의 수용이자 표현으로 해석가능하다.
열린우리당의 맹성과 추후대응을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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