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 멕시코에서 열린 지구환경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한 파울 크루첸은 우리가 이제 '홀로세'가 아닌 '인류세'에 살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인류세(Anthropocene)란 인류를 뜻하는 'anthropos'와 시대를 뜻하는 'cene'의 합성어로서, 인류로 인해 빚어진 지질시대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다.(1)
이러한 인류세의 특징은 질소의 과다한 사용과 플라스틱 쓰레기의 남용, 화석연료의 문제점 등 지구를 위협하는 다양한 원인들과 생물상의 급격한 변화와 관련이 되어 있다. 문제는 인류세의 동력은 인간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며, 그 동력이 다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다.
물론 이러한 이론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지만, 환경보전의 심각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9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스웨덴 출신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무너지는 생태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세계 지도자들의 책임을 추궁하며 미래세대의 빼앗긴 꿈에 대해 호소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주장은 소위 '그린뉴딜'인데, 한편으로는 예전에 주장되었던 내용들과 결을 같이 하면서도 다른 내용과 심각성을 담고 있다. 그린 뉴딜은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고용보장 및 소득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포괄적 개혁 정책으로 미국의 경우 '그린뉴딜'은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주요 공약으로 부상할 만큼 해외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정치적 화두로 떠올랐다.
이는 국가 주도의 대규모 경기 부양 정책인 '뉴딜 정책'과 녹색 산업을 의미하는 '그린'을 합친 용어며, 기후위기 및 환경문제에 대응하고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와 관련 이명박 정부 시절, 소위 '녹색뉴딜'이라고 칭하며, 관련 내용이 강조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만들고 녹색성장위원회를 구성했지만, 4대강 사업과 원전확대에 중점을 둔 녹색성장 정책이으로 이어져 온실가스 저감과 경제활성화를 이끄는 데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근본적으로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걸었다는 점에서 녹색성장과 그린뉴딜의 기본적인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당시의 초점은 '성장'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 사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세부 정책을 설계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그린뉴딜은 사회 시스템의 대대적인 전환을 위한 대규모 집중 투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선 대책들이 실패한 까닭은 한 부분의 변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은 데 있다. 그린뉴딜은 경제와 산업정책이자 에너지 정책이고 사회 정책이며, 전면적 개혁을 계획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저명한 학자 존 번 교수는 이러한 정책이 도시정책에서도 매우 중요하며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도시의 발전방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목표,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논의에 따라 탄소배출 제로, 새로운 시대에 맞춘 산업정책과 라이프사이클의 고려, 내연기관의 대체, 탄소세 도입 등을 통해 장기적인 산업경쟁력의 증가에도 중요한 의미를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2)
실제적으로 미국에서는 최근 알렉산드리아 코르테즈라는 하원의원이 그린 뉴딜 관련 70% 부유세를 강조하여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연소득이 1000만 달러(112억 원) 이상일 경우 부유세를 최대 70%까지 내도록 해 이 돈으로 10년 내 전력수요 100%를 자연에너지로 충당하는 '그린 뉴딜정책'을 실행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3)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뉴딜 결의안을 '사회주의'라고 비난한 가운데 실현 가능성과 재원확보 방안을 중심으로 논쟁이 가열되고 있고 향후 기후재난이 심해질수록 그린뉴딜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9월 정의당에서 '그린뉴딜경제위원회(그린뉴딜위원회)'를 발족했으나, 아직 패러다임의 전환과 심각성에 대해 받아들이는 정도는 편차가 있는 듯하다. 뉴딜에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뉴딜의 대규모 사업화를 강조하거나, 서울시 뉴딜정책의 경우 일자리 창출사업의 특성이 더 강한 것이 현실이다.
경제지리학의 관점에서 그린뉴딜정책이 갖는 의미가 큰 것은 이러한 정책이 환경정책으로서뿐 아니라 산업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실제 산업부에서도 이러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2030 온실가스 감축대책과 함께 제조업르네상스 비전에 이러한 내용을 받아 스마트화와 함께 환경화와 미래차 산업 등에 정책방향을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위협의 수준이 다른 작금에서는 비상행동체계 마련을 위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됨에 강도와 논의의 깊이가 달라야 할 것이다. 급진적인 일부 학자들은 '석탄 제로', 내연기관 자동차의 반대도 이야기하고 있다.
산업정책을 중심으로 몇 가지 고민이 실제적인 관점에서 심도깊게 이루어져야만 할 것으로 본다. 첫째, 기후변화 대응에 대해 지리적 현상에 보다 민감해야 할 것이다. '그린'과 '뉴딜'의 바람직한 조합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예전의 고민과는 강도가 달라야 한다. 인류멸종의 문제와 닿아있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까지의 정부사업과 유사하게 대규모 재정투입보다는 실제적인 시민행동 등과 연계할 필요성이 크다.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 등 산업의 중요성을 여전히 강조하는 한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등 캠페인이 실효가 있으려면 인류세 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셋째, 환경부가 아닌 산업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를 고민해본다면 보다 구체적인 추진전략이 정부 아젠다로 규정화될 필요가 크다. 예를 들어 친환경적 산업구조 전환 과정에서 기존 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 및 관련 대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포용과 사회적 합의의 문제이다.
넷째, 이명박 정부의 녹색뉴딜 정책 등을 반면교사로 삼아 삶의 질과 환경개선에 최우선적인 목표를 두어야 한다. 이러한 실현을 위해서는 거버넌스의 확대가 필수적이며 다수 이해관계자를 주권자로 참여시키며 보편적 혜택을 제공해야 사회개혁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린뉴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적으로 행해야 하는 당위성의 문제로 다가와 있다. 단순히 환경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것만이 아니고 산업·경제적 이익, 미세먼지와 같이 국민의 삶의 질에 관련된 주제이다. 모두가 공감하고 대처하는 노력이 심각하게 고민되어야 할 시점이다.
■ 필자 주석
1. "'홀로세' 가고 '인류세' 올까", <사이언스타임스>, 2019. 5. 27.
2. 국토연구원 그린뉴딜 정책 세미나 (2019. 7. 9.)
3. "바텐더 출신 29세 최연소 의원, 워싱턴의 '핵인싸'", <중앙일보>, 2019.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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