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구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23일, 한국의 대학생·청년 단체들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며 중국 당국의 폭력적인 진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인권탄압 중단 △5대 요구 수용 △타국 시민들의 자발적 연대 탄압 중단 등을 요구했다.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 공동행동 등 16개 청년·대학생 단체(이하 연대체)는 23일 서울 중구 금세기빌딩 앞에서 '홍콩의 민주주의를 위한 대학생·청년 긴급행동'을 열었다.
200여 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홍콩 시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홍콩 시민들에게 연대하는 의미로 검은 옷과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했다. 헬멧과 고글을 쓴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한국 학생들과 홍콩 출신 유학생 뿐 아니라 한국 내 다른 외국인들은 물론,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중국 유학생의 연대 메시지도 있었다. 메시지는 "홍콩 시민들이 외치는 자유와 민주는 중국의 미래가 될 것"이라며 "홍콩은 우리의 모범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대체는 "중국 공산당이 홍콩 시위를 폭력 진압하도록 지시하고 정보를 통제해 자신들의 만행을 은폐하고 있다"며 "시민들은 '자살하지 않겠다'는 유서를 쓰고 시위에 참가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홍콩의 끔찍한 상황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데도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권력자들은 중국의 영향력을 두려워하며 홍콩의 참상을 외면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1980년 5월 광주와 1987년 6월 대한민국이 군사독재의 총구에 맞섰듯 홍콩 시위대는 폭력과 부당함에 맞서 자유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서 "한국 학생들은 광주와 6월 항쟁 정신을 계승해 홍콩 시위대와 연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도형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공동대표는 "한국 시민들은 홍콩과 더 폭넓게 연대해야 한다"며 "중국 정부는 내정간섭이라 비난하지만, 자유를 호소하는 시민의 편에 서는 것은 내정간섭이 아니며, 인권에는 국경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대학가 에서는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붙자 중국인 유학생들의 항의로 대자보가 훼손되는 등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고려대와 한양대는 중국인 유학생과 한국인 학생들 간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주한 중국대사관 측에서 "중국 유학생들의 정당한 항의"라는 취지의 입장문을 발표하며 "한국 학생들이 중국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밝혀 논란을 낳았다.
연대체는"fight for freedom, stand with Hongkong", "홍콩시위 지지한다, 국가폭력 중단하라", "총알은 신념을 뚫지 못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청 인근부터 중국 대사관이 있는 명동까지 약 2km를 행진했다.
이날 시위는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서울대학교 인문대 학생회, 2019 서울대학교 단과대학생회장 연석회의, 다이얼로그 차이나 한국대표부, 대학·청년 성소수자모임연대 QUV, 관악 사회대 학생회,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 공동행동,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서울대 녹색당, 정의당 서울대 학생위원회, 정의당 서울시당 학생위원회, 정의당 청년당원모임 모멘텀, 디어스누, 한국외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민 모임, DGIST 융복합대학 총학생회 등이 참여했다.
홍콩시위 주요 일지
홍콩 시위는 격화를 거듭하고 있다. 경찰은 시위의 주요 거점 중 하나인 홍콩이공대학교에 진입해 수백 명을 연행하기도 했다. 현재도 대학을 둘러싸고 시위대와 대치 중에 있다. 학생들은 '나는 자살하지 않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시위에 참가하는 상황이다. 경찰이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실종사건과 시신이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시위대는 주장한다.
홍콩 시위는 지난 6월, 범죄인 송환법으로 촉발됐다. 범죄인 송환법은 중국 본토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홍콩으로 도피한 범죄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법이다. 악용될 여지가 충분했다. 홍콩이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의 도피처인 성격이 있는 점도 작용했다. 홍콩 자체도 중국이 약속한 일국양제가 충분히 지켜지지 않아 불만이 큰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 범죄인 송환법은 홍콩에 대한 중국의 통제를 강화시키는 제도로 작용할 것이라는게 홍콩 시민들의 우려였다.
홍콩 시위는 고 량무 씨가 추락사 하면서 크게 확산됐다. 이는 7월 초 시위대의 입법회 점거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캐리 람 행정장관은 송환법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시위자의 자살이 이어지고 학생들 위주로 이뤄지던 시위는 중장년 층의 참여로 확대됐다. 캐리 람 장관은 그제서야 추진 중지를 발표했지만 시위대는 '완전 철회'를 요구하며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7월 말 흰 티셔츠를 입고 손목에 빨간 줄을 걸고 있어 삼합회 배경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 의한 '백색테러'가 일어났다.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하철 역에서 흉기를 들고 무차별적으로 행인과 승객을 습격했지만 경찰은 이를 방관했다.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은 점점 격화됐다.
8월 초 쯤 레이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경찰의 채증을 방해하기 위한 레이저였다. 홍콩 7구역에서는 3파 운동이라 불리는 파공(파업), 파학(동맹 휴학), 파매(불매 운동)가 이어졌다. 시위대 측 주장에 따르면 경찰은 하루에만 800탄이 넘는 최루탄을 발사하는 등 강경진압을 이어갔다. 홍콩 침례대 학생회장이 레이저펜을 구입했다 체포된 사건이 일어나자, 시위대는 홍콩 우주박물관에서 레이저 시위를 열고 방 회장을 응원했다.
8월부터 홍콩에서는 익사체 많이 발견됐다. 시위대는 지난 10년 간 발견된 수보다 많다며 경찰 연루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8월 11일, 경찰의 발사한 빈백탄에 한 여성이 안구를 맞아 영구 실명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다음주 시위대 규모는 170만 명으로 늘어났다. '5대 요구'(△범죄인 인도법 완전 철회, △시위대 폭도 지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 조건없는 전면 석방,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및 입법회 보통·평등선거 실시)가 등장했다. 그리고 2주 뒤 8월 25일 경찰은 처음으로 물대포를 발사하고 또 처음으로 실탄을 발사했다. 실탄 발사는 당국에 의해 사후 승인됐다.
경찰의 진압 강도는 점점 세졌다. '831 지하철 사건'도 그런 흐름 속에 발생한다. 100여 명의 경찰특수부대가 지하철에 진입해 시위대와 시민을 가릴 것 없이 곤봉과 후추스프레이 등으로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2시간 동안 지하철은 폐쇄됐다. 기자는 물론 의료인도 출입이 금지됐다. 지하철 CCTV는 아직도 공개되고 있지 않다고 시위대는 주장하고 있다.
9월 들어 홍콩 시위에 대한 국제 연대의 움직임이 활발히 시작됐다. 지난 달 실명된 시위자에 연대하는 의미로 한쪽 눈을 가린 사진을 #eyeforHK와 함께 업로드하는 소셜미디어상의 연대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의 배우 김의성 씨는 홍콩에 직접 가 시위에 참여했다. 9월 말에는 '세계 반전체주의 행진'이 시작되며 전세계 24개국65개 도시의 시민들이 홍콩 시위에 지지를 보냈다.
10월 1일 중국 건국기념일에 들어 홍콩 당국의 시위 진압은 더욱 거세졌다. 시위를 불허한 데 이어 경찰은 이에 항의하는 중학생의 가슴에 실탄을 발사했다. 시위대 측은 이날 1400발이상의 최루탄이 발사됐다고 밝혔다. 실탄도 6발이 발사됐고 그중 2발이 시민에게 명중했다.
복면금지법이 발표된 것도 이 시기였다. 더불어 시위대와 친중파 시민 간 갈등도 격화됐다. 민간인권전선의 소집권자 지미 샴이 두 번째 피습을 당했고 19세 남학생이 중국인 남성에게 피습 당했다.
그리고 11월, 홍콩 과기대생 차우츠록 씨가 사망했다. 경찰의 최루탄을 피해 도망가다 빌딩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경찰의 직접적인 행동으로 인한 첫 사망자였다. 시위대는 구조과정에서도 경찰의 방해를 받아 구조가 지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의 진압은 시위대와 시위대가 아닌 일반 시민을 구별하지 않게 됐다. 육교에 있는 시민을 총으로 겨누는 모습이 공개돼 파장이 일었다. 어린아이도 폭도로 간주하는 듯한 발언이 나오는가 하면 시위대에 근거리에서 실탄을 발사해 복부를 명중하기도 했다. 홍콩 중문대에 진입해 최루탄을 발사했고 24일 현재까지 홍콩이공대를 봉쇄하고 있다.
한편 24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홍콩의 구의원 선거는 향후 홍콩 시위의 큰 분수령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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