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교육받은 청년들이 경제적 전망을 갖기 어렵다. 둘째, 교육받은 청년들이 20년 안에 도입될 중국식 체제에 대해 걱정을 한다. 셋째, 이러한 문제들을 영국 식민지 체제에 뿌리를 둔 재벌과 관료의 지배 연합이 능숙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친분이 있는 싱가포르 노조 간부는 홍콩 사태를 가장 심각하게 바라보는 나라가 싱가포르라고 말했다. 그 역시 홍콩 사태를 이해하려면 홍콩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주목해야 한다면서, 특히 주택 문제와 노동 문제를 관심 있게 보라고 조언했다.
홍콩은 국가가 아니라 '특별행정구'인데 반해 싱가포르는 국가라는 차이가 있지만,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깊숙이 편입된 '도시 경제'라는 점에서 홍콩과 싱가포르를 둘러싼 환경과 부딪히는 도전이 같기 때문이다.
집값, 종이 한 장 크기가 200만 원 넘어
미국의 부동산업체 CBRE의 자료를 분석한 언론 기사에 따르면, 홍콩의 주택 시장은 비싸기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홍콩 부동산의 평균 가격(average property price)이 960만 홍콩 달러로 우리 돈 14억 원이 넘는다.(☞ 관련 기사 : <이지앤사이트(ejindight)> 4월 12일 자 'HK remains world’s most expensive housing market, by wide margin')
홍콩 다음으로 비싼 나라인 싱가포르의 부동산 평균 가격이 10억 원 정도다. 7위 뉴욕과 8위 런던은 7억9000만 원 안팎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홍콩에서 주택 면적 1제곱피트의 가격이 245만 원에 달한다는 점이다. 1평방 피트는 A4 용지보다 조금 큰 면적이다.
홍콩의 월세는 연평균 8퍼센트씩 상승하면서 집을 소유한 소수 부유층과 그렇지 못한 대다수 시민들의 소득 격차를 날로 악화시키고 있다. 부모를 잘 만난 경우가 아니라면 홍콩의 청년들이 자기 집을 소유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영국과 중국의 공존: 광동어를 통해 홍콩의 문화를 읽다>(조은정 지음, 푸른길 펴냄)에 따르면, "홍콩 가구의 65% 이상이 2.1평에서 4평 정도 되는 매우 작고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만약 4인 가구가 4평짜리 집에서 살고 있다면, 1인당 거주 공간은 1평이 되는 것이다". 2017년 현재 홍콩에는 253만 가구 739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천국
지난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9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자본가들이 누리는 자유와 비교하여 홍콩의 노동자들이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141개 경제권을 분석한 WEF 보고서는 홍콩의 글로벌 경쟁력이 싱가포르와 미국에 이어 세계 3위라고 평가했다(한국은 13위). 노동자와 직결된 사안을 평가한 '노동시장' 분야에서 홍콩의 경쟁력은 7위였다(한국은 51위).
홍콩은 '채용과 해고 관행'에서 경쟁력 1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노동자를 채용하고 해고하는 권한을 행사할 때 홍콩의 '경영진(executive)'이 느끼는 자유의 정도가 세계 최고라는 말이다. 이를 노동자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자신의 채용과 해고에서 노동자가 낼 수 있는 목소리는 세계 최악의 수준이라는 말이다.
이 지표에서 한국은 102위, 스웨덴은 98위, 핀란드는 97위, 일본은 104위였다. 이들 나라에서는 경영진들(자본가로 읽자)은 채용과 해고와 관련된 권한을 행사할 자유가 그리 크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또한 '임금 결정의 유연성'에서도 홍콩의 경쟁력 순위는 에스토니아 다음으로 세계 2위였다. 이는 임금을 결정할 때 자본가가 느끼는 권력의 세기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말이다. 이를 노동자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일하는 대가로 받는 임금을 결정할 때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거의 낼 수 없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임금 결정의 유연성' 지표에서 한국은 84위, 독일은 102위, 네덜란드 128위, 스웨덴은 133위, 핀란드는 139위였다. 이들 나라에서는 고용 문제와 마찬가지로 임금 결정과 관련된 권한 행사에서 자본가들이 느끼는 자유의 정도가 크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노사 협력'의 수준에 대한 '경영진'들의 주관적 만족도에서 홍콩(9위)과 한국(130위)의 격차가 엄청난 데 반해, 국제노총(ITUC)의 객관적 조사를 토대로 평가된 '노동자 권리'에서 홍콩(116위)과 한국(93위)의 격차는 크지 않다는 점이다.
홍콩의 경우 노동자의 권리는 형편없고 노동자의 목소리는 억압받고 있는데 반해, 자본가가 행사하는 권력의 정도와 그들의 만족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여 WEF 보고서는 홍콩을 글로벌 경쟁력 세계 3위로 평가한 것이다. 홍콩이 '자본가의 천국'이란 표현은 이러한 사정의 계급적 해석이다.
"'홍콩 사태', 싱가포르에서 일어날 수 있다"
리셴룽 싱가포르 수상은 지난주 싱가포르 노총(NTUC) 대의원대회 연설을 통해 "홍콩은 싱가포르와 다르지만, 싱가포르는 홍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한다"면서 홍콩에서 발생한 사회적 분노와 사회적 분단(social divide)이 싱가포르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콩 이상으로 글로벌 경제에 더 많이 노출되고 외부 충격에 더욱 취약한 싱가포르가 적절한 대응에 실패한다면, 싱가포르를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싱가포르의 미래는 없을 것이며 싱가포르에 대한 신뢰는 훼손되고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콩 사태와 같은 문제를 억제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집권 인민행동당(PAP)과 싱가포르 노총 사이의 연대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홍콩과 광주의 차이점
미국 국기를 흔드는 홍콩의 일부 시위대가 바라는 대로 미국식 정치 체제가 홍콩에 이식된다면 현재의 '일국양제'보다 더 나은 사회 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미국의 지배 엘리트가 원하는 대로 서구식 자유 민주주의가 홍콩에 이식된다면 중국식 정치체제가 도입되는 것과 비교하여 더 나은 경제 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글로벌 학계에서는 워싱턴의 자유 민주주의가 베이징의 집단 지도 체제보다 정치적으로 더 경쟁력이 있다는 신념에 균열이 생긴 지 오래다. 사회 통합과 경제 안정에서 미국식 시스템은 경쟁력을 상실했고 이제 유럽식 시스템조차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의 대다수 언론은 홍콩 사태와 광주 항쟁을 동일시하는 분석을 내놓고 있는데, 홍콩과 광주는 여러 지점에서 동일하지 않다.
광주에서는 경찰에 의한 진압을 넘어 군대에 의한 무차별 학살이 벌어졌다. 광주에서는 시위대에 의한 공공 시설 파괴 행위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홍콩에서는 군대가 진압 작전에 나서지 않고 있다. 홍콩에서는 시위대에 의한 공공시설 파괴(vandalism)가 일어나고 있다.
홍콩과 광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미국과 일본 우익 세력의 태도다. 두 나라의 우익들은 역사적으로 광주의 시위대를 비난하고 광주 민중에 대한 국가 권력의 폭력적 진압을 지지했다.
하지만 홍콩 사태와 관련해서 이들은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을 비난하고 시위대의 파괴 행위를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이들이 내심 원하는 바는 홍콩의 민주주의나 시민들의 인권이 아니라 중국에 대한 타격이다.
'우산 혁명'의 미래
홍콩 사태는 정치적 자유와 더불어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민주화(pro-democracy) 운동으로 발전해 가느냐, 아니면 미국식 정치 체제의 이식을 목표로 하는 친미(pro-America) 운동으로 나아 가느냐의 분기점에 서 있다. 후자의 성격이 커질수록 홍콩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증진은 그만큼 요원해질 것이다.
홍콩을 둘러싼 안팎의 정세를 고려할 때 '우산 혁명'의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정치적 갈등 이면에 숨어 있는 사회적 분단과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특히 주택 문제로 대표되는 열악한 생존 환경을 개선할 대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교육받은 청년층"이 주도하는 '혁명' 시도는 되풀이될 것이다.
"홍콩의 고급 주택 가격은 평당 우리 돈 1억6000만 원에 달한다. 10억 원으로 겨우 6평이 조금 넘는 집을 살 수 있는 것이다. (...) 홍콩 중산층 아파트의 가격은 평당 우리 돈 1억 원에 육박한다. (...) 홍콩 사람 1인의 평균 거주 공간은 1.4평으로, 이는 차 한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의 반 정도 크기에 해당한다."(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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