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대표는 이날 오후 3시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철회,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 이 세 가지를 요구한다"면서 "대통령께서 결단을 내려주실 것을 저는 단식으로 촉구한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자신의 단식 이유에 대해 "지소미아는 대한민국 안보에 있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일본과의 경제 갈등을 지소미아 폐기라는 안보 갈등으로 뒤바꾼 문 대통령은 이제 미국까지 가세한 더 큰 안보전쟁, 더 큰 경제전쟁의 불구덩이로 대한민국을 밀어넣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패스트트랙 법안인 공수처법에 대해 "(문재인 정권이) 행정부를 장악했고, 사법부를 장악했고, 이제 남은 마지막 퍼즐이 바로 공수처"라며 "문재인 정권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 자기 직을 걸고라도 대한민국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탈탈 털어 결국 감옥에 넣겠다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좌파 독재법'"이라고 주장했다.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은 국민의 표를 도둑질해서 문재인 시대, 혹은 문재인 시대보다 더 못한 시대를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의 이합집산법"이라며 "정권과 그에 야합한 세력들의 연합으로 국회를 장악하고, 개헌선까지 넘어서는 것을 어떻게 양심을 가진 정치인으로서 두고볼 수가 있겠느냐. 그래서 저는 목숨을 걸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 쇄신과 보수 통합에 대한 언급도 있었으나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황 대표는 "단식을 시작하며 저를 내려놓는다. 모든 것을 비우겠다"며 "국민의 명령인 한국당의 혁신, 반드시 이루어내겠다"고 했다. "혁신이 멈추는 순간 당의 운명도 멈춘다는 각오로 뼈를 깎는 혁신에 임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 '혁신' 방안에 대해서는 "당을 쇄신하라는 국민의 지엄한 명령을 받들기 위해 저에게 부여된 칼을 들겠다. 국민의 눈높이 이상으로 처절하게 혁신하겠다"고 한 것이 전부였다.
보수 통합에 대해서는 "자유와 민주를 사랑하는 모든 시민들께 호소한다. 문재인 정권의 망국 정치를 분쇄하려면 반드시 대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대통합 외에는 어떤 대안도, 어떤 우회로도 없다. 자유 민주 세력의 대승적 승리를 위해 각자의 소아(小我)를 버릴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고 원칙을 재강조했다.
황 대표는 호소문 발표 후 그 자리에 잠깐 앉아 농성하는 자세를 취한 뒤 국회로 이동했다. 박맹우 당 사무총장은 "당초 분수대 앞에서 (농성장을 차릴) 계획을 했는데 규정상 안 되고 법을 어길 수는 없지 않느냐"며 "시작은 여기에서 하고 부득이 단식 장소는 국회로 옮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대표의 단식투쟁 및 대국민 호소문 발표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떠나 대상도 부적절하고 명분도 빈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패스트트랙 법안은 국회 내에서 정당 간에 협상을 할 문제인데 왜 청와대 앞에 가서 대통령에게 "결단을 촉구"하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이 있다.
무엇보다 이날부터 오는 24일까지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들이 동반 방미길에 오른 만큼, 그 기회에 자연스럽게 패스트트랙 법안 등에 대한 논의를 주고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황 대표가 단식을 시작하면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여당이나 다른 야당 원내대표와 협상을 할 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당 대표가 단식농성을 하는 마당에, 원내대표가 그 문제로 협상에 임하기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보수진영 내에서도 황 대표의 단식을 냉랭하게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이날 보수단체 주최 세미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야당을 얕잡아보고 있는데 단식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인가"라며 "문 대통령은 코웃음을 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세미나에 참석한 전여옥 전 의원도 "왜 머리를 삭발하고 단식을 하는가. 제1야당 대표가 그렇게 힘없는 존재냐"며 "약자 코스프레", "애들이 엄마한테 뭐 사달라고 할 때 굶을 거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황 대표가 '통합'의 1차 상대로 지목했던 유승민계, 즉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모임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에서는 공식 논평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김철근 변혁 대변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뜬금없다는 생각이다. 국민 공감대를 얻을 수 있겠느냐"며 "김세연 의원이 '좀비 정당'이라고까지 하며 지도부의 용단을 요구했는데 아무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당내 돌파용'일 가능성이 크고, 패스트트랙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로 대응하지는 않고 밖으로 나가 단식을 해 버리는 것은 제1야당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다"라고 비판적으로 논평했다.
타 정당도 비판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황 대표의 남루한 명분에 동의해줄 국민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라며 "떼쓰기, 국회 보이콧, 웰빙 단식 등만 경험한 정치 초보의 조바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폄하했고, 정의당도 "곡기를 끊지 말고 정치를 끊기를 권한다"고 독설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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