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 카르텔을 박살내자"
"끝까지 싸운다, 끝내는 바꾼다, 성평등이 정의다"
"국회는 형법 개정으로 ‘미투’에 응답하라"
지난 7월 12일부터 9월 20일까지 매주 금요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이어진 '페미시국광장'의 구호 중 일부다.
페미시국광장은 300여개의 여성인권단체의 연대체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이 지난 5월 20일 검찰과거사위의 '고 장자연씨 사건' 조사 및 심의결과를 발표로 기획, 추진됐다. 과거사위는 과거 검찰에 의한 인권침해 또는 검찰권 남용 의혹 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출발부터 여성들의 기대에 한참 뒤떨어졌다. 1차 조사대상 사건에서 제외됐던 고 장자연씨 사건은 국민청원으로 겨우 포함됐으나 조사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이 불가능'하며 '수사과정에서 엄청난 조직적 은폐가 있었고 의도적인 부실수사가 있었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결론을 내렸다.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지난 10차례의 페미시국광장은 고 장자연을 시작으로 김학의, 버닝썬 등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성폭력 사건을 하나하나 짚었다. 그리고 서초동 촛불이 타오르던 지난 9월 28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이 지난 페미시국광장의 이슈를 모아 정리하는 '젠더관점에서 본 검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를 11일 서울 종로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별관에서 열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것, 혹은 '기소독점권'의 남용만이 문제일까
흔히 검찰의 문제를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기소독점권'을 가진다는 데에서 찾는다. 경찰이 아무리 수사를 해도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재판부가 죄를 물을 수 없다. 검찰이 정치권력, 재벌권력과 유착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이런 기소권력이 자리하고 있다. 검찰 내부 문제에는 더욱 취약하다. 검찰 스스로 검찰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과정에 공정성을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등장하게 된 계기다.
실제로 2010년 안태근 성폭력사건, 법무연수원 손모 교수 성폭력 사건, 2012년 서울남부지검 최모 부장검사 성폭력 사건, 전모 검사 피의자 성폭력 사건, 2013년 김학의 성폭력 사건, 2015년 서울남부지검 진모 검사 성폭력 사건 등 언론에 보도된 검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 중 제대로 처벌 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 조직적으로 은폐, 조작됐다는 것이 여성단체의 설명이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는 그러나 "공수처 설치만이 답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여성대상범죄, 특히 성범죄를 다루는 검찰의 태도에는 사회적 편견이 그대로 반영된다"며 "여성대상범죄를 강력범죄가 아닌 개인적 관계, 개인의 문제로 대하며 피해자를 엄격하게 의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검찰의 이러한 인식이 성범죄의 낮은 기소율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경찰청 카메라이용촬영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관련 범죄 신고율은 5년 전보다 6배가량 증가하고 검거율은 97.6%에 달했으나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기소율은 31.2%에 불과했다. 처벌 수위도 낮지만 처벌로 가는 기소율도 매우 낮은 셈이다.
또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포르노 사이트 200여 곳을 고발한 사건에 대해 2019년 8월까지의 처분결과들을 모아 분석한 결과, 운영자와 유포자 고발건을 합한 186건 가운데 불기소가 85건으로 절반에 가까운 45.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사성이 공개한 불기소 이유로는 '전시 횟수, 사진의 수에 비추어 비교적 사안이 중하지 아니하다', '게시한 사진이 두 장이고 게시 기간이 비교적 짧다', '소위 파워 업로더 또는 헤비 업로더는 아닌 점', '반성문을 수차례 제출하며 진심으로 반성', '초범' 등이다.
정 대표는 "검찰 내 반여성적,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조직문화가 성범죄 대응에도 그대로 투영된다"며 "법무검찰 조직의 성평등 강화 등, 전반적으로 젠더 관점의 개혁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폭력피해자들의 경험이 말한다, '검찰, 고쳐 쓸 수 있을까?'
피해자에게 성폭력피해를 재현할 것을 지시하고 현장 검증을 하도록 요구(2009)
친족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게 '너 아빠랑 사귄거 맞지? 아빠랑 사랑한거네'라며 2차 피해(2012)
지적장애 2급 여중생을 학교 선배가 강간한 사건에서, '서로 사귀기로 한 사이'라는 가해자의 말을 믿고 불기소 처분한 뒤 피해자를 무고혐의로 기소(2013)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공개한 사례 중 일부다. 남성중심의 위계질서 속에서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검사들은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해자를 불신하고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여성단체의 설명이다.
이연주 변호사(전 검사)는 "검찰은 남성이 대다수로 이루어진 조직으로 남성중심의 위계 질서 속에서 성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성폭력에 대한 태도는 검찰 내부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강조했다.
검찰개혁방안으로는 공수처 설치와 함께 시민적 통제방안, 즉 기소권 행사에 시민이 참여하는 미국식 기소배심이나 일본식 검찰심사회 제도가 논의돼왔다. 기소배심은 검사의 기소권 행사에 시민의 사전 참여제도다. 반대로 검찰심사회는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사후에 참여하는 제도다. 현재는 우리나라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도입이 패스트트랙으로 국회에 상정돼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공수처 설치로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며 "무수한 남성연대로 이루어진 법조계에 성인지적 수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질적으로 인권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검찰개혁이 무엇인지 검토해봐야 한다"며 "'성평등 검찰조직 만들기’야 말로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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