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은 때때로 몇 해전에 벌어졌던 사건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그저께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은 2017년 11월 9일에 궁중족발 김우식 사장이 건물주가 보낸 사설 용역들에게 끌려 나오는 과정에서 손가락이 부분 절단되었음을 알려줬다.
그날 궁중족발 임대인(건물주)은 페이스북에 "정말 나쁜 사람들! 건물 산지 2년 만에 명도 집행했네!! 시세차익 다다익선!"라고 올렸었다.
궁중족발 임대인은 금천시장이 종로 골목형시장(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육성사업 선정되어 국비가 투입된 후, 외지에서 건물을 사서 들어왔다. 그렇게 건물을 사자마자 임대인은 궁중족발 사장에게 월세 내는 계좌를 알려주지 않았다. 이후 300만 원 하던 임대료를 네 배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재건축을 이유로 명도소송을 걸어 궁중족발 사장을 쫓아냈다. 주목할 점은 2년이 지난 지금도 궁중족발 가게 건물은 재건축을 하지 않은 상태로 '보증금 2억, 월 1000만 원' 임대를 내놓고 있다.
이 사건 관련한 재판에서 지난 9월 24일에 김우식 사장이 국가와 용역회사, 임대인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국가와 용역업체, 임대인 등이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항소가 제기되어 아직 2심 재판이 남아 있다.
얼마 전, 궁중족발 망치사건으로 구속돼 있는 김우식 사장 면회를 갔다. 김우식 사장에게 '1000만 원 배상' 판결에 대한 소감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덤덤하다'고 하면서도 관련기사는 꼭 읽어보고 싶다고 했다. 최근에 '남들은 가만있는데 나서서 (왜 나서서) 고생하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잘못된 상가법과 건물주에게 저항한 김우식 사장의 행동이 괜한 고생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우식 사장의 그런 행동 때문에 앞으로 강제집행 위기에 놓인 가게들은 조금이나마 불법적인 폭력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이다. 김우식 사장의 손가락이 희생된 결과다.
손가락을 하나 잃고 난 후 7개월 후에 김우식 사장은 건물주와 말다툼을 하다 우발적으로 망치를 들었다. 궁중족발 망치사건이다. 그가 지금 구속돼 있는 이유기도 하다.
김우식 사장이 재판을 받고 있을 때, 국회는 상가임대차 보호법을 개정했다.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보장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권리금 회수 기회 보호 기간을 계약 기간 만료 전 3개월에서 6개월로 개정했다. 수많은 상인들이 거리로 쫓겨나도 법을 개정하지 않던 정치권은 한 상인이 잘린 손가락으로 망치를 들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정작 김우식 사장님은 바뀐 상가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는 감옥에서 나가도 새롭게 가게를 얻어 상가임대차 보호법의 보호를 받으며 장사할 수 있는 가게와 금전적 여유가 없다.
지난 2017년 2월, 김우식 사장을 잘 알지 못할 때,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이하 맘상모)'의 국회 기자회견에서 그를 촬영한 적이 있다. 그때 월세를 네 배 올려달라고 한 건물주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이번 일을 알게 된 후에 제게 묻더군요. 왜요? 우리가 잘 못한 게 없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냐고요.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 순간 생각나는 게 한 가지였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어서. 하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가치 있는 것은 돈이고 그다음은 사람이니 무슨 짓을 하더라도 돈이 많으면 살 수 있다고 아이에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 부모로서 보여준 가치관이 거짓이 되는 것인데 참 착잡했습니다. 왜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요?"
궁중족발 사건으로 상가임대차 보호법은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허술한 법과 제도로 고통받는 이들이 곳곳에 있다.
지난 10월 31일, 궁중족발 건물과 지척에 있던 가게에 갔다. 강제집행 위기에 놓인 가게였다. 그곳에서 커피숍 사장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예전에 만날 때는 노량진에서 부동산 강의로 유명한 학원 건물주와 소송 중이었다. 결국 강제집행 위협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왔다고 했다. 그것도 실내 인테리어를 원상복귀까지 해준 뒤에 말이다. 회사에서 은퇴를 하고 받은 퇴직금과 대출금을 건물주를 잘 못 만나 거의 건지지 못하고 나온 것이다.
그날 저녁에는 명동에서 25년 동안 라이브 카페를 하신 사장님이 마지막 행사가 될 수 있으니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해서 갔었다. 매년 10월의 마지막 밤이란 행사를 이 가게에서 하고 있는데 내년에 철거될 가능성이 높아져서 이번이 마지막 '10월의 밤'이 될 것 같다고 했다.
25년 동안 저녁이면 카페를 찾아 노래하며 우정을 맺던 사람들의 마지막 10월의 밤은 아름답고도 씁쓸했다.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어쩌다 이 도시는 쉴 새 없이 기억을 지우고 약자들의 자산을 약탈하며 시세차익만 남기는 도시가 된 것일까.
궁중족발 망치사건이 나고 5일 후에 김인숙 소설가는 <경향>에 '임꺽정'이란 제목으로 이렇게 썼다.
"나쁜 정치, 나쁜 체제하에서 누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오랜 세월 전의 배경을 담고 있는 소설이고, 그 소설이 쓰여진 시기가 또 오래전이었음에도, 이야기는 다시 내 시대의 것이기도 했다."
최근에 김우식 사장이 맘상모 활동가에게 보낸 편지에 "가난은 좀처럼 벗겨지지 않는 것 같네. 부자는 부자로 남고 빈자는 빈자로 살아가는 것 같네"라고 적었다고 한다.
건물주에게 가게를 뺏긴 채 남편을 구치소에 보낸 윤경자 사장은 공유주방 '위쿡'에서 '딜리버리 주방(배달 주방)'으로 재기를 꿈꾸고 있다. 얼마 전 양파를 까다가 국가와 용역회사와 임대인으로부터 배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펑펑 우셨다고 한다. 옆 가게에서 물건을 빌리러 온 사람이 양파가 그렇게 맵냐고 놀랄 정도로.
최근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20대 국회의원들 중 67명이 임기 시작 후에 건물이나 토지를 매입했고 자신의 지역구 등에서 구입한 집이나 땅이 개발 이익으로 시세차익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고위 공직자들이 부동산 투기를 하고 다수의 국회의원이 건물주이거나 건물주의 후원으로 정치를 하는 나쁜 정치를 끝내지 않으면 빈자가 빈자로 살아가는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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