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탄핵소추안 가결후 한-민 지지율은 급락하고 반대로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급상승하는 '탄핵 역풍'에 크게 당황하고 있다. 내심 계산했던 '친노 대 반노' 국면이 아닌, '탄핵반대 대 탄핵찬성' 국면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민은 모든 책임을 언론의 왜곡보도 탓으로 돌리고 있으나, 왜 '민의'가 이처럼 자신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해선 아직까지 원인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의 계속되는 착각**
3.12 탄핵안 가결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평균적 여론추이는 "탄핵 잘못 70%, 열린우리당 지지 35%"이다. 이같은 여론은 한-민 지도부가 미처 예상도 못한 결과였다. 그만큼 '주관적 판단'에 매몰돼 있었기 때문이다.
탄핵안 가결 전에도 각종 여론조사의 결과는 "탄핵반대"가 65~70%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민 관계자들이 하는 말은 한결같았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동네여론은 과학적 여론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당시 한나라당 관계자는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했었다.
"여론조사를 하면서 '탄핵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고 물으면 당연히 '반대'가 많을 수밖에 없다. 불안을 좋아하는 국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론조사기관과는 달리 조사방식을 바꿔 조사해보면 정반대 결과가 나온다. 즉 '노대통령이 4년 더 통치하는 게 좋겠냐 그렇지 않냐'고 물으면 '해서는 안된다'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요컨대 노대통령 지지율이 30% 안팎에서 맴돌 정도로 노대통령을 싫어하는 '반노 여론'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만큼 탄핵안을 통과시켜 '반노 대 친노' 전선을 기정사실화하기만 하면, 4.15총선에서의 한나라당 승리와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한나라당이 탄핵을 몰아부친 상황판단은 이처럼 희망섞인 '주관적 기대치'였던 것이다.
***민주당의 "그럴 리가..."**
이같은 인식은 민주당에서도 그대로 목격됐다.
탄핵안 통과후 여론조사결과 "탄핵 잘못 70%, 열린우리당 지지 35%"라는 숫자가 나오자, 김영환 민주당대변인이 13일 보인 반응은 "그럴 리가...11일 노대통령 기자회견 직후만 봐도 우리 조사로는 탄핵 찬반이 7대3이었는데 3대7로 하루사이에 바뀌다니...아마 탄핵안 강행처리과정이 TV에 생중계됐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열린우리당 지지 급등은 '동정여론'이 형성된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겠냐는 분석이었다.
이같은 인식은 그후에도 계속돼, 14일부터는 조순형 대표가 직접 KBS, MBC 등을 항의한 데 이어 한나라당과 함께 국회를 소집해 책임자 추궁을 벌이기로 하는가 하면, 조대표 옆에서 탄핵정국을 강행토록 한껏 바람을 잡은 김경재 의원 같은 경우는 각 여론조사기관의 '여론조작설'을 설파하기에 이르렀다.
한-민 지도부가 '반노 대 친노' 국면 대신에 '탄핵반대 대 탄핵찬성'이라는 예기치 못한 국면을 몰고온 '탄핵 역풍'에 얼마나 당혹해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탄핵 역풍'의 시대정신**
한-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며칠만 지나면..."이라고 말하고 있다. 며칠만 지나면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국민여론이 당초 한-민 지도부가 예상한대로 '반노 대 친노' 국면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이다. 동시에 친노세력이 집결하면 할수록, 그에 비례해 반노세력의 결집력도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는 눈치다.
물론 여론은 본질상 자못 '유동적'이며, 총선까지는 아직 한달이 남은 만큼 현재 여론조사 결과가 그대로 '고착화'할 것이라고 단정짓기도 이르다. 그러나 한-민 지도부의 현재 대응을 보면, 과연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가 출현하지 않는 한 과연 여론 흐름이 크게 바뀔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노무현대통령의 지난 1년 국정운영에 대해 비판적 여론은 분명 다수다. 노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단행된 각종 여론조사나 시민사회단체들의 평가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사태를 맞아 표출된 여론은 "최소한 한-민 등 야당에게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하야시킬 자격이 없다"는 단호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사회의 한단계 '발전한 민주주의 의식'을 목격하게 된다.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 만족불만족을 떠나 '국기'를 지키려는 냉철한 민주의식이 그것이다.
동시에 여기서 우리는 국민 다수가 한-민을 '대안세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도 새삼 목격하게 된다. '노무현이 싫은 만큼 다수 국민은 결국 총선에서 좋든싫든 우리를 찍을 것'이라는 한-민의 기대가 얼마나 안이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민이 계속해 이처럼 수준높은 '민의'를 TV 중계방송 등을 보고 조작된 '동네 여론' 등으로 치부하는 한, 한-민의 앞날은 암담할 것임에 분명하다.
***노무현 정권도 착각은 금물**
'탄핵 역풍'은 '높은 민의'의 표출이다.
이에 우리는 노무현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게도 주목하고자 한다. 만에 하나 '역시 민심이 계산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식의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다.
현재의 지지율이 유지된다면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당초 목표치이상의 '대승'을 거두고, 노무현대통령은 '한층 강력해진 대통령'으로 컴백할 것이다. 현재의 '당 지지율 35%'란 총선에서의 '당선 안정권'을 의미하는 의미있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핵국면을 맞아 "탄핵 반대" 입장을 굳힌 많은 국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막판까지 많은 고심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한 예로 탄핵정국 도래 직전까지 엄동설한에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공권력의 찬물세례를 맞으며 "노무현정권 타도"를 절규하던 농민들의 단체인 전농같은 경우는 "한-칠레 FTA를 통과시키고 이라크파병안을 통과한 노무현정권을 심판할 권한은 우리 농민 등 국민에게 있을뿐 야당에게는 없다"는 고뇌에 찬 성명을 내야 했다. 다른 시민사회단체들의 경우도 오십보 백보의 마찬가지 고뇌를 해야 했다.
부안사태를 물리력으로 제압하려 하고, 11일 기자회견에서까지 측근과 친인척 비리에 대해 여론과 동떨어지게 '옹호적 태도'로 일관했으며, 어설픈 경기부양책에 휘말려 아파트값 폭등을 초래해 서민들을 절망케 하고 경제의 근간을 약화시키는 등 노무현정부가 지난 1년간 보여준 모습은 야당의 딴지걸기와는 무관하게 실망스런 모습투성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 국민은 노대통령을 지키려 나섰고, 지금 이대로의 민심이 유지된다면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노대통령등이 이를 '민심이 계산한대로 움직였다'는 식으로 자가당착으로 해석하거나 '적극지지층의 공로'로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면, 노무현 정권의 앞날은 결코 간단치 않을 것이다. 노정권의 지난 1년에 실망하던 여론이 왜 지금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가, 그 밑바닥에 깔린 '고뇌'를 읽을 수 있는 성찰이 더없이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이것이 '탄핵 역풍'이라는 커다란 시대정신이 지금 바라는 최소한의 요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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