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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질 직업이라면 사람도 없애버리나?

[기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김천 본사 점거 농성의 의미

대한민국 전체가 조국사태의 소용돌이에 있는 동안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는 우리가 옳음을 마침내 증명하고 말겠다는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 250명이 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투쟁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조국보다, 검찰개혁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대중과 언론은 철저히 외면하였다.

이 싸움은 크게 네 가지 큰 의미를 갖는다. 김천은 신자유주의 체제와 맞서는 최전선이자 촛불정권이 거듭날 수 있는 전환점이며, 계급모순과 젠더모순이 종합된 여성운동의 전형이자 4차 산업혁명시대에 노동과 자동화의 공존을 모색하는 시금석이다.

우리는 모두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극에 달했던 이 체제는 촛불정권에서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 자본이라는 괴물의 야만을 견제하고 노동과 환경을 보호하던 규제들이 거의 해체되었다.

자본은 극단의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정규직을 대량해고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공적인 영역을 사적인 영역으로 전환하였다. 그 결과로 1100만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2017년 기준 50.7%)을 차지할 정도로 불평등이 악화하였으며, 청년실업자는 30만 명에 이르며(통계청 2019년 8월), 971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였다.(고용노동부 2018년)

신자유주의 체제는 금융엘리트들과 자본, 정권이 동맹을 맺고 금융 분야에서 합법적 사기를 통해 서민과 노동자를 과도하게 수탈하기 때문에 더 야만적이다. 필자가 이명박 정권말기부터 집회나 길거리 강연에서 자주 했던 질문이 "이명박 정권에서 환율 조작을 하여 서민 돈을 빼앗아 재벌에게 준 것이 얼마인가"이다.

"MB 정부 3년간 고환율 정책으로 무려 174조 원의 돈이 서민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갔다. 그 결과 국민의 97%인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실질소득은 무려 15.3% 이상 감소했다."(송기균, <고환율의 음모>)

단순화해서 설명하면, 이명박 정권이 무역량과 별 관계없이 947원이었던 환율을 1276원으로 인상한 바람에 하루 100달러어치의 석유를 사용하는 국민은 9만4000여 원만 지불하면 될 것을 12만7000원이나 지불한 것이고, 대신 100달러짜리 스마트폰을 파는 삼성은 그 반대로 9만 4000여 원만 벌 것인데 12만7000여 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 안에 앉아있는 요금수납원. ⓒ민주노총

실제로, 민주당의 유승희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2017년 귀속 양도소득과 금융소득' 자료를 보면, 2017년에 상위 10%의 배당소득이 18조3740억 원으로 전체의 93.9%에 달했다.

서민과 노동자만이 생존위기에 놓인 것인 아니라 사회의 불만이 고조되고 소비가 줄어들고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신자유주의 체제를 채택한 나라들이 장기침체를 겪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국제통화기금(IMF)조차 경제를 성장시키면 그 열매가 노동자와 서민에게도 돌아간다는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를 부정하는 보고서인 '소득 불평등의 원인과 결과: 세계적 전망'을 2015년 6월 15일에 발표했다.

"소득 불평등과 경제발전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1980년부터 2012년까지 세계 159개국의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여 이 보고서에 담았다. 이에 따르면, 상위 20%의 소득이 1% 증가하면 5년 동안 GDP는 0.08%포인트 감소했지만, 하위 20%의 소득이 1% 증가하면 GDP는 같은 기간에 0.38%포인트 증가했다."

한 마디로 낙수효과는 허구에 불과하며 서민과 노동자가 잘 살아야 경제성장도 가능하다는 분수효과(fountain effect)가 타당하다. 성장과 복지는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이다.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면 보수는 물론 진보 인사조차 도덕적으로 옳지만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2011년 조사의 경우 30대 기업에서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드는 비용은 당기순이익 49조7000억 원의 1.5%인 7900억 원에 지나지 않았다."(<시사저널>, 2012년 10월 31일)

인천공항의 경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4~5년 뒤에는 외려 비용 대비 편익이 더 증가한다. 2011년 기준으로 인천공항공사가 39개 부문의 외주용역으로 지출하는 비용은 한 해 총 3306억여 원인데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고 외주를 직영으로 전환하면 한 해 3120억 원이면 운영이 가능하다.(김성희, <인천공항공사 민간위탁 노동자 실태와 직접고용 정규직화 방안 연구>)

수천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두 배의 임금이 더 소요되는데, 어떻게 이런 '마법'이 가능한가? 바로 협력업체의 업주들이 마름처럼 과도하게 중간착취를 하는 구조이고 비효율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요인으로 대다수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극복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보편복지를 실시하고 조세개혁을 하여 불평등을 완화하고 있으며, 이것이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를 다시 활성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 또한 처음에는 이 방향으로 공약을 했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을 유지하고 있고 친재벌 반노동정책으로 회귀하였다. 불평등은 외려 심화하였고, 노동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자회사라는 꼼수를 통해 조삼모사식의 편법을 동원하고, 이강래와 한국도로공사는 대법원의 판결조차 위반하며 자회사 전환을 강요하고 1500명 중 소송을 낸 304명만 직접고용을 하겠다며 분리 정책을 획책하고 있다.

톨게이트 조합원들은 이에 맞서서 자회사는 '가짜 정규직'이라며 이를 거부하고 요금소 캐노피 위와 한국도로공사 본사 로비에서 농성을 하다가 얼마 전에 김천 본사 로비로 합류하였다. 이들은 경찰의 방조 속에 구사대로부터 갖은 압박과 탄압을 받았음에도, 열악한 환경에서 환자가 속출함에도, 여러 불이익을 당함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웃으며 싸우고 있다. 지난 10월 5일 김천행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던 필자는 경찰과 몸싸움 끝에 본사 로비에 진입하자마자 노동자들이 서로 끌어안고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처럼 엉엉 우는 것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였다. 그토록 굳건한 연대감과 동지애가 있었기에 가능한 반응이었다.

1500명 톨게이트 수납원 전체의 직접고용을 위하여 희생과 연대를 선택한 이들은 이제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엄성과 권리를 위해, 신자유주의의 탐욕을 일소하고 경쟁에서 이기기보다 모두 함께 잘 살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다. 그러니 김천 농성장이야말로 신자유주의에 맞선 최전선이다.

문재인 정권은 친재벌 반노동 정책으로 회귀하여 노동자와 서민의 공분을 사는 것으로 모자라 조국사태로 대중적이고 도덕적인 헤게모니를 상실하였다. 이 상황에서 문재인 정권이 노무현 정권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는 길은 신자유주의 극복으로 전환하여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을 취하는 것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가장 크게 외쳤던 것은 불평등의 완화였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9번이나 이재용을 만났던 발걸음을 김천 도로공사 본사로 돌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제로시대'를 선언이 아니라 실천한다면, 다시 서민과 노동자와 농민, 진보진영의 지지를 얻을 것이다.

주권자로 각성하여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일터, 학교, 거리에서 모든 갑질에 대하여 저항하였다. 그 중 가장 거세게 불탔던 것은 미투운동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지독한 가부장체제를 유지하며 가부장적 폭력을 다반사로 행사하였기에 당연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계급모순과 결합하지 못한 미투운동은 서민, 노동자, 빈민, 이주노동자로서 여성을 울타리 밖으로 내친 채 부르주아 운동으로 그칠 수 있다. 반면에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그동안 영업소장의 개인 텃밭을 관리하거나 밥을 차려주고 김장을 해서 갖다 바치고 술자리를 상대하고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하는 등 온갖 갑질을 견뎌내다가 해고를 각오하며 분연히 일어섰다. 이는 젠더모순과 계급모순을 모두 극복하고자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붉은 미투운동'이다.

▲ 지난 5일, 톨게이트 요금 수납노동자가 농성 중이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를 방문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직접고용 쟁취"라고 적힌 커다란 걸개그림을 들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4차 산업혁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문재인 정권은 어차피 요금 수납 체계가 자동화할 것이라며 더욱 사태해결을 방관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미국 일자리의 47%가 자동화의 높은 위험에 처해 있다."(칼 베네딕트 프레이 등 <4차 산업혁명의 충격>) 인간의 지능을 앞서는 인공지능이 대략 30년 정도면 나타날 것이기에, 장기적으로는 이 흐름을 거역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노동자들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0.0001%의 로봇 소유자들만이 부를 획득하는 것을 방관한다면 그 사회는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이를 예방하라고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국가로서 역할을 하려면, 지금부터 자동화와 인간의 노동을 조화시킬 수 있는 대안의 시스템을 모색해야 한다. 그럼에도 청와대 관계자가 ‘없어질 직업’이라고 운운한 것은 이 정권의 당사자들이 노동과 국가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천박한 지에 대해 잘 알려주는 지표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통해서 노동 존중이 없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신기루였는지 그토록 절감하지 않았는가. 직업이 없어진다고 사람이 사라지는가. 장난감 병정을 모아놓고 왕 노릇을 하는 아이처럼 청와대가 국민 대신 기계들을 모아놓고 대통령과 수석의 일을 하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크레이머 교수가 오링이론(O-ring Theory)에서 잘 제시한 대로, 자동화로 생산성만을 추구하며 인간과 노동을 경시하면, 인류 최고의 기술이 집적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고무로 만든 오링의 결함 때문에 폭발한 것과 같은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백보 양보하여 ‘없어질 직업’이라 하더라도 그럴수록 더 적극적으로 자동화로도 남아야 할 사람들이 진정한 자기실현으로서 노동을 하면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자동화보다, 인공지능보다 더 우선하여 추구할 가치는 사람이요, 또 노동이다. 이런 면에서 요금소 수납 노동은 그 시금석이다.

오는 19일 저녁 6시에 청계천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톨게이트 직접고용 대책위에서 주최하는 '비정규직 철폐·직접고용 쟁취·톨게이트 투쟁 승리 촛불 문화제'가 열린다. 상위 10%를 제외한 모든 국민, 너와 나가 이 신자유주의 체제의 희생자들이다. 이 체제 안에서는 누구든 '김용균'이 될 수 있다.

짐승과 구분되는 인간의 특성 가운데 최상의 것은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이 가을날 사라지는 낙엽을 보며,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이 더 이상 김천에 고립되지 않도록 연대하여 나의 인간다운 본성을 구현함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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