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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0억 혈세 줬더니 수백억 탈세, 정부는 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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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8100억 혈세 줬더니 수백억 탈세, 정부는 뭐했나?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한국GM 세무조사 결과 공개해야

지상욱 의원 : 최근에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한국GM이 올해 국세청의 이전가격에 대한 추징금 부과에 대해서 조세심판원에 조세불복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알고 계시죠?
김현준 국세청장 : 네. 언론 등을 통하여 보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상욱 의원 : 이 추징금 부과 대부분이 이전가격에 대한 것입니다. 이 내용도 함께 알고 계시죠?
김현준 국세청장 : 네. 이전가격에 대해서 당시 언론에서 많은 보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인 9월 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한 국세청장을 상대로 한 지상욱 의원(바른미래당) 질의·응답 내용이다. 아니, 저건 국세청이 한국GM의 이전가격 관련 탈세를 밝혀냈고 그걸 근거로 추징금을 부과했다는 얘기 아닌가! 그럼 작년에 산업은행 실사단은 대체 뭘 한 거냐 말이다.

2개월 실사 끝에 8100억 혈세 투입해준 산업은행

지난해 이른바 'GM 사태'가 발생했을 때 산업은행은 무려 2개월 동안 삼일회계법인과 함께 한국GM에 대한 대대적인 실사를 진행한 바 있다. 한국GM 부실의 가장 큰 원인이 높은 매출원가율에 있으며, 매출원가율을 높이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 △ 과도한 연구개발비 △ 이전가격 의혹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전가격' 의혹을 자세히 들여다보겠다고 공언했다. 실사과정에서 GM 측이 자료 협조를 충실히 해주지 않고 있으며, 특히 '이전가격' 관련 자료를 제대로 주지 않고 있어 GM과 다툼이 심하다는 얘기도 많이 나왔다. 산업은행이 드디어 '이전가격' 문제를 제대로 다루겠거니 하는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요란한 호언장담과 달리 결과는 빈 수레였다. 산업은행과 삼일회계법인은 "GM본사와의 이전가격 등 거래는 여타 계열사와 유사한 수준이며, 글로벌 기준에도 부합"하다는 실사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근거로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인지 밝히지도 않았다. 그냥 문제없는 걸로 조사되었으니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는 투였다.

작년 3, 4월 2개월 동안 실사를 완료한 산업은행은 5월 중순에 서둘러 GM과 기본 계약서를 체결해 무려 8100억의 혈세를 지원해 주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그럼 이른바 'GM 사태'는 일단락되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난해 연말 연구개발 부문을 일방적으로 떼어내 법인 분리를 강행했고, 올해에는 인천물류센터를 폐쇄하기까지 했다. 곳곳에서 일방적인 희망퇴직이 이뤄지며 상시적인 구조조정 공격이 벌어지고 있다.

혈세 투입했더니 탈세를?

바로 그런 기업에서 수백억 탈세를 했다는 사실을 국세청이 밝혀낸 것이다. 그것도 산업은행이 2개월이나 걸려 면죄부를 준 '이전가격' 문제에서 말이다. 사실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GM의 탈세 문제가 있다는 점은 한국GM이 올해 4월에 공시한 감사보고서에 드러나 있다. (아래 그림. 붉은 밑줄은 필자가 강조를 위해 그어놓은 것)


한국GM 2018년 감사보고서 법인세 항목에 '세무조사(유보조정사항 포함)'라며 226억이 적시되어 있다. 이게 바로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통해 '이전가격' 문제점을 밝혀내 추징한 내용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게 그리 새로운 내용도 아니다. 한국GM의 '이전가격' 문제는 그 이전부터 꾸준히 문제가 되어온 부분이며, 금융당국과 과세당국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를테면 국세청은 2013년에도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통해 한국GM '이전가격' 문제점을 밝혀냈고 수백억을 추징한 바 있다. 그 내용은 한국GM 2014년 감사보고서에 드러나 있으며, 2018년과 동일하게 '세무조사(유보조정사항 포함)'란 항목에 적시되어 있다. (아래 그림. 밑줄은 필자가)

탈세 전과자에 면죄부에다 추가 혈세 투입?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작년 GM 사태 당시 지상욱 의원을 비롯한 정치권도 국세청 세무조사를 강하게 촉구한 바 있다. <인사이드 경제> 역시 한국GM 이전가격 문제를 밝히기 위해서는, 2013년 조사경험을 갖고 있는 국세청이 나설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한국GM, 세무조사할 때가 됐다”)

게다가 기업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는 5년에 한 번씩 이뤄진다. 2013년에 세무조사를 한 차례 했으니 작년(2018년)이 바로 5년째가 되는 해, 즉 한국GM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가 예정된 해였다. 없는 세무조사를 만들어서 하란 게 아니라 어차피 해야 할 조사이니 빨리 앞당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GM 사태 당시 세무조사 대신 산업은행 실사를 진행했고, 결론적으로 이전가격 문제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아래 그림. 기획재정부의 '한국GM 관련 협상결과' 보도자료, 2018. 5. 10, 밑줄은 필자가 그은 것) 어디 그뿐인가. 탈세 전과자에게 8100억의 국민 혈세까지 투입해준 꼴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이것이다. 5년마다 이뤄지는 정기 세무조사가 있었고, 국세청이 이전가격을 밝혀낸 것이다. 탈세 전력이 있는 한국GM이 탈세 상습범임을 밝혀낸 것. 2018 감사보고서에 적시된 것을 보면 이미 작년에 세금 추징이 이뤄진 사안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 사안을 1년 가까이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산업은행이나 국세청 모두 정부기관 아닌가. 한쪽에서는 이전가격에 면죄부 주면서 무려 1조에 가까운 혈세를 퍼주고, 다른 쪽에서는 이전가격 문제를 밝혀내며 세금을 추징한다? 산업은행과 국세청 모두 작년에 똑같이 조사를 해놓고 한쪽에선 문제 없다, 다른 쪽에서는 문제 있다고 결론을 낸 거다. 이게 무슨 국정운영이란 말인가?

'이전가격(Transfer Price)'이라는 흑마술

'이전가격'이란 다국적기업이 해외 자회사와 원재료 또는 제품을 거래할 때 적용하는 가격을 말한다. 보통 다국적기업들이 세금부담 경감을 목적으로 이전가격을 조작하는 경우가 있다. 본사가 자회사와 상품·서비스를 거래하면서 가격을 조작해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자회사가 만든 상품을 본사에 수출할 때엔 낮은 가격을 책정하고, 반대로 본사에서 수입해오는 상품에 높은 가격을 책정한다면? 자회사의 이익이 줄어들어 세금을 줄일 수 있으며, 줄어든 자회사의 이익은 고스란히 본사로 이전된다.

이런 수법은 본사와 자회사 간의 거래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 퍼져 있는 자회사들끼리의 거래에도 자주 활용된다. 특히 법인세율이 낮아 조세피난처로 알려진 곳에 핵심 자회사를 설립해두고 이곳으로 모든 이익을 귀속시키도록 자회사 간 이전가격을 조작한다면? 이건 그저 가정이 아니다. 이미 이런 수법을 활용하고 있는 다국적기업들도 꽤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최근에는 이전가격 조작 여부가 잘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적 재산권'이나 '무형재산'을 활용하는 수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원천기술 사용 비용, 즉 로열티를 많게 또는 작게 반영하면 상품 가격 조작이 가능하다. 이것의 조작 여부를 밝히려면 기업 내부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 '영업기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의심스러운 한국GM의 CKD 수출단가

그렇다면 대체 국세청은 한국GM의 어떤 거래에서 이전가격 문제를 파헤쳐 의혹을 밝혀냈을까? 국세청이나 GM이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인사이드 경제>가 알아낼 재주는 없다. 하지만 공인된 몇 가지 수치로 추정을 해볼 수는 있다.

이를테면 CKD(Complete Knock Down : 해외 현지공장에서 간단한 최종 조립만 하면 완성차를 만들 수 있도록 주요 부품을 포장해 수출하는 것)의 경우 오로지 수출되는 물량이기 때문에 타사와의 비교, 연도별 비교를 해보면 중요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자동차산업협회는 회원사들의 CKD 수출물량 개수와 총 수출액 데이터를 수집해놓고 있다. CKD 총 수출액을 개수로 나누면 CKD 1개당 수출 단가를 구할 수 있다. 완성차 4사의 CKD 수출 단가를 연도별로 나타내보면 아래 표와 같다. (르노삼성의 경우 2014년 이후 CKD 수출을 하지 않고 있어서 제외했음)


각 업체별로 CKD 수출을 하는 차종들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비교가 올바른 방식은 아니지만, 위 표를 보면 한국GM의 수출단가는 타사와 비교했을 때 2가지 분명히 다른 점이 확인된다. 첫째, 수출단가 자체가 낮아도 너무 낮은 수준이다. 타사의 수출단가 대비 절반 이하, 심할 경우 1/5 밑으로도 떨어진다.

한국GM이 소형차 중심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소형차 중심 물량이라는 성격은 현대기아차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최근까지 트랙스의 유럽 버전인 오펠 모카의 상당한 물량을 CKD로 포장해 스페인에 수출해왔기 때문에 한국GM의 수치에는 소형차만 포함된 것도 아니다.

둘째, 시간이 지날수록 타사의 수출단가는 계속 높아지는 반면, 한국GM의 수출단가는 오히려 낮아진다. 그래서 타사와의 CKD 수출단가 격차는 오히려 더 커진다. 해가 갈수록 물가와 임금이 인상되기 때문에 수출단가 역시 올라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한국GM은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기에 수출단가가 저렇게 떨어진단 말인가?

국세청이 투명하게 공개해야


분석 시간대를 더 늘리면 또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번에는 한국GM의 CKD 수출단가만을 놓고 2005년부터 2018년까지의 변화 추이를 막대 그래프로 그려보았다. 우선 2005년만 해도 수출단가가 타사와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으나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거의 곤두박질을 치게 된다.(아래 그래프)


그 시기가 바로 GM 본사와 한국GM 사이에 비용분담협정(CSA)이 체결되고 개정되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본사와 한국 자회사 사이에 비용을 어떻게 분담하고 지적 재산권과 로열티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2006년 처음 체결하게 된다. 그런데 산업은행이 이를 두고 대표적인 불평등협정이라며 강하게 문제제기하고 재협상을 통해 2010년에 한 차례 크게 개정되었다.

이제 앞서 소개한 감사보고서를 다시 떠올려보자. 국세청은 2013년에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통해 이전가격 문제를 파헤쳤고,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도부터 2010년도까지” 문제가 된 이전가격에 대한 추징을 한 것으로 나온다. 이 기간 또한 CKD 수출단가가 형편없이 떨어지던 시기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보통 CKD의 경우 포장된 부품들 가격의 합보다 훨씬 비싸게 수출된다. 해당 차량의 개발비용 명목으로 로열티를 상당히 높게 책정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완성차보다 CKD 수출에서 이윤율이 더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GM의 경우에는 오히려 반대현상이 벌어진다. 대우차 시절에 개발했던 차량들에 대한 로열티가 제대로 책정되기는 한 것일까?

CSA(비용분담협정)가 바로 그 문제를 다룬 협정이었다. 개발차량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모조리 특정 자회사(GTO)에 귀속시킨 것이다. 산업은행이 국제분쟁까지 압박하며 재협상을 요구해 2010년에 개정된 CSA에서는 해당 지적재산권을 원위치로 돌려놓게 된다. CKD 수출단가가 널뛰기를 한 이유, 국세청이 파헤친 이전가격 문제 모두 여기에 비밀이 놓여 있지 않을까.

2011년에 CKD 수출단가가 회복되긴 하지만 2018년까지의 그래프를 살펴보자. 2007~2010년처럼 폭삭 가라앉은 것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밑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국세청은 다시 한 번 이 부분의 문제점을 파헤친 것일까? 국민 혈세 8100억이 투입된 사업장 아닌가. 노동자와 시민들은 당연히 알 권리가 있다. 마땅히 국세청이 답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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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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