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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5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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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5代'

<시론> 노무현 대통령은 왜 역사에서 배우지 못할까?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더니 드디어 '2선 후퇴' '임기 단축'을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새로운 정치문화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기에 당장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뒤숭숭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러다간 말이 씨가 되어 어느날 갑자기 "대통령 못 해 먹겠다"며 아주 간단히 대통령직을 버리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제는 노 대통령이 왜 저런 식으로 '자해'에 가까운 발언들을 쏟아내는지 그 배경을 따져보고 객관적인 설명을 시도하기에도 지친 것 같다. '그는 본래 아무도 못 말리는 사람이니까', 혹은 '그의 승부사 기질이 사태를 그렇게 몰고 가고 있으니'라는 등의 체념적 설명방식이 국민들의 머리를 사로잡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 사이에서 정치 얘기가 화두에 오를라 치면 '노 대통령이 정말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는 것 아니냐' 혹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수준의 대화에서 논의가 맴돌곤 한다. 유권자들로서는 씁쓸하고 비생산적인 논의일 뿐이다. 정치권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미래지향적인 논의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가생산한 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국민 대중의 혐오 속에서 무력감을 양산하면서 말이다.

***노 대통령의 '머리'는 미래를 향해도 '몸'은 구시대에 속해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시야를 조금 확장해서 우리의 길지 않은 현대정치사를 살펴볼 때 노 대통령의 이같은 처신은 어떤 맥락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때에 따라 다소 오락가락하기도 했지만 연정론과 자신의 궁극적인 거취를 언급하게 된 배경으로 여소야대의 최근 10여 년간의 정국상황과 지역구도라는 우리의 역사적 짐을 거론하고 있다. 그 두 가지를 해소하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목표이자 국민을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할 수 있는 과제라는 것이다.

이렇게 노 대통령의 명분에 해당하는 '여소야대'와 '지역구도'가 먼저인가, 아니면 노 대통령이 현실의 정치상황에서 실현코자 하는 '연정'이 우선인가? 그 답을 과거 최고권력자의 정치행태 속에서 찾아보자.

공교롭게도 노 대통령은 '2선 후퇴' 발언 바로 다음날인 31일 각 언론사의 논설위원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기존의 우리의 합리주의 사고의 틀로써 다 해석할 수 없는 변화가 지금 이미 진행됐고, 진행되고 있다"며 자신의 사고가 미래지향적인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노 대통령이 시도하고 있는 '정치 연대'는 사실 과거를 철저히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머리는 비록 미래를 지향하고 있을지 몰라도, 그 자신이 시인한대로 그의 몸만은 '구시대'에 속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권력구도의 개편 또는 다른 정치세력과의 연합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했던 시도는 노 대통령이 처음이 아니다. 사실 집권당이 아닌 다른 정치세력과의 연합은 궁극적으로 권력구도의 개편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며, 개헌을 하든 않든 권력구도의 변경은 여타 정치집단과의 결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두 가지는 표리 관계를 이룬다. 그런 점에서 어느 권력자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세력을 동원할 때는 권력구도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실제 우리의 권력자들도 그렇게 해 왔다.

***전두환부터 김대중까지 계속된 시도…결과는 늘 씁쓸**

전두환 대통령은 1987년의 4.13 호헌조치와 6.29 선언의 중간 시점에 한때 내각제 개헌을 시도한 적이 있다. '직선제 개헌' 요구가 봇물을 이루던 무렵 그는 마지 못해 개헌 논의를 수락하면서 직선제의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이 내각제 개헌이었다. 당시 신군부를 주축으로 한 여권은 내각제야말로 '선진 민주주의 제도'라는 명분을 들었지만 어차피 권력의 독식이 어렵다면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권력게임보다는 권력의 수시교체가 가능한 내각제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시도는 6월항쟁의 열기 속에 자진하고 말았다.

그 다음의 노태우 대통령은 우리가 다 알다시피 정치사에 길이 남을만한 기록을 남겼다. 1990년의 3당합당이 그것이다. 아주 극적이면서도 전형적인 '정치 연합'의 사례였다. 여소야대 상황이 그 정치적 환경을 형성하긴 했지만 본질은 정당성을 결여하거나 국민적 신뢰를 상실한 정치세력들 간의 야합이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이 과정을 통해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의 발판을 놓게 되고 노태우 대통령은 신군부의 역사적 정당성을 일견 보장받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사정변과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끊임없이 사법적 제재의 대상이 됐고 끝내 수감되어 '정치 연합'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신군부의 정당성도 신기루였음이 증명된 셈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기간 중 별다른 '정치 연합'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집권 기반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미 3당합당이라는 고단위의 연합 시도를 한 마당에 또 다시 유사한 시도를 하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정치 경제적 불모 상황에서 끊임없이 3당합당의 짐을 지고 가던 그는 아들에게 정치적 판단의 상당부분을 의존하다가 끝내 외환위기로 침몰하고 말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1997년 'DJP 연합'도 아주 정확한 정치연합의 사례로 기록될만 하다. 그는 이를 통해 집권이라는 필생의 꿈을 이뤘고 정권도 외환위기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일견 순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김종필 씨와의 내각제 약속은 집권 기간 내내 그의 발목을 잡았고 결국은 결별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이 DJP연합은 김대중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집권의 목적에 충실히 복무한 수단이었을지 몰라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사술'이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연합이 얼마나 성공하기 어려운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직전에 정몽준 씨와 시도했던 선거연합 시도였다. 바로 그 어려움 때문에 대통령 선거 하루 전, 그것도 심야에 그 연합이 깨지고 노심초사 끝에 노 대통령은 단독 집권에 성공했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은 대단히 행운아였다고 할 수 있다. 본심을 의심 받을 수밖에 없으며 그 과실 역시 독과(毒果)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정치연합을 피해가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실패한 대통령' 될 수밖에**

그런 점에서 그는 4대의 전임 대통령 기간 내내 집권자를 사로잡았던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호기를 안고 임기를 시작했던 셈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남의 힘을 빌어 정치를 해야겠다는 유혹을 노 대통령 역시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번 연정론을 통해 새삼 확인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집권과정에서는 부작위에 의해 그 짐을 벗었지만 정권의 유지 또는 재생산 과정에는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남의 힘을 개입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우리 현대정치사의 흐름이 가르쳐주는 바는 명확하다. 우선 역사적으로 '연합'에 의한 정권창출 또는 유지는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견 집권에 성공한 듯이 보이는 경우에도 그 결말은 늘상 씁쓸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투옥'과 '결별'의 선례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이런 교훈을 연장하면,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권력은 부자 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얘기가 진실에 가까운 것 같다. 여기에 전혀 다른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갖는 외국의 연정 성공 사례를 들이대는 것은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둘째, 노 대통령이 '여소야대' '지역감정' 등 여러가지 명분을 대며 연정을 주장하긴 했지만 정치인 또는 정치집단이 다른 세력에 손을 내밀 때에는 기본적으로 정권의 창출 또는 자기 정권의 영속화가 가장 저변에 흐르는 목적이라는 점이다. 3당합당의 선례가 그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외면적으로 여소야대 상황이 그 계기가 되긴 했지만 그 야합의 계기가 정당성과 지지기반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있었음은 역사적으로 실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런 측면 역시 돌이켜보면, 그 두려움을 일시적으로는 떨쳐버릴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과가 기대를 배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정권의 자기 정당성 주장은 결코 영속하지 않으며 대부분 차기 정권의 교훈 또는 극복의 대상으로 남을 뿐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노 대통령의 연정론이 '임기 단축' '2선 후퇴' 등으로 '기득권 포기'의 외양을 띠고 있으나 그것이 말 그대로 '모든 정치적 권리와 자산의 포기'라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이원집정부제의 대통령이 되든 아니면 내각제에서 최대 계파의 수장이 되든, 자기 영향력의 유지와 연장에 그 목적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노 대통령의 이른바 '진심'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어떠한 합의를 한다 해도 그것의 실현에는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고, 심지어 노 대통령 임기 중에 실현될지도 알 수 없기 없기 때문이다.

세째, 그렇다고 허무주의에 빠질 이유도 없다. 어차피 단임 대통령이 5대째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권 담당자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몫을 정확히 계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런 한계를 넘어 역량에 맞지 않는 시도를 할 때 불가피하게 전임자들과 똑같은 덫에 치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고서 책임을 지면 된다. '기간이 짧아서…' 또는 '야당이 협조해주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것은 국민의 위임 범위를 넘어선다.

필요하다면 대통령 단임제 헌법을 국민적 합의 아래 고치도록 시도할 일이지만 그것 역시 당대에는 적용하기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별로 관심들이 없는 것 같다. 당대에 시도할 수 있는 일이라야 고작 다른 정치세력을 흔들어서 그 일부 또는 전부를 수중에 넣고 구미에 맞는 일을 시도하는 것 정도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정치는 최근의 전직 대통령들이 실패한 전철을 되풀이해 밟을 뿐이다. 그 망상을 5대째 계속할 것인가? 그 선택은 노 대통령의 결단에 달려 있다. 노 대통령이 이같은 결단을 내리는 데에는 아무래도 '미래'보다는 '과거'가 훨씬 생산적인 준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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