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단축' 발언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내부에 각각 새로운 갈등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양당 지도부에게는 기존의 입장을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한 반면, 지도부와 다른 견해를 보여 온 의원들에겐 오히려 반발의 강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대연정' 논란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문희상 "대통령 진정성 읽었다" vs 송영길 "청와대만 이해된 것 같다"**
열린우리당 내에선 "워크숍을 통해 간신히 감정을 걸러내고 왔더니 대통령이 또다시 '임기 단축' 발언으로 불을 지핀 것 같다. 도대체 노 대통령의 속내를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에 문희상 의장은 31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청와대 만찬에서 우리는 지역구도 극복과 정치문화의 획기적 개선이라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읽을 수 있었다"며 "이제 좀 더 지혜와 뜻을 모으고 좁혀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단속했다.
문 의장은 "지역구도 극복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핵심과제로, 여야가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망국적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 이 문제의 실마리를 풀 것을 제안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구도 극복의 과제는 여야의 의무이기에 정기국회에서 선거법 개정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의장은 "여기에는 어떤 계략도 없다"며 "한나라당도 시대적 과제를 미루지 말고 역사와 국민앞에 책임지는 자세로 협상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정세균 원내대표를 비롯한 다른 지도부들은 노 대통령 발언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송영길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임기 단축' 발언에 대해 "선의로 해석하자면 대통령의 확고한 신념을 확인한 반어적 표현이 아니겠느냐. 나로서는 더 이상 대통령과 논쟁하고 싶지 않다"며 곤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 청와대 만찬이 당청간의 이해에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는 "한 쪽(청와대)만 이해가 된 것 같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다른 의원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답답하지 뭐"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다만 "지금 상태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는 견해 차이가 있지만 청와대와 논쟁해봐야 이득이 없을 것 같다"고 당내 논란으로 비화되는 분위기를 경계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이것을 수용하겠다고 나온다면 그때부터 논쟁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 의원은 이어 "대통령이 권력을 내주겠다고 한 마당에 한나라당은 정기국회에서 내각 총사퇴 등 관성적 비판으로 몰아갈 것이 뻔하다"며 "야당도 그렇게 싸우지 말고 부동산 정책 등 경제활성화와 관련한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이 문제가 정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피력했다.
***강재섭 "盧, 히틀러 같은 방식" vs 고진화 "이미 우리당과 정책연합 해 왔다"**
뒤숭숭하기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 당 지도부는 히틀러의 선전선동 정치를 빗댄 비난이 나왔지만,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연정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촉구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31일 홍천 워크숍에서 "히틀러 전기를 보면 자신의 통치는 라디오와 확성기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한다. 라디오를 통해 목소리를 전하고 확성기를 통해 목소리를 키워 국민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국민에게 강요한 것"이라며 "노 대통령은 히틀러 같은 방식으로 목소리를 키우고 정치의 중심에 서겠다는 생각을 끊어야 한다"고 비난했다.
강 대표는 "노 대통령이 임기를 다 바친다느니 정리하는 마음으로 무얼 한다느니 했는데,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억조창생을 책임지는 자리"라며 "벌써부터 나는 그만두고 정치를 정리하겠다는 것 자체게 국민들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어 "노변정담으로 조용하게 해 나가는 대통령이 정치를 잘했다"며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최병국 의원은 "노무현 정권은 해괴한 논리를 동원해 사회를 혼란시키고 있다"며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말을 1년동안 12번 했는데, 한나라당은 이런 와중에도 중심을 잡고 불안한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할 중차대한 임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 의원은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속담이 있는데, 노무현 정권의 황당무계한 처사에 대한 욕을 많이 하지만 우리도 닮아가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고 정면대응 자제를 당부했다.
반면 소장파 의원들은 연정에 대한 진지한 대응을 촉구해 지도부와 입장을 달리했다.
고진화 의원은 "연정에 대한 여러 발언에 대해 논의를 중단하고 입 조심하라는 것이 당 지도부의 입장인 것 같은데, 연정이 위헌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3당합당 방식도 다 위헌이냐"고 반박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을 때 '뉴 DJ 플랜'이 있었다. (우리도)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고 의원은 한발 나아가 행정수도특별법, 과거사법, 부동산 관련법 등을 거론하며 "이미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과 정책연합을 해 왔다"며 "큰 강이 있어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그러나 맹형규 정책위의장이 제안한 DJ를 매개로 한 민주당과의 연대에 대해선 "호남과의 연대론이 당론인 양 얘기하는데 이에 대해선 반대한다"며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을 다시 정치에 등장시켜서 뭐 하자는 것이냐. 지역주의를 정면돌파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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