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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인간으로 마지막까지 살다 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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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인간으로 마지막까지 살다 가는 법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인간의 일생

"버스가 저만치 와서 정류장까지 몇 발자국 뛴다는 게 그만 자빠져 버렸네. 사진 찍어 보니 뼈는 괜찮다는데 자고 일어나면 옆구리가 아파서 죽겠어. 병원서 소염진통제랑 위장약 처방은 받았는데 침도 같이 맞으면 더 빨리 나을 것 같아서 왔네."

일을 조금만 무리하면 허리가 아프다고 치료를 받던 어르신이 오늘은 부상을 입고 오셨습니다. 평소에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성격이 급해서 매사 조금 느긋하시라 했지만, 타고난 성격이 그렇다며 한방에 낫게 해달라고 하시는 분입니다. 침을 놓으면서 어르신들은 넘어지는 것하고 감기를 제일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외상과 감염은 회복력이 떨어진 노년층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위험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이 환자처럼 나이가 들면서 몸을 조정하는 기능에 문제가 생겨 다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몸이 마음을 못 따라가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매사 조금 속도를 늦추라 당부하지만, 마음은 지금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데 몸이 그러질 못하니 환자 중에는 치료를 받다가 한숨을 쉬는 분도 종종 있습니다. 세상만사 흥망성쇠가 당연하지만, 그것이 내 입장이 되고 보면 꽤 서글픈 일이 되는 듯합니다.

직립은 현대문명을 낳은 인간 진화의 혁명이지만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요통입니다. 구조적으로 큰 물리적 스트레스를 받는 허리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무너지면서 발생하지요. 인간의 아이가 꽤 오랜 기간 돌봄이 필요한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는 것 또한 직립보행을 위한 골반구조가 가져온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리한 점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직립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인간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 혁명적 선택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한의학의 경락이론 중 기경팔맥(奇經八脈)의 내용은 우리 몸에 나타나는 다양한 생리현상과 질병에 관계가 있는데, 특히 직립보행을 위한 구조적 프레임을 설명하는데 유용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일생을 바라보면 중년이후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신체기능의 쇠퇴를 조금 뒤로 미루는데 유용한 팁을 얻을 수 있을 수 있습니다.

막 태어난 아이는 가만히 누워서 입으로 모유를 먹고 코로 숨 쉬고 배설하고 잠을 잡니다. 물론 팔다리의 움직임은 있지만 이때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주가 됩니다. 이때 발달하는 것이 몸통의 전면에 있는 임맥(任脈)입니다. 외부의 것을 받아들여서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축적하는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 아이는 목을 가누기 시작하고 스스로 하는 움직임을 키워나갑니다. 뒤집기를 하고 기어 다니지요. 이 시기에 발달하는 것이 척추라인으로 대표되는 독맥(督脈)입니다. 축적된 에너지를 기반으로 고개를 들고 자신을 세우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발달하는 곳은 대맥(帶脈)입니다. 마치 벨트처럼 허리를 감싸고 있는 프레임입니다. 주로 아이가 앉기 시작하면서 강화되기 시작합니다. 상하로 세워진 구조물을 타이트하게 묶어줌으로써 구조적 안정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것을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역도선수의 허리벨트입니다. 시합에 나가면서 강하게 조여매서 일시적으로 대맥에 힘을 가해 무거운 역기를 위로 들어 올리고 버티는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어쩌면 권투와 같은 격투기 선수의 챔피언 벨트는 강한 대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앉기 시작한 아이는 드디어 일어서기 시작합니다. 물건을 잡고 일어서고 어른의 손을 잡고 일어섭니다. 중력을 이겨내고 비로소 직립인간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이 때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충맥(衝脈)입니다. 나를 땅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에 반해 거꾸로 오르는 연어처럼 위로 밀어 올립니다. 하체와 허리 그리고 아래뱃심으로 표현되는 영역으로 우리가 두 다리로 바로 서는데 중심이 되는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선 아이는 중심을 잘 잡지 못하고 자꾸 넘어집니다. 직립의 구조는 갖췄는데 안정적이지 못하지요. 이 비틀거리는 과정을 통해 발달하는 것이 유맥(維脈)입니다. 양유맥과 음유맥으로 구성되는 이 기맥은 마치 밧줄로 묶는 것처럼 직립의 구조를 내측과 외측에서 단단히 묶어주어 구조를 안정시킵니다. 이 프레임이 발달하면 아이는 짱짱하게 서게 됩니다.

안정적으로 서게 된 후에는 걷고 뛰게 됩니다. 이 때 발달하는 것이 바로 교맥(蹻脈)입니다. 교맥 또한 음양으로 나뉘는데, 앞선 유맥처럼 인체의 내측과 외측에 존재하면서 걷고 뛰는데 필요한 구조를 만들어줍니다.

이렇게 완성된 구조는 10대와 20대를 통해 성장 발전하고 30대에 접어들면서 완숙한 경지를 이루고 유지되다가 40대가 되면서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좀 더 나이가 들게 되면 뛰는 것이 잘 안되고 걷는데 뭔가 힘이 없고 안정적이지 않게 됩니다. 지하철을 타면 의자를 먼저 찾게 되고 요통이 발생하고 관절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지요. 앉는 것도 힘들어 틈만 나면 누워있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점점 쇠퇴하다가 운이 좋으면 중병에 걸리지 않고 인간다움을 유지한 채 마지막을 맞이하고, 운이 나쁘면 가만 누워서 마치 아이처럼 외부에서 공급되는 것에 의존해서 생명을 유지하다 품위를 잃은 채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신체구조와 움직임에서 바라보면 인간은 누워 있다가 앉았다가 서 있다가 걷고 뛰다가 마지막으로 누워서 갑니다. 어쩌면 죽음을 앉아서 맞이한 선승들을 위대하게 여기는 것은 이러한 흐름을 자신의 의지로 이겨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한의학의 예방의학이라고 할 수 있는 양생법은 이처럼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변화를 막거나 늦추기 위한 방법들에 대한 고민과 연구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동작과 호흡법, 그리고 약물을 통해 구조의 붕괴를 막고 내부장기의 기능을 오래도록 보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영생이나 불로장생 같은 말로 표현하면 허황되게 들리지만, 건강수명을 최대한 연장하려는 연구였다고 말하면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진료를 하면서 중년이후의 환자들에게 태극권, 요가, 그리고 국선도와 같은 운동을 권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이런 운동법들은 조금씩 강조하는 포인트는 다르지만 그 목적하는 바는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건강수명이 연장된다면 암이나 치매와 같은 대표적인 퇴행성 질환을 예방하는데도 당연히 효과적이겠지요.

치료를 받고 또 부지런히 한의원을 나가시려는 어르신께 약을 타드리면서 동사무소에서 하는 요가교실에 등록해보시라 말씀드렸습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그냥 천천히 일주일에 두어 번 가서 흉내만 내다 오시라고 했습니다. 한 일 년 숨도 좀 천천히 깊이 쉬고 느리게 몸을 고루 움직이다 보면 지금보다 좀 덜 아프실 거라고 했지요.

알겠다고, 안 그래도 알아보고 있었는데 잘되었다며, 나가는 길에 동사무소 들려서 알아보겠다고 하며 가셨습니다. ‘과연 이 분이 올 해 안에 요가교실에 등록하실까?’ 제 안에 생긴 물음표가 느낌표로 끝맺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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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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