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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의 싸움을 축구에 빗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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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의 싸움을 축구에 빗댄다면?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손흥민, 베르통언 그리고 요리스

"조기에 발견했고 암의 성질도 온순한 데다, 무엇보다 수술로 제거 가능해요. 적당한 말은 아닐 수 있지만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수술로 눈에 보이는 것은 제거해도 암세포는 남아 있을 확률이 커요. 무엇보다 암이 발생할 정도로 망가진 몸과 마음의 상태는 그대로예요. 수술 자체가 몸에 일으키는 스트레스 또한 상당해요. 수술이 임박했으니 수술 준비에는 도움을 드릴 수 없지만, 수술 이후에는 증명된 방법들로 함께 노력하면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더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유방암 선고를 받았다는 환자는 상담하는 내내 애써 참아내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의사의 진단 순간 평생 쓸 에너지의 절반을 소모시킨다는 터널을 지나 며칠 후 수술까지 앞두고 있으니 평정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지요. 긴장을 늦추고 몸을 편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침과 뜸 치료를 한 후에, 환자와 함께 지난 시간을 복기하면서 무엇 때문에 그러한 상황이 되었는가를 짚어 나갔습니다.

무리하고 무시했던 부분들을 하나씩 체크해가면서, 환자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음에도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 결과가 지금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다음에는 수술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부분들과 해외의 유명 암센터들에서 통합의료 관점으로 검증되고 진행되고 있는 한의학적 치료들을 소개하고 그 중 환자에게 필요한 부분을 병행하기로 했습니다.

"만병의 황제라는 암까지 만났으니 이제는 이전과는 분명 다르게 사셔야 해요. 그리고 생각보다 조금 더 오래 방심하지 말고 변화를 지속하셔야 하고요."

진료를 마치고 나가면서 그 환자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주 조금은 편해졌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대여명 만큼 살 경우 남자는 5명중 2명, 그리고 여자는 3명 중 1명의 비율로 암환자가 된다고 합니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는 것처럼 장수시대의 이면에는 암이나 치매와 같은 다양한 퇴행성 질환들이 따라오게 되었지요. 개인적 경험으로도 암이 더는 드라마의 반전소재가 되지 못할 정도로 흔한 질병이 되었음을 느끼곤 합니다.

다양한 생물학적 발견들이 암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지만 아직 많은 환자들이 받고 있는 것은 표준 치료라고 불리는 수술, 즉 항암제, 방사선 치료입니다. 이러한 요법들은 어떻게 해야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느냐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는 관해(remission)의 상태에 도달하거나 부분 관해를 통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요.

이런 방식이 드러난 것을 제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채택해야 하는 방법이라는 데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충분하냐는 부분에서는 의문이 듭니다. 앞서 말한 대로 완벽한 제거가 현실적으로 힘들고, 암세포를 품고 있는 사람은 변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는 그냥 운이나 운명에 맡겨야 할까요? 표준 치료의 효율을 높이고 환자의 삶의 질이나 암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축구 경기에 비유하곤 합니다. 축구의 재미는 무엇보다 많은 골이 터지는데 있습니다. 최고의 공격수들이 화려한 플레이로 상대방의 골문에 골을 넣으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관객의 함성이 터져 나옵니다. 경기의 최고 수훈 선수는 대부분 골을 넣은 선수가 되기 마련이고 연봉 또한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골을 넣는 것이 꼭 경기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비가 무너지고 골키퍼가 실수를 해서 실점을 더 많이 한다면 화려했던 공격수의 플레이는 빛이 바래고 경기는 패하게 됩니다. 또한 미드필더와 수비수의 기량이 탄탄하지 못하면 공격수 또한 제 기량을 발휘하기 힘들어 집니다. 상대방의 집중마크 속에 제대로 골을 다루지 못하거나 좋은 패스를 받지 못해 골을 넣지 못하고 존재감을 잃게 되지요.

여기에 경기결과에는 12번째 선수라고 불리는 팬들의 힘도 상당히 작용합니다. 홈경기에서 쏟아지는 관중의 응원은 우리 편 선수들의 기는 살려주고 상대편 선수는 위축되게 만듭니다. 각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팀치고 확실한 공격과 탄탄한 수비, 그리고 열렬한 응원을 보내는 많은 팬을 갖지 않은 경우가 없습니다. 이 삼박자가 맞아야 경기를 지배할 수 있지요.

암 치료에 있어서 수술과 항암제, 그리고 방사선치료는 공격수와 같습니다. 암세포 제거라는 골을 넣기 위해 단독으로 혹은 복합적으로 공격을 합니다. 그런데 만약 환자의 몸이 이러한 공격을 충분히 뒷받침 해주지 못하면 공격은 무위로 돌아가거나 더 많은 실점을 해서 관해의 상태에 이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득점보다 실점이 많아서 경기에서 패배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러한 공격을 뒷받침 해줄 미드필더나 수비수 역할을 할 수 있는 요법 또한 필요합니다.

이 부분에서 병과 함께 사람이란 생태를 함께 고려해 온 한의학적 방법들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침의 암 치료 효과는 다양하게 검증이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적합한 한약의 복용이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의 독성을 완화하고, 항암효능을 증진시키며 삶의 질의 개선과 생존기간 연장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논문들도 나와 있습니다. 또한 면역반응을 증진하고 항암기능을 조절하는 효과도 있다고 하지요. 공격의 효율을 높이고 실점의 위기를 막음으로써 승리의 확률은 키우고 패배의 확률은 줄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더는 공격이 의미가 없어졌을 때 남은 시간의 질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가족과 사회적 환경과 같은 요소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환자가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지 않고 투병을 이어가고 남은 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주변의 지지는 축구선수에게 홈 관중의 응원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MD 앤더슨 암센터의 통합 의학센터 모델을 보면 표준 치료를 통한 암의 제거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영적, 그리고 사회적 영역에서 다양한 요법들을 통해 환자에게 최적화된 건강 회복과 치유를 제공하고, 보다 나은 임상결과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골을 넣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경기에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지요.

얼마 전 유럽 챔피언스 리그 8강전에서 포기하지 않고 멋진 결승골을 넣은 손흥민 선수는 최고의 찬사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몇 번을 리플레이 해서 봐도 감탄이 나올 명장면이었지요. 하지만 만약 베르통언이나 요리스와 같이 좋은 수비수와 골키퍼가 없었다면 팀이 그 한골로 승리를 거두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병이 중할수록 그것을 없애는 것에만 골몰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조금 떨어져 전체를 조망하는 여유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골을 넣고도 경기에 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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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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