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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은 토요타를 반면교사로 삼아라"

[인터뷰] 강상중 "日 민주당 정권 무너지면 정치 냉소주의 올 것"

2009년 8월 28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토요타의 '렉서스 ES350'이 시속 190㎞로 달리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일가족 4명이 사망했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약 반 년 후 리콜 사태를 맞은 도요다 아키오 토요타 사장은 고개를 숙였다.

2009년 8월 30일. 일본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단독 과반수를 차지하면서 자민당을 대파했다. 전후 54년만에 첫 정권 교체였고, 자민당 장기 지배 체제가 막을 내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틀 차이로 발생한 두 사건은 지난 6개월간 일본인의 의식 그래프 속을 정반대로 가로질렀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몰랐던 렉서스 사고는 차후에 크게 부상해 일본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으며, 대다수의 일본인을 열광케 했던 정권 교체는 점차 그 의미와 감동이 옅어져만 갔다.

일본 경제를 상징했던 토요타의 몰락과 일본 정치의 유일한 희망으로 등극했던 하토야마 정권에 대한 실망감. 혹자는 섣불리 '일본은 없다'고 단정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프레시안>이 11개월 만에 만난 강상중 도쿄대 교수는 침착했다.

그는 토요타 사태를 일본의 몰락이라 여기며 낙담을 부추기기보다 글로벌 기업들의 국제적인 문제 대응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또 정치자금 문제와 '말 뿐인 자주외교'로 국내외적 난관에 봉착한 하토야마 정권에는 '무리야'를 외치는 대신 슬기롭게 극복하라는 조언을 했다.

강상중 교수가 일본 경제·정치에 던지는 코멘트는 우리에게도 울림이 크다. 재일교포라는 정체성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 기업'이라는 미명 하에 보호받는 일부 대기업, 정치 피로감을 호소하는 국민들은 한국 신문지면에도 숱하게 오르내리는 화두이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1950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서 태어나 1972년에 자신의 본명을 쓰기 전까지 '나가오 데쓰오'란 이름으로 산 재일교포 2세 지식인이다.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은 한국인 가운데 최초로 도쿄대의 교수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독특한 정체성, 자유로우면서도 점잖은 문장과 발언, 베스트셀러 제목으로도 유명한 '고민하는 힘'으로 현재 한일 양국의 학계·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9일 오전 '재일(在日) 논객 강상중이 본 신(新)한일관계' 강연(☞관련 기사 : "강상중, 일본의 오바마가 돼라") 후 그를 만나 강연에서 못 다룬 현안에 대해 물었다.


▲ 강상중 도쿄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삼성이 국가 기업이라는 생각 버려야"

프레시안 : 최근 한국에서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이 나왔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광고와 기사가 언론사 지면에 실리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강상중 : 그런 일들은 과거 일본에서도 일어났다. 주인공은 바로 얼마 전 큰 타격을 입은 토요타다. 토요타의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전 회장은 과거 게이단렌(經團連·일본 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일본 경제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던 인물이다.

오쿠다 전 회장은 이번 리콜 사태 전, 토요타가 막강한 광고주였던 시절 토요타나 토요타의 상품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방송에는 광고를 안 내도 된다는 입장이었다. TV 방송국으로선 자동차 광고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 리콜 사태로 알게 된 것은 토요타 같은 글로벌 대기업일수록 이런저런 '노이즈'가 많은 편이 궁극적으로 회사에 좋다는 사실이다. 이걸 경영자가 알아야 한다.

'토요타는 하이브리드카를 만들면서도 조직은 하이브리드가 되지 못했다'는 농담이 있다. 토요타는 본부를 전부 아이치(愛知)현에 두고 있는데, 기업은 점점 글로벌화 돼가고 있지만 사태에 대한 대응은 아이치현에 머무르고 있었다. 기업이 세계적 브랜드가 되는 이상 해외 현지에서 겪는 문화적 마찰을 포함해 여러 가지 일들에 대응해 나가야 하는데, 토요타엔 그런 내성이 부족했던 것이다.

삼성은 토요타 사태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토요타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성이란 조직도 좀 더 유연성을 갖고 내·외부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만약 <삼성을 생각한다>가 일본에서 번역되어 나간다면 저자가 비난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코리아의 자존심'인 삼성의 문제를 일본에 고발했다고.

강상중 : 일본도 그렇지만 한국도 아직까지 내셔널 브랜드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일본에서는 토요타 리콜 사태를 미국의 모략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미국이 포드나 GM을 돕기 위해 '토요타 때리기'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니라고 본다. 토요타는 미국 3개 주에서 고용 하나로만 수십 만 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상적인 '미국의 브랜드'다. 삼성도 그렇지 않나.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기도 하지만 이미 '세계의 삼성'이 돼버렸다.

앞서 말했듯 세계적 기업이 될수록 현지화가 더욱 진행될 것이고 리콜을 비롯해 소비자의 불만이나 여러 가지 마찰을 겪을 수 있다. 그렇다면 조직부터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삼성이 '한국의 삼성'으로만 머무르지 않으려면 역시 국내외의 다양한 비판을 흡수하고 그것을 수정할 수 있는 현명한 조직이 돼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글로벌 기업으로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변화가 일어나느냐 아니냐는 삼성에 달려있다.

프레시안 : 일본인들이 토요타에 갖는 애착은 각별한 듯하다. 이번 사태로 일본인들이 겪는 절망감의 정체는 무엇인가?

강상중 : '모노즈쿠리'(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일본의 장인 정신)의 신화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만든 건 늘 우수하다는 의식이 바뀔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물건을 만들 때 안전성이나 품질을 더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고 하는 시각과 함께 일본의 모노즈쿠리는 이것으로 한계에 다다랐으니 다른 무언가를 개발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프레시안 : 토요타 사태는 경제대국 일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이런 일들이 터지면서 일본의 총체적인 쇠퇴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강상중 : 확실히 요즘 일본이 기운은 없어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곧 쇠퇴할 일은 없다고 본다. 문화를 예로 들면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현상이나 애니메이션, 코스튬플레이 같은 일본 특유의 대중문화가 여전히 힘을 갖고 있다.

단지 경제력은 확실히 총체적인 하락세를 걷고 있기 때문에 문화적 대안과 상관없이 한계가 오고 있다는 의식은 있다. 그래서 역으로 일본 바깥의 것을 추종하는 움직임도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 강상중 도쿄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사람들이 정치 버리는 게 가장 두렵다"

프레시안 : 일본 정치 얘기를 해보자. 강연에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起夫) 정권은 집권 자체에 의미가 크다고 말했는데,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는 이유는?

강상중 : 정치자금 문제가 크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보다 훨씬 적은 정치자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결국엔 자살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일본 국민들은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 민주당 간사장에게 '부르투스…너마저!'와 같은 의식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존의 미디어가 이 일을 크게 부추겨 '앙시앵레짐화'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본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에도 정권 교체와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물론 민주당 정권 안에도 문제는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정권 교체의 의미는 매우 컸다고 생각한다. 또 이들이 최소한 4년은 버텨주어야 국민이 원했던 변화가 가능하리라고 본다.

만일 민주당이 여기서 무너지면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가 만연해 질 것이다. 그러면 일본 정치는 시민들의 냉소주의 속에서 강한 포퓰리즘의 논리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있다. 나는 이렇게 정치를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가장 무섭다. 일본이 인기영합주의 정치로 나가면 외교적으로 중국이나 한국에 대해 강경하게 맞설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의 관심이요 감시다. 감시를 게을리 하면 정치는 어느새 극단에서 극단으로 찢어져버리고, 극단화는 사회적으로 타격을 준다. 정치는 자신이 관심이 없다고 버려도 언제까지나 뒤쫓아 오는 문제다.

▲ 강상중 도쿄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민주당이 대북정책에서 자민당과의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나카이 히로시(中井洽)공안위원장(납치 문제 담당상) 같은 사람은 북한 문제에 대해 자민당보다 더 강경하다.

강상중 : 북한 문제는 매우 예민한(delicate) 문제로, 일본 국내 여론을 고려해야 함은 물론이고 북핵 문제를 끼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독자적으로 (다른)외교를 추진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나는 가까운 시일 내로 6자회담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 핵 문제에 대한 진전을 보인다면 일본은 이 움직임에 맞춰 독자적인 외교를 추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6자회담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하토야마 정권은 자민당이 해왔던 것과는 다르게 한국·중국과의 관계도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재일조선계학교를 제외한다는 논란이 있다. 이는 민주당이 일본 내 반북 여론을 고려한다는 측면으로 볼 수 있는가.

강상중 : 그렇지 않다. 그 문제는 최근 오히려 여론에 의해 하토야마 정권이 차츰 '톤 다운'하는 추세다. 하토야마 총리는 처음에 조총련이나 조선학교에 대해 잘 몰랐던 모양이고, 이 상황에서 나카이 공안위원장이 '북한은 납치 문제로 제재 대상이고, 따라서 북한을 지지하는 조선학교는 빼자'고 주장했다. 여기에 하토야마 총리가 '조선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 수 없다. 시찰해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비판이 커진 이유는 애초에 문부과학성이 이 정책에 조선학교를 포함시켜서 예산을 짰기 때문이다. 또 조선학교 졸업자들에게 도쿄대, 교토대 등 대학 시험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처럼 대학이 조선학교 졸업자들을 받아들이는 이상 고교 무상화 문제에서 그 학교가 배제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전부는 아니지만 미디어도 점점 '조선학교를 제외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사민당은 물론 재일교포 지방참정권 부여에는 반대하는 국민신당도 고교 무상화 정책에 조선학교를 포함시켜야 한다는데 찬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정치 문제와 떼어서 교육 문제로 생각하자는 추세이며, 그 방향에서 결론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나란히 서 있는 하토야마 총리와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프레시안 :
지난 3·1절 기념식 기념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에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았다.

강상중 : 이명박 정권이 재일교포 지방참정권, 역사 문제, 천황 방한 등의 문제에 대해 현재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인 민주당을 향해 '확실한 반응'을 보여주길 바란다는 일종의 러브콜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 정권 내에도 약 3개 정도의 다른 입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방참정권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어쨌든 이 대통령은 일본에 대한 비판을 삼가는 대신 논쟁적인 현안에 대해 일본 나름의 반응을 보여주길 원하는 것 같다.

물론 (두 정권의 그런 의사소통이)잘 될지 안 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건 오는 7월의 참의원 선거에 달렸다. 선거를 통해 하토야마 정권이 안정화하면, 한일 양국의 논쟁적인 문제들에도 대화의 모멘텀이 생긴다고 본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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