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在日) 논객 강상중이 본 신(新)한일관계'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강연에서 강 교수는 한일관계의 쟁점별 해결책, 향후 일본 정치의 미래 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강연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다.
강 교수는 리버럴한 입장에서 일본의 정치와 사회에 날카로운 비판을 하면서 일본 사회에서 강한 발언력을 확보하고 있는 지식인이다. 재일동포 2세로 일본에 귀화하지 않은 한국 국적자 중 최초로 도쿄대 교수가 됐다.
저서로 <재일 강상중> <동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애국의 작법> 등이 있고 작년에 나온 <고민하는 힘>은 일본에서만 1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편집자>
"일본 정치, 새로운 한일관계의 주요 변수"
▲ 강상중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일본 언론들이 농담 삼아 나를 '도쿄대의 욘사마'라고 부른다. 최근 일본에는 김연아 신드롬도 불고 있다. 그러면서 언론들은 일본이 한국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일본 가전업체 전체의 매출을 합쳐도 삼성의 매출이 더 높다. 토요타 충격도 있었고, 반대로 한국의 자동차에 대한 평가도 급속히 좋아지고 있다. 부품·소재 산업에서는 일본이 여전히 앞서가기 때문에 한국의 대일 무역 적자 문제가 있지만,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평가는 크게 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본에서 정권 교체가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에 획기적이고 놀랄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정치 현실은 대단히 혼돈스럽다.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 일본 정치는 중요한 요소다.
친밀한 한일관계를 저해하는 요인은 역사 문제, 독도 문제, 북한에 대한 입장,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 문제, 한일간 무역 구조 이렇게 다섯 가지다. 이런 문제를 제외한다면 한일관계는 좋아질 것이다.
최근 일본 내각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일관계가 양호하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70%였다. 중일관계가 좋다는 의견은 35%, 미일관계는 80%가 양호하다고 답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연간 인적 교류는 1만 명이었는데, 현재는 연간 500만 명이다.
"제팬 이즈 넘버 원 시대 끝났다"
일본의 정권 교체 이후 새로운 한일관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일본의 국내정치적 흐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과거 한일간의 정치적 채널은 자민당 정권이 영구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만들어졌다. 60년 동안 그런 전제 하에 한일관계가 구축됐다.
이번 정권 교체는 그 차제로서 의미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G7, G20을 통틀어 정권 교체가 없는 나라는 일본 밖에 없었다. 오자와 이치로라는 자민당 내 보수 세력에 있던 사람이 나와서 정권 교체에 큰 힘을 실어 줬다. 그는 러시아의 푸틴 (현 총리) 같은 사람이다.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여러 면에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정치를 바꾸는 힘이 있다.
정권 교체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일본의 언론과 정치학자들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민주당 정권은 세 그룹의 복합체이다. 첫째, 민주당 오리지널 그룹으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국가전략상 같이 민주당을 만든 사람들이다. 둘째는 오자와 간사장 같이 자민당 출신 그룹이다. 셋째는 구 사회당, 사민당 그룹으로 홋카이도(北海道)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이다.
향후 일본 정치를 가르는 정책적 분기점은 세 가지 정도가 있다고 보는데, 첫째는 가치관을 둘러싼 문제다. 미국에서 종교, 가치관, 동성애, 인종 문제 등 국내적 가치에 대해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견이 나눠지듯 일본에서는 부부별성(夫婦別姓), 재일동포 참정권 등 가치관을 둘러싼 대립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시민단체 중에는 '재일한국인의 특권을 없애는 모임'이라는 배타적 국수주의 단체도 있는데, 비록 영향력은 없지만 가치관을 둘러싼 문제가 일본 정치에 큰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정책적 분기점은 중국, 한국, 북한 등 이웃 국가들과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가, 즉 역사·평화·안보 문제에 대해 아시아 인근 국가들과 어떤 파트너십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세 번째 분기점은 일미관계를 규정하는 미일 안보 문제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 현재 오키나와(沖繩) 후텐마(普天間) 기지를 둘러싼 이슈가 부각됐는데, 이 역시도 절실한 것이다.
이 세 가지 문제는 앞으로 굉장히 큰 분수령을 이룰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현재 최대 문제점은 재정 적자가 아주 크다는 것이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를 합해 재정 적자가 800조 엔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GDP 대비 100% 이상 된다. 유럽에서 재정 적자 때문에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의 경우 재정 적자가 GDP 대비 110%다.
일본 국채는 대부분 일본 내에서 처분되는데, 일본의 저축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개인 총 자산이 1600조 엔인데, 그 중에서 600조 엔은 가계부채라서 순수 자산은 1000조 엔 밖에 안 된다. 그런 상황에서 재정 적자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
5~10년 내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일본은 지금의 그리스와 같이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 못하면 국채 금리, 국내 인플레는 높아질 것이며 엔화의 가치는 급락할 것이다. 엔화의 가치는 원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데, 앞으로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날 거라고 전망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한국에 IMF 시대가 있었고, 영국도 1970년대 IMF가 사실상 지탱했다. 일본의 많은 사람들은 재정 적자 문제와 경제 성장에 대해 비관하고 있다. GDP의 경우 올해는 중국이 일본을 확실히 앞서 갈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있다. '제팬 이즈 넘버 원' 시대는 끝났고, 이제 넘버 쓰리로 떨어지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상대적 쇠퇴감을 받아들여야 한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일본 사회는 10년 후 아주 비관적인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일본과 한국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그러니 문제도 비슷하다. 사회·경제적 격차가 늘고, 성장이 둔화되고, 환율이 불안정하고,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있고, 자살률이 상승하고 있다. 한국은 이웃 나라로서 일본 경제의 구조적 어려움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전쟁 65년이 지나 아주 중요한 타이밍에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일본 정치 어디로 가나?
앞으로 일본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한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면서 민주당 정권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민당은 소멸할 가능성이 있는데 △보수·우익적인 강령을 주장하는 그룹 △다소 보수적이지만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룹 △시장의 힘을 중시하는 그룹으로 나눠질 것이다.
또한 자민당과 연립 정권을 구성했던 공명당은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을 찬성해 왔는데,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자민당 그룹과 공명당이 하나가 되어 민주당과 손잡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자민당의 55년 체제 같은 게 민주당 중심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 경우 한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아주 양호한 한일관계가 구축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최근 한국 대사가 '일본 민주당과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나 역시도 한국이 일본에서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상황이 혼미한 경우의 시나리오도 있다.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대패했을 경우. 그러면 일본 정계의 대개편이 일어날 것이다. 대체적으로 봤을 때 세 그룹으로 나눠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첫째, 미국 민주당과 거의 비슷한 리버럴 세력으로 이들은 아시아 외교나 외국인 참정권 문제에도 적극적일 것이다. 둘째, 자민당 내 양질의 보수와 공명당이 연합해 변화에 적응하는 그룹으로, 자민당에서 나와 새로운 세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지방참정권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고 적어도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
셋째,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과 같이 자민당 내 우파와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개혁 흐름을 계승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친 그룹이다. 일본 국민들은 미국이나 영국식 양당 체제가 아니라 독일처럼 세 개 정도의 정치 그룹이 있는 것을 더 선호할 것이다.
일본, '미테랑의 프랑스'가 될 수 있을까
앞서 말한 한일관계를 저해하는 다섯 가지 요소들을 하나하나 짚어 보자.
첫째, 역사 문제는 대단히 어렵지만 미래에 혹은 올해 있을 일본 천황의 방한이라거나 여러 채널을 통해 학자 그룹이 나서서 역사 문제를 조율하고 교류하면서 독일-프랑스 사례와 비슷한 형태로 풀어 나가는 방법이 있다.
둘째, 독도 문제에 대해 일본의 일부 정치가들이 망언을 하더라도 한국 쪽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독도는 이미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걸 뒤집기는 불가능하다.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이 국내 여론을 향해 독도는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라고 아무리 말해도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큰 이슈로 만들 필요가 없다. 캐나다와 미국 사이에도 영토 문제가 있었는데, (잘 풀려서) 양국 관계가 상당히 좋아졌다.
셋째, 재일동포 지방참정권은 민주당 정권이 안정되면 가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공명당도 찬성하고 자민당 일부도 찬성한다. 그러나 현재 정권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결되긴 어렵다.
넷째, 한일간 무역 역조 문제는 FTA를 본격 진행할지 말지에 달려 있다. 한국은 이 문제에 신중하게 대응하려고 하는데, 그게 맞다고 본다. 한일 FTA 협상이 진정 진행될 것인가, 어떤 형태로 양국의 경제협력이 가능할 것인가는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구상해야 한다.
다섯째, 북한 문제는 굉장히 어렵다. 한일간의 의견차가 있다. 그러나 독일 유학 경험에서 볼 때, 서독의 동방정책이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최근 공개된 외교문서는 당시 프랑스의 미테랑 정권이 처음부터 서독의 콜 정권을 지지했고, 독일 통일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처럼 남북한이 단계적으로 조금씩 접근하고 일본이 미테랑 정부 때의 프랑스처럼 한국을 지지하면 남북관계, 한일관계는 원만히 진행될 것이다. 미테랑 정부 같은 역할을 할 정권이 일본에 들어선다면 남북관계를 새롭게 전망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도 좋다는 생각이 보편화되는 건 한국에도 좋은 일이다. 일본에 미테랑 정부 같은 정권이 등장할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다.
▲ 이날 강연은 오전 8시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렸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제공 |
동북아에서는 지금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중국이 대국화하고 있고, 일본은 정치적 변동기에 있으며, 한국은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나라가 됐다. 한국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지만, 세계 정치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는 위치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한국을 두고 중국과 일본이라는 커다란 고래 사이에 끼인 작은 물고기라고 하는데, 한국은 적어도 돌고래 정도는 된다. 돌고래는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은 일본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상하는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파트너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일본의 정치는 아직 불투명하고 불안정하다. 안정되려면 앞으로 몇 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일본에 너무 큰 기대를 갖는 것도 자제해야 하고,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일 필요도 없다.
최근 일본의 한 언론이 나에 대해 '강 교수도 일본으로 귀화해서 도쿄도지사 선거에 나가서 이시하라 신타로 다음으로 도지사를 하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나도 한 번 해볼까 했다. 내가 일본의 오바마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웃음) 또 어떤 사람들은 고향인 구마모토(熊本)에서 도지사에 나가라는 말을 한다.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 바로 일본이 지금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재일동포를 통해 한국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고, 그 변화가 재일동포에 대한 시각도 바꿔줬다.
한국이 500만 해외동포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도 재일동포란 것에 더 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재일동포는 현재 5세까지 나왔는데 한국말도 못하고 한국의 역사·문화를 잘 모르면서도 국적을 안 바꾸는 아주 희귀한 사람들이다. 우린 일본인들과 공생하면서 일본 사회를 더 좋게 만들고 한국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신한다. 그런 재일동포에 대해 한국인들이 가능한 더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주기 바란다.
한국은 일본에 중요한 나라다. 한일관계가 독일-프랑스 같은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 독일 유학 시절 프랑스에 간 적이 있었는데 두 나라 말로 나오는 방송이 있었다. 한일관계도 그렇게 되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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