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탈퇴한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을 아시아에 배치할 의사를 밝히면서 한국도 그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드 문제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4일 중거리 미사일의 아시아 배치와 관련해 "해당 지역 동맹 및 파트너들과 협의를 거쳐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중국 관영 매체인 <글로벌 타임스>는 5일 사설에서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공세적 아시아 정책의 총알받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한국 국방부도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이 5일 브리핑에서 "미측과 중거리 미사일 도입과 관련해 논의하거나 자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으며 그럴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런 방침을 고수하길 바라지만, 미국으로부터 불길한 신호도 나오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올해 2월 INF 조약 탈퇴를 공식화한 직후부터 이 조약이 금지해온 미사일 개발 및 시험 계획을 입안하고 있었다. 3월 초순 미국 언론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펜타곤은 3가지 신형 미사일 시험발사 계획을 밝혔다.
사거리 960km의 순항 미사일과 2400~4000km의 탄도미사일, 그리고 최대 사거리가 499km인 육군전술미사일(Army Tactical Missile System)의 사거리를 늘려 정밀타격미사일(Precision Strike Missile)을 개발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이 있다. 960km의 순항 미사일과 정밀타격미사일은 미국 영토인 괌은 물론이고 일본에 배치해도 중국에 다다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미국이 아시아에 이들 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할 경우 그 후보지는 중국과 가장 가까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비책을 세워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사드와 공격용 미사일이 맞물리면
한국이 미중간의 군비경쟁에 휘말리면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미 한국에 배치된 사드와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한국 배치가 맞물릴 경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이 한국에 미사일을 배치하면 중국도 미사일 기지를 타격 범위 내에 넣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드를 비롯한 미사일 방어체제(MD)의 군사적 필요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방어용 미사일과 공격용 미사일 경쟁이 다차원적으로 맞물리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에 버금하는 상황이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이지만 미국 미사일이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에 따라 우리도 다차원적인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우선 어떠한 상황에서도 미국의 미사일 배치를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선제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래서 미국 강경파들이 미사일 배치를 꿈도 꾸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으로 미국에 말하든 이러한 입장 천명은 '코리아 아마겟돈'을 예방할 수 있는 첫 번째 조치에 해당된다.
방위비 분담금을 올려주면 안 되는 이유
또한 방위비 분담금도 절대로 인상해주면 안 된다. 이건 돈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은 한국이 준 방위비 분담금도 다 쓰지 못하면서 안하무인격으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아도는 분담금을 어디에 쓰게 될까? 그 용처는 2017년에 주한미군 사령관이 밝힌 바 있다. 사드 기지를 "성능 향상"하는 데에 전용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마찬가지다. 미국이 한국에 미사일을 배치하려면 관련 시설이 필요해진다. 남아도는 방위비 분담금을 여기에 쓸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하여 방위비 분담금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조정하는 것은 '코리아 아마겟돈'을 피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조치에 해당된다.
아마도 미국이 한국에 미사일 배치를 제안할 경우 그 유력한 근거로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 논리도 갖춰둘 필요가 있다. 그 근거는 이미 국정원이 밝힌 바 있다.
서훈 국정원장이 8월 1일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은 미사일 시험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올해 북한보다 사거리가 더 길고 더 강력한 미사일 훈련을 진행했다"고 답한 것이다. 즉 한국의 지대지 미사일 능력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만큼 미국이 미사일을 배치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미국에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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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wooksik@gmail.com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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