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초대 주일대사를 지낸 이수훈 전 대사(경남대 교수)가 일본 정부의 '백색국가(화이트 리스트)' 제외 결정에 대해 "전면적인 경제전쟁이 시작된 것"이라며 "이제는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수훈 전 대사는 지난 2일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와 만난 자리에서 "일본 정부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 전 지사는 이날 내년에 열리는 제15회 제주포럼 대주제 선정을 위한 회의 참석차 제주를 찾았다.
이 전 대사는 지난 2017년 10월 주일대사에 부임해 지난 5월까지 일본에서 이번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을 최일선에서 지켜봤다. 그 동안 "외교적 해법"을 강조해왔던 그지만, 일본 정부의 '화이트 리스트' 제외 결정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특히 그는 정치권 일부에서 정부를 향한 '외교적 노력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대해서는 "지금은 전쟁이기 때문에 싸워야 할 때"라며 "당의 구별도 없어야 되고, 당연히 여·야의 구별도 없어야 된다. 정부 대 기업의 구별도 없어야 되고, 국민들도 단합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나 일본대사․영사관 앞 1인 시위 등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감정을 자발적 방식으로 표출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인터뷰는 지난 2일 오후 7시 제주시내 모처에서 이뤄졌다. 7월30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 언론과 가진 첫 인터뷰였다.
-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급기야 일본 정부가 2일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각의 결정을 했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
"일본 정부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이제는 싸울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정부, 기업, 국민들이 단합된 모습으로 이 상황에 엄중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 문재인 정부 초대 주일대사(2017.10~2019.5)를 지냈다. 일본의 경제보복 빌미가 된 게 작년 10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다. 당시 일본 분위기는 어땠나.
"판결 당시 일본 외무성에서 나를 바로 초치했다. 고노 다로 외무대신이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법에 위반된다면서 바로 시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고노 대신이 목소리를 높이는 등 당시 분위기는 아주 험악했다."
- 지난달 30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현지 고위 관계자들을 면담한 것으로 안다. '화이트 리스트' 배제 결정을 예견했나.
"대사직에서 물러난 이후 처음으로 도쿄를 방문했다.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 제가 대사로 있을 때 긴밀하게 관계를 맺었던 정치 지도자, 언론인들을 만났다. 가서 보니까 아닌게 아니라 만난 사람들마다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들은 '총리를 비롯한 각의의 의지가 매우 강하다. 100% 통과될 것'이라고 했다."
- 일본 정부의 '화이트 리스트' 제외 결정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범여권에서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로 맞대응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 반면 자유한국당은 이를 '자해행위'로 규정하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일간 군사정보 교류를 위해서는 상호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오늘(2일) 일본 정부의 조치는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뢰할 수 없는 상대방과 어떻게 북한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겠나. 심각하게 검토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 그 말은 곧 폐기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한국 정부를) 못믿겠다고 하니까. 못믿는 상대방과 어떻게 긴밀한 군사정보를 교류할 수 있나. 그런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 자유한국당은 우리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미흡했다고 비판한다. 대일외교 최일선에 있었던 분으로서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외교적 해법을 통해 이 문제를 풀자고 대통령께서도 직접 말씀하시고, 외교장관 면담과 의원단 파견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 외교적 노력을 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너무나 강경하면서 한 가지 입장만 고수하고 있으니까 안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기 때문에 시정할 수 있는 안을 가져오지 않으면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니 외교고 뭐고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전면적인 경제전쟁을 하는 판에 내부에서 서로 비판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지금 취할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 일각에서는 대법원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판결에 대해 '우리 정부가 기금을 통해 배상을 먼저 하고, 일본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을 제시하는데,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보나.
"지난 6월19일 한국 정부가 우리 기업과 일본 기업이 공동기금을 출연해 징용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소위 '1+1'안을 일본 측에 제시했다. 아주 힘들게 만든 안을 제안했는데, 일본 정부는 신중하게 검토해보지도 않고 바로 거부했다. 우리는 이게 최종안이 아니라, 이를 토대로 외교적 논의를 시작해보자고 한 것인데, 이게 맘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차버린 것이다. 일본 정부가 강경한 입장만 고수해서는 문제 해결의 길로 나갈 수 없다."
-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국내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번지고 있다. 2일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 결정에 제주에서도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더라. 이 같은 민간 차원의 저항운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부가 부추기는 것도 아닌데, 시민들이 불매운동이나 1인 시위 등의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자발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본다."
- 진짜 일본이 이번 '화이트 리스트' 제외 결정을 하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우리 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리겠다는 것이다. 지난 7월1일 반도체 관련 3가지 품목에 대한 조치만 해도 경제전쟁이라고 볼 수 있는데, 1100개 정도의 품목에 대한 조치는 전면적인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제조업, 수출을 하는 경제구조인데 이런 식으로 수출에 따른 여러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것은 '한국경제에 치명타를 가해보자, 그래서 도저히 못견뎌서 백기투항을 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화이트 리스트' 제외 결정을 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 중요한 것은 한·일 갈등을 해소하는 것 아닌가. 어떤 방법이 있겠나.
"이런 식으로 나온 이상 전쟁이다. 전쟁이 시작된 이상 싸울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다. 우리는 외교를 통해 갈등을 좁혀보자 시종일관 강조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너무나 강경한 자세로 임했기 때문에 갈등이 확산되는 것이다. 역사문제를 가지고 경제분야로 표출한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태도를 변화하지 않은 이상 당분간 해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 전쟁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렇다면 전선이 명확하다는 얘기다. 국내 정치권에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전쟁이기 때문에 싸워야 한다. 여기에는 당의 구별도 없어야 되고, 당연히 여․야의 구별도 없어야 된다. 정부 대 기업의 구별도 없어야 되고, 국민들도 단합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이 사태에 대한 대응이 제대로 될 것이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