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와 관련,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대신이 19일 오전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중재위 구성 요청 불응에 항의하고 유감을 표한 데 대해 청와대가 일본에 대한 대응 수위를 올리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과 관련해 "유지가 기본 입장"이라며 "(무역 보복과 GSOMIA는) 연계돼 있지 않다"던 공식 입장과 달리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모든 옵션을 검토할 것"이라며 파기 가능성까지 열어둔 발언을 했다.
김현종 "국제법 위반한 건 일본"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오늘 오전 고노 외상이 남관표 주일대사를 초치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전달하고 담화를 발표했다"며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하고자 한다"며 입을 열었다.
김 차장은 "먼저 우리가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일본 측의 계속된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며 "우리 대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강제징용자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 및 인권침해 범죄를 포함하지 않았다고 판결했고, 민주국가로서 한국은 이런 판결을 무시할 수도, 폐기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김 차장은 "정부는 일본 측과 외교 채널을 포함한 협의를 지속해 왔는데, 이런 외교적 노력이 다 소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은 일방적인 수출 규제 조치를 취했고 이는 WTO 원칙과 오사카 G20에서 발언된 자유무역 원칙, 글로벌 밸류체인도 심각히 훼손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국제법을 위반하는 주체는 일본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이어 "근본적으로 지적할 점은, 당초에 강제징용이라는 반인도적 불법 행위를 통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은 일본"이라고 직격탄을 날리며 "이런 점을 지적한 것이 대법원 판결"이라고 했다.
김 차장은 "일본 측은 부당한 수출 규제를 철회하고, 상황을 추가로 악화시키는 발언과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김 차장은 고노 외상의 '항의'에 대해 "일본은 청구권협정상 중재를 통한 문제 해결을 지속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는 일본 측이 설정한 일방적 자의적 시한에 동의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김 차장은 "일반적으로 두 국가가 중재 절차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 일부 승소 일부 패소하는 경우가 많아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고 장기간 중재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양 국민 간 적대감이 커져 미래지향적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일본 측의 중재위 안을 비판했다.
김 차장은 또 "일본은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며 당초 '과거사 문제로 인한 신뢰 저해'를 언급했다가, 이후 '수출관리상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했다'고 했고, 또다시 오늘은 강제징용 문제를 거론했다"며 "일본 측의 입장이 과연 무엇인지 상당히 혼란스럽다"고 꼬집었다.
김 차장은 "그럼에도 볼구하고 우리는 강제징용 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중요하다는 인식 하에 모든 건설적 제안에 대해 열려 있는 입장"이라며 "일본 측이 제시한 대법원 판결 이행 문제의 원만한 해결 방안을 포함해 양국 국민과 피해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일본 측과 함께 논의해 나갈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靑 핵심관계자, GSOMIA 관련 질문에 "모든 옵션 검토"
브리핑 직후,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GSOMIA 문제에 대해 앞서와 다소 달라진 기류를 시사했다. '미 국무부는 GSOMIA 연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는데, 파기 가능성이 검토된 것이냐'고 묻자 이 핵심 관계자는 "아직까지 아무련 결정이 내려진 것 없고, 질적으로 양적으로 모든 옵션을 검토할 것"이라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이 관계자는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교환하는 정보의 면에서 질적·양적으로 GSOMIA에 대해 객관적 검토를 할 것"이라며 "객관적 분석에 의거해 국익에 최선이 되는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 연장 외에 다른 선택도 가능한지'를 묻는 재확인 차원의 질문에도 "모든 옵션이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사실상 파기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한일관계가 더 악화된다면 GSOMIA 연장 재검토가 하나의 옵션이 될수 있느냐'는 취지의 추가 질문에 대해 "우리는 GSOMIA에 대해 객관적으로 심사숙고(scrutinize)할 것"이라며 "양적으로 그것(GSOMIA)이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환하는 정보의 양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질적인 면도 봐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GSOMIA)에 대해 매우 객관적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은, 한국이 일본에서 넘겨받는 군사정보는 양은 많지만 별로 쓸모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외신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에서 '매우 객관적(objecive) 검토', '심사숙고(scrutinize)' 등의 표현을 사용한 대목도 예사롭지 않다. 특히 'scrutinize'는 단순히 '검토한다', '살펴본다'는 뜻보다는 대상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아주 면밀하고 세심하게 조사한다는 뜻의 표현이다.
앞서 청와대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의 회동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브리핑을 통해 "(GSOMIA는) 기본적으로 '유지' 입장이며, 다만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면서 "원론적 입장의 발언이었다"고 했었다.
이날 오전 청와대 관계자도 '일본의 추가적 경제 보복 조치에 따라 GSOMIA를 연계시킬 수 있는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분명히 말하지만 연계돼 있지 않다"면서 "'재검토' 등의 단어가 나온 것은 (회동에서) 당 대표들께서 '이런 문제가 있으니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살펴)보겠다'는 원론적 차원의 얘기였던 것이지, 정말 그것을 하기 위해서, 즉 GSOMIA를 연장하느냐 안 하느냐 이런 것을 현재 검토하겠다는 뜻의 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나온 핵심 관계자의 말은 이와 전혀 맥락이 달라졌다. 일본과의 군사정보 교류가 국익에 이득이 있는지 면밀하고 객관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은, 청와대가 앞서 부인했던 "연장하느냐 안 하느냐를 검토"하는 차원에 명백히 속한다.
이 핵심 관계자는 오전과 오후 답변의 기류가 달라진 배경을 묻는 질문에는 "알아서 해석하시라"며 즉답을 피했지만, 당초 '유지' 쪽에 방점을 뒀던 청와대가 고노 외상의 담화 이후 좀더 강경한 톤으로 입장을 조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핵심관계자는 다만 "우리는 아직도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일본과 외교적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게 가장 좋다는 입장"이라며 "유연한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만나서 대화를 하고 일본 측의 안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도 미국 측에서 (한미일 고위급) 3자 회동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우리는 '예스'를 하고 참석하겠다고 했지만 일본이 안 했다"며 "대화를 통해 일본의 입장이 뭔지 알아야 하는데, 이런 회의마저 안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아직 우리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대화가 시작되지 않은 것"이라고 일본을 우회 비판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1+1 안'을 우리가 제안했는데, 일본은 이에 대해 뭐가 부족하다는 것인지, 만약 부족하다면 어떤 안은 받아들일 수 있는지 만나서 알아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일본 측 입장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느냐'는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일본의 이번 경제 보복이 선거를 위한 정치적 목적을 넘어 장기화될 것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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