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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러웠던 삼성 반도체 공장 역학조사관 "그게 조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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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러웠던 삼성 반도체 공장 역학조사관 "그게 조사냐"

[클린룸을 오가는 사람들] 청소노동자 손윤화 이야기 ③ 난 안 아팠으면 계속 청소 일을 하고 있을 거야

일을 한 지 7년 9개월이 됐을 때 손윤화는 유방암을 진단받았다.

검진에서 알았어요. 18년도 12월달에 연차가 많이 남아서, 난 시댁에 자주 호출받아서 갈 일이 있으니까 연차를 아끼고 아끼고 필요할 때 쓴다고 했는데 12월달에 많이 남았어. 그래가지고 '검진이나 하자' 했는데 이게 나온 거지.

2019년 1월 13일까지 출근을 하고 1월 16일날 수술을 받았다. 진단을 받고 일을 하던 시점에 바깥에서 미화 일을 하시는 노동자 분과 반입구에서 만나 우연히 유방암 이야기를 했다가 반올림에 문의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윤화는 당시 반올림이라는 이름 자체를 처음 들어봤으나 이내 반올림을 통해 상담을 거쳐 산재를 신청하게 됐다. 질병과 업무 환경 사이의 관련성을 파악하기 위한 역학조사가 시행됐다.

삼성 반도체 청소 관리자 '미스 클린'

옷 입고 들어갔어. 그래갖고 2층으로 해서 갔다가 그 심한 데 갔어. 갔는데 칸막이가 있는 데 있거든요. 그걸 딱 들어가려는데 미스 클린이 손을 탁 잡으면서 여기는 외부 사람들 못 들어간대요. 아니 지금 뭔 소리 하냐고. 내 일할 때는 여기서 얼마나 일을 했는데 이 자리를 몇 번을 했는데 왜 지금은 못 들어가게 하냐.

역학조사하러 왔을 때 한 번은 근로복지공단 직원한테 물었어. 혹시 여기 냄새 안 나냐고 했더니 뭐라는 줄 알아요. "저한테 묻지 마세요. 저 비염이라서 냄새 못 맡아요." 그게 말이야? 그럼 여기 뭐 할라고 들어왔노.

▲버터헤드를 든 윤화의 손 ⓒ박정원

미스 클린이 막아섰던 공간에는 결국 들어갔지만, 근로복지공단 직원의 태도는 심드렁했고 일했던 장소들을 빠르게 통과해 나왔을 뿐이었다.

그대로 전실로, 그대로 옷 갈아입는 데로 나가는 거예요. '아니 이게 무슨 역학 조사야. 옷 입는 시간이 더 아깝지.' 하고는 좀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원래 거기에 노무사나 변호사가 따라 들어가야 되는데 변호사, 노무사 합류 못하게 돼 있다고 한 거야. 처음에는. 그래 나 혼자 들어갔어.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대리인이 역학조사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반올림과 노동안전 단체들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대리인, 즉 노무사가 역학조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산업안전보건법 제141조)이 마련됐다. 이 사건의 경우 2020년 1월 16일 시행된 개정법의 적용을 받아 노무사가 참석한 채 재역학조사가 시행됐다.

산재를 신청한 지 2년 7개월 만인 2021년 10월, 업무상질병 불승인 판정을 받았으나 소송을 통해 2025년 11월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6년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윤화에게는 직업병이 맞다는 확신이 있었고 승소는 마땅한 결과였다.

병은 누구에게든 온다

윤화는 누구나 노력 여하에 관계 없이 언제든 아플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작업 환경도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였고 일을 하다 암에 걸렸다 하더라도 분노나 억울함은 없었다.

그리고 요즘 나이 많으나 적으나 (구분이) 없다니까. 항상 조심해야 해. ‘나는 안 그렇겠지. 왜 나한테 이게 왔을까’ 이러는데 아니야. 누구한테든 오지. 그렇지 않아요? 내가 관리를 잘한들 못한들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모르니까.

이러한 사고는 감정적으로 질병을 받아들이는 것을 수월하게 만들었지만 아픈 몸 상태는 별개의 일이었다.

몸이 항암 할 때도 그렇지만 뼈고 살이고 아프고, 뼈가 막 밑으로 잡아당겨 흘러내리는 거 있잖아요. 가습기 물이 흘러내리는 거 있죠. 그것처럼 뼈가 이렇게 촥 늘어져. 그게 수시로 그래. 수시로.

투병과 요양 기간을 거치면서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아프고 나니까 다 소용없어. 진짜 친구들이고 형제간이고 부모도 그냥 싹 다 끝났어. 2년 정도, 2년 넘게가. 내가 아프고 나면 말도 하기 싫고 그런 마음 그게 그냥 이해 가더라. 어떤 사람 전화하면 근데 사실 너무 말로만이다. 말로만. 자기가 내 대신해줄 수 없어. 말로만 하는 거는 그건 너무 아닌 거야. 되도록 그냥 가만히 두는 게 도와주는 것 같아. 그래서 다 끊었어요. 오지도 않을 뿐더러 다들 자기 바쁘고. 바쁜데 뭐 그냥 말로만 막 하는 것도 싫고 너무 위로가 안 되는 거야. 뭘로 말하든 안 되는 거야. 근데 어차피 내가 겪어야 되는 거야. 나만이 겪어야 되는 거지.

이웃집 친구가 "너무 씩씩한 거 아이가?" 내가 그러지 않으면 안 되니까 내가 그럴 수밖에 없어.

항암치료 후 시아버지 돌봄까지 떠안아

항암은 끝났지만 완치 판정은 받지 않았을 2023년경 윤화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게 됐다. 아버지를 누가 모실지 가족 내에서 설왕설래하던 중에 당시 요양을 하고 있던 며느리 윤화가 떠맡게 됐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1년 3개월가량의 시간 동안 돌봄은 이어졌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왜냐하면 사실 아버님이 나한테 잘한 건 없으니까 싫은 것도 크지만 왜 모시냐면 부모니까. 그리고 나이 들어서 측은지심이니까. 그전에 나한테 한 거 생각하면은 싫지. 근데 부모니까. 나도 자식 키우니까. 나도 늙을 거니까. 부모는 열을 거느리고 키웠는데 자식은 부모 하나 못 모신다는 거는 나는 또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째가 됐다. 윤화는 모시고 살 때는 시간이 그렇게 안 가더니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냐고 푸념했다. 돌아가신 뒤 하게 될 후회가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 안 하려고 난 최선을 다했어요. 후회 안 해. 내가 시누한테 말했어요. "형님 저 아버님 돌아가시면 후회 안 하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저 후회 안 해요." 잘했으면 잘했지. 후회 안 한다고. 왜 최선을 다했냐면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 안 하려고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랬어.

결혼을 하면서부터 남편의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윤화는 시가에 헌신과 희생을 해왔지만 돌아온 것은 의심과 질타, 비난이었다. 지금 윤화는 시가 식구들과 관계를 이어가지 않는다. 윤화는 '이용당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병 걸린 자신을 이용할 수 없으니 식구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반도체 공장 지도. ⓒ박정원

"나는 일 하는 게 너무 좋았어"

윤화는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루를 값지게 보냈다는 감각이 좋았고 무얼 하나 시작하면 그만두는 것을 더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아프지 않았다면 청소일을 계속하고 있었을 것이라 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출근을 한다는 자체가 나는 너무 좋았었거든요. 힘이 들든 안 들든. ‘오늘도 힘내서 열심히 하자’ 이런 생각에 항상 출근하고.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해갖고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아침에 졸려도 새벽에 어두울 때 나가고 겨울 같은 경우는 어두울 때 들어오고 하니까. 근데 힘들어도 갔다 오면은 ‘오늘 또 하루 지났구나’ 누워서 그럼 또 하루 시작되고 그러다 보니까 그렇게 제가 7년 9개월을 다녔다니. 병이 안 났으면 그래도 계속 다녔을 거야. 아마 그만둔다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아.

원치 않게 일을 그만둔 윤화는 나름의 일상을 다시 꾸려나가는 중이다. 어쩌면 살면서 처음으로 일도 돌봄도 없는, 윤화가 그리던 온전한 혼자의 시간을 맞게 됐는지도 모른다. 윤화는 요가를 하고 오카리나를 배운다. 그리고 꽃을 가꾼다. 투병 이후로는 별걸 하지 않아도 빨리 지치고 힘이 떨어지지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간다. 자신을 위해 보내는 시간 역시 일처럼 그만두는 것이 쉽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다.

(손윤화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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