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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0원! 촛불 외면하고 주는대로 받으라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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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0원! 촛불 외면하고 주는대로 받으라는 정부

[인권으로 읽는 세상]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중요한 것

내년 최저임금이 2.9% 오른 8590원으로 결정됐다. 표결 끝에 사용자 안이 채택된 것이다. 올해는 6월에야 회의를 시작한 최저임금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되기도 전에, 그동안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랐으니 내년에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넘쳐났다. 야당 원내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대통령이 최저임금 동결을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급기야 지난 3일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들은 내년 최저 시급액으로 4.2% 삭감된 8000원을 제시했다.

경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대체 경제가 언제는 좋았나 싶지만 지난 2년 동안 유독 최저임금이 많이 올라서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최저임금에 경기침체 책임까지 묻는 게 머쓱해지자, 아무튼 경제도 안 좋은데 최저임금까지 올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란다. 최저임금이 꽤 올랐던 지난 2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최저임금 1만 원' 운동은 이런 사정은 안중에도 없는 이기적인 요구일 뿐인가? 평균임금도 아니고, 최저임금 받고 일하는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이런 비난까지 받는 형국이다.

최저임금만 올랐을 때 벌어지는 일

최저임금은 2017년 6470원에서 2019년 8350원으로 29% 올랐다. 근래 보기 드문 높은 인상률이다. 문재인 정부는 임금이 늘면 소비가 늘어나 기업 매출이 증가하고 이는 자본 투자로 이어져 경제가 성장한다고 봤다. 핵심 정책으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추진했다. 이를 비판하는 보수진영은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를 감소시켜 더 큰 고통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2018년 고용률은 전년 대비 0.1% 줄었다. 고용절벽 운운하기에는 감소 수치가 크지도 않지만, 고용률에 영향을 미치는 경기 순환, 업종 차이, 노동시장 구조 등과 같은 여러 요소들을 통제하고 최저임금만을 변수로 상관관계를 도출하는 게 쉽지 않다. 경제학계에서는 최저임금과 고용률의 관계에 대한 여러 연구들을 발표하고 있지만 통계 설정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오고 있다.

다만 최저임금 인상에 기업과 시장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도소매음식숙박업, 중소제조업 94개 업체를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를 했다. 도소매음식숙박업은 고용을 축소하거나 휴게시간을 늘려 노동시간을 줄였고, 중소제조업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상여금을 포함시키거나 잔업 특근을 줄이는 경우가 많았다. 최저임금과 고용률이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에서도 최저임금이 오를 때 일용직-임시직의 고용률은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가구 소득이 전년보다 17.7% 감소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취업자 사이의 임금 격차는 줄였지만, 영세한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고용축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경향을 어쩔 도리가 없는 시장의 법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업종을 불문하고 규모가 작고 영세한 기업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 노동으로 이윤을 챙겨왔다. 노동자 임금을 최소화하는 게 가장 큰 이윤 창출 수단이었다. 법정 최저임금을 주면 정말 사업이 망하고 회사 문 닫아야 하는 게 아니라 이윤이 곧바로 줄어들게 된다. 사장은 자기 몫을 챙기려고 해고를 하고 남아있는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는 더 강화된다. 시장의 순리가 아니라 고용과 임금 문제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싸우기 어려운 노동자를 상대로 사장들이 '나도 힘들다'며 가하는 폭력이다.

ⓒ연합뉴스

대기업과 정부가 앞장서 만들어온 저임금 노동 착취 구조

그런데 이런 상황이 일부 영세업체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 경제 전반에서 구조화된 현상이라는 게 문제다. 이런 구조는 정부와 대기업이 앞장서 만들어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세금으로 겨우 살아난 대자본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기존 생산과정에 속해 있던 공정과 서비스 중에 노동집약적이고 생산성이 낮은 부분을 원하청, 하도급 형식으로 외주화했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경영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저임금 노동착취로 이윤을 채우겠다는 것이다.

노동 분업이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별 기업, 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을 제대로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회사, 같은 공장에서 동일한 작업방식으로 일하던 노동자들이 어느 날 별개 회사 직원이 된다. 이렇게 외주화된 회사의 회계에서는 연구개발, 신기술 도입 비용이 아니라 인건비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회사매출은 하청으로 받은 일감에 따라 정해져 있으니, 이 회사의 노동생산성이 낮게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대면서 쥐어짜기 수준의 외주화가 이루어지고, 외주화도 긴 연쇄를 이루면서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과 다수의 중소영세업체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은 분할된다.

정부도 이를 그대로 따라 했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비정규직, 파견노동, 탄력근로, 민간위탁을 장려하기 위해 각종 노동관계법을 개정했다. 공기업들이 앞다투어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외주화에 앞장섰다. 외환위기 이후 20여 년은 공공부문의 지출이 지속적으로 늘었던 때이기도 하다. 실업에 따른 사회안전망이 시급히 확충되어야 했고,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교육, 사회복지서비스도 크게 늘어났다. 공무원이 그만큼 늘어났을까? 전혀 아니다. 모두 비정규직, 기간제 계약으로 충원하거나 민간에게 위탁했다. 정부 추산으로 이러한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85만 명에 달한다. 지난 10년 동안 일하다가 사망한 집배원이 170여 명에 이르는데도 인력충원을 거부해 온 우정사업본부는 정부의 공공부문 고용정책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쥐어짜면서 아낀 예산으로 재정 흑자를 이루고 있다고 자화자찬한다. 이렇게 많은 비정규직까지 포함해도 한국의 공공부문 고용비중은 9%로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무역수지와 재정수지가 모두 흑자인 나라는 한국과 노르웨이뿐이라고 한다. 금융자본의 이해에 따라 재정 건전성에 집착하는 IMF조차 한국에 과감한 재정정책을 주문할 정도니 말 다 했다.

이렇게 대기업과 정부가 가장 손쉽게 이윤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저임금 노동 착취에 매진하면서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시장과 중소영세업체-민간위탁 비정규직 노동시장이라는 분할구조가 고착됐다. 그리고 엄청난 노동 착취는 고용률 최소화로 이어져 한국의 취업자 대비 자영업 비율은 25%로 주요국들의 두 배 이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먹고 살기 위한 일자리는 대체로 이런 삼분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이 되기 위한 피 말리는 경쟁, 비정규직 노동시장과 서비스 자영업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자리 경쟁과 최저임금을 둘러싼 '을들의 아우성'. 정부와 자본이 판을 깐 노동시장에서 개인이 택할 수 있는 건 시험에 합격해 능력을 입증받는 것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이직하는 것뿐이다. 정부와 대기업이 이런 구조를 만들고 이윤을 쌓고 있다면 저임금과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책임 역시 이들이 져야 한다.

주는 대로 받지 않겠다는 선언, 최저임금 1만 원

'최저임금 1만 원'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기 이전에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사회적 요구였다. 2017년 대선 후보들은 모두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시기를 밝힐 수밖에 없었다. 최저임금이 국민적 이슈가 되고 1만 원이라는 구체적인 요구로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각 대학의 청소노동자들,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일해 온 알바 노동자들, 제조업 공단의 중소영세사업체에서 묵묵히 일해 온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 최저임금은 가장 열악한 업종의 일부 노동자 문제가 아니었다.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최저시급을 받으면서 한 달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장시간 노동, 야간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문가들처럼 각종 경제지표를 토대로 '합리적'인 임금액을 제시하지는 못해도 함께 광장에 나온 동료들과 처음으로 희망 임금을 적어보면서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나눴다. 한 달 살림살이를 생각했을 때, 매장 매니저나 작업반장이 받는 금액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봤다. 이런 목소리들이 모여 '최저임금 1만 원'이 되었고 직장에서는 듣기 어려웠던 이런 요구들이 TV에서, 광화문 광장서 들리기 시작했다.

촛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최저임금을 올렸다. 그랬더니 중소업체들은 지불 능력이 없다고 더 올릴 수 없다고 한다. 삼성, 엘지 휴대폰 부품을 만들고,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편의점, 음식점, 커피숍에서 일해도, 구청에서 해야 하는 청소업무를 하는 건데도 사장은 돈이 없다고 한다. 정부와 대기업이 만들어 놓은 판에서 주는 대로 받지 않겠다고 노동자들이 지난 몇 년을 싸워왔다. 정부는 다시 주는 대로 받으라고 한다. 최저임금법을 개악해서 물가상승률, 경제성장률을 고려해 전문가들이 정해놓은 구간에서만 최저임금을 정하겠다고 한다. 온갖 수치를 들먹이지만 결국엔 자기들이 정해 놓은 양만 받아 가라는 것이다.

공동체가 생산한 재화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해 노동자들은 발언권이 없고, 함께 논의할 주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최저임금은 얼마나 올라야 하는지, 사용자가 이를 지키도록 무엇이 필요한지, 정부와 대기업이 져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해 노동자들이 더 많이 이야기하고 모여야 한다. 바로 이게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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