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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 건강보험을 '건강'하게 만들려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생색은 정부가 내고 부담은 국민에게 떠넘기나

올해로 국민건강보험이 서른 살을 맞았다. 1972년 일부 직장가입자만 대상으로 의료보험을 도입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1989년 7월에 모든 국민이 가입하는 제도로 완성되었다. 2000년에는 직장과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고 2005년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을 거치면서 조금씩 성장해 이제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사회안전망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병원을 다녀 온 주변 사람들로부터 '건강보험 괜찮다'는 얘기를 종종 들을 수 있고, 다른 나라서도 부러워하는 복지국가의 한 기둥을 담당하고 있다. 30년 만에 일군 자랑스러운 성과다.

건강보험 30년, 정부는 재정 역할을 다했나?


정부는 지난 달 말 국민건강보험 30주년을 기념하는 큰 행사를 열었다. 보건복지부장관을 비롯해 국회의원, 여러 보건의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함께 지켜온 30년의 약속, 함께 누리는 평생건강의 미래'라는 표어로 지난 30년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축하했다.

이 자리에서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전 국민 건강보장 30년의 성과와 함께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동안 잘 성장해 왔지만 국민건강보험 앞에 놓인 환경이 녹록치 않다. 저출산으로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부담할 사람들은 줄어드는데 고령화로 지출은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민건강보험이 지속가능하려면 꼭 풀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재정방안을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건강보험 국고지원 문제가 큰 걸림돌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정부는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4%를 국고에서, 6%는 건강증진기금으로 조달해 총 20%를 건강보험에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이 법을 시행한 지난 2007년부터 지금까지 정부는 단 한 번도 온전히 지급한 적이 없다. 해마다 조금씩 덜 지원한 결과 지난 13년 동안 정부가 지급하지 않은 지원금은 총 24조5374억 원에 달한다. 그만큼 건강보험은 성장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건강보험을 강화하겠다는 문재인 정부 들어, 오히려 정부 지원금이 줄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정부지원율은 지난 이명박 정부(2008~2012년) 때 평균 16.4%, 박근혜 정부(2013~2016년) 때 평균 15.3% 였고 문재인 정부(2017~2019년) 들어선 평균 13.4%로 떨어졌다. 올해만도 덜 지급한 돈은 2.1조 원이나 된다. 특히 올해 발표한 건강보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5년마다 수립하는 '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도 정부는 앞으로 건강보험 국고 지원을 올해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건강보험에서 정부의 재정 책임은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다.

국고지원의 기원은 건강보험이 출범할 당시인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직장가입자 보험료의 절반을 기업이 부담하는 것처럼, 당장 어려운 지역가입자 부담을 덜고자 국가도 비슷하게 지원하자는 취지였다. 건강보험의 3주체인 정부와 기업, 국민이 고루 부담하는 나름의 절충안이었다. 건강보험은 실손보험과 같은 사적 보험과 달리 공적 보험이기에 국고 지원은 정부의 당연한 의무이다. 우리처럼 사회보험 방식의 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일본, 대만 등도 우리보다 높은 수준으로 건강보험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국고지원은 국민건강보험에 의해 한시적 조치로 명시돼 있다. 이러다보니 유효기간이 만료할 때 마다 국회서 조금씩 연장하는 식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다시 2022년이면 이마저도 끝나게 된다. 상시적인 국고지원 방식으로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법 조항의 애매한 문구도 손질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법(108조)에 '국가는 매년 예산의 범위에서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00분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공단에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상당하는' 문구가 정부가 해마다 모자라게 지원하는 빌미가 되고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이후 법률을 보완해 정부가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재인 케어, 재정방안은 불명확

건강보험이 30년을 맞았지만 보장성은 여전히 부족하다. 아직 60%를 웃도는 수준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0%와 비교할 때 미흡하다. 그러다보니 건강보험만으로 병원비 걱정을 다 해결하지 못해 집집마다 매달 수십만 원씩 써가며 실손보험과 같은 민간 의료보험을 따로 들고 있다. 다행히 2017년부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문재인 케어)'으로 보장 수준은 나아질 전망이다.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70%로 끌어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재인 케어를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재원 조달은 피할수 없는 과제이다. 건강보험 누적 흑자 20조 원의 절반인 10조 원을 쓰고, 국민들이 부담할 보험료를 최근 10년간 평균 인상률인 3.2% 이내로 관리한다지만 그 다음에 대한 계획이 없다. 명확한 재정 방안이 없다보니, 과연 목표한 보장 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의구심도 든다. '생색은 정부가 내고 부담은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벌써부터 최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서도 의료계와 건강보험 가입자 단체 사이에 보험료와 보험수가 인상을 두고 큰 갈등을 겪고 있다.

▲ 해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서는 보험료와 수가 인상을 두고 갈등을 겪는다. 정부에게 국고지원 책임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가입자단체 위원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정부는 국고지원 20% 이행하라

국민건강보험 30년, 사람으로 치면 한창 열심히 일할 청년의 시기다. 지금보다 건강보험 보장 수준을 높이고 재정도 튼튼히 해 앞으로 더욱 성숙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정부의 책임 이행은 중요하다. 정부가 먼저 국고지원 20%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제대로 된 국고지원을 약속하고 의료계와 가입자인 국민을 설득하는 지혜를 발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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