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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 세력의 부활, '개혁 대 반개혁'으로 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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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 세력의 부활, '개혁 대 반개혁'으로 깨야

[최창렬 칼럼] '촛불연대' 복원을 위하여

박근혜 탄핵을 전후한 시기의 이념 분포를 보면 보수보다 진보가 많았다. 중도층도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정권교체 후 적폐수사가 이어지고, 지난 정권의 탈법적이고 불법적인 각종 농단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친박은 사실상의 '폐족'이었다. 기회는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았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은 나라를 바꿔야 한다는 시민일반의 인식이 개혁 지향의 이념으로 기운 결과다.

그러나 집권 2년 말·3년 초, 전통 보수는 자신의 진영으로 복귀했고, 중도는 여권에 대한 지지에서 한 발 물러서 있다. 20대의 지지도 촛불 때와는 달라졌다. 상층과 하층의 간극을 조금이나마 줄여보려는 정책은 성장 논리에 부딪쳐서 좌초 직전이고, 갈등 조정 능력을 상실한 정치를 바로잡을 제도화 가능성도 밝지 않다. 사회의 근본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동력을 가동할 리더십도 찾기 어려운 상태다.

정치는 거대양당에 의한 전통적 대결 구도의 양상을 띠면서 수구세력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이의 상징인 태극기 세력의 집회는 눈에 띄게 세력이 확장되고 있다. 범진보 진영은 경제침체, 집권세력의 잦은 실수, 북미 비핵화 교착으로 인한 남북관계의 지체 등으로 보수에 대한 상대적 우위를 상실해 가고 있다.

대한애국당에서 우리공화당으로 개명한 수구세력의 본진은 한국당 내의 친박을 끌어들여 본격적인 세 확장에 나서려 한다. 박근혜의 옥중정치란 말이 낯설지 않은 정치상황, 정치는 다시 진영정치의 대립 국면으로 회귀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5년 정권의 임기 동안 이루어질 수 있다면 애당초 불의와 부정의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개혁 담론을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진지와 거점이 형성되지 않으면 불평등이 심화되는 구조를 혁파할 수 없다. 보수로 위장한 수구는 '안보'와 '성장'을 무기로 개혁을 방해하고 정치실종을 방치한다. 국회가 80일 이상 공전하는 비정상적 상황이 계속돼도 한국당은 국회 파업을 중단할 생각이 없다.

태극기 부대도 촛불 국면에서는 나설 명분이 없었기에 침잠했다. 그들 세력이 갖는 불가역적인 시대착오와 폭력적 사고는 '악의 평범성'을 얘기했던 유대인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 Arendt)의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또 다른 '아이히만'들일 수 있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봤던 아렌트는 유대인 집단학살의 책임자 아이히만이 역사적 소명감을 가지고 유대인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게 아니라고 느꼈다. 그는 '악마'도 '괴물'도 아니었으며, 상부로부터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에 내재하는 '평범한 악'이 대량학살을 가져 온 주범이었다.

태극기 세력의 반역사적·비민주적 주장들은 집단최면에 걸린 '평범한' 무의식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들은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향유하는 시민 유권자들이기에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보수와 진보가 뒤얽혀 대립과 적대를 연출하는 모습은 내년 총선이 여타의 선거처럼 보수와 진보의 팽팽한 싸움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여당심판론과 수구야당 심판론 중 어느 프레임의 구도가 설정되느냐가 전투의 분수령이 될 것이지만, 이대론 여권의 압승을 장담할 수 없다. 20-30%에 달하는 중도세력이 어느 진영을 지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통해 실질적 거대 양당제의 독점적 카르텔을 깨자는 선거법은 패스트트랙에 올랐으나 새 선거법으로 선거를 치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의식적으로 대치와 적대를 강화함으로써 상대적 이득을 취하려는 수구야당의 정치적 셈법을 깨기 위해서는 중도 유권자가 다시 범여권에 관심을 돌리게 해야 한다. 그러나 난공불락의 반공주의에 입각한 왜곡된 안보의식과 '닥치고 성장'을 외치는 '보수의 선동'에 중도는 속수무책이다.

합의의 덫에 걸린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법 등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경제 침체와 일자리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내년 총선은 여당 심판론이 작동할 수 있다. 선거는 기본적으로 회고적 투표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특히 총선은 그렇다.

집권세력은 정권 초기의 높은 지지율을 믿고 정당체제 내에서의 개혁연대에 소극적이었다. 결국 진보진영 세력화의 부진이 지금의 개혁동력의 약화를 초래한 하나의 요인이다. 그러나 야권발 정계개편으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진보 담론에 동의하는 의원들을 세력화해서 개혁지향의 제3당을 엮어낼 수 있다면 민주당과 제3정당, 정의당 사이에 진보 의제를 둘러 싼 건강한 긴장이 형성될 수 있다.

정당체제 내에서 보수 대 진보의 구도를 깨고 개혁 대 반개혁의 프레임이 형성된다면 이는 진보진영에 유리하다. 이러한 구도가 짜인다면 적대정치에 신물이 난 유권자군은 촛불 국면의 이념 분포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범진보 진영 내의 정책 담론이 선거 이슈로 부상한다면 어느 정당이 제1당이 되느냐의 선거공학을 뛰어넘는 사회변혁의 모멘텀을 주도할 수 있다.

거대 양당에 의한 적대적 공생 구도는 수구세력이 생존할 수 있는 치명적 흠결을 가지고 있는 구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이의 원천적 차단을 위한 제도다. 진보 의제에 동의하는 시민을 조직화하는 세력이 다시 개혁을 추동할 수 있다. 진보정당들이 다양하게 병렬적으로 존재한다면 블록화한 기득권 동맹은 무력화될 수 있으며, 개혁 동력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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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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